마드리드 증후군

마드리드에서 둘째 날

by 김김이

Paris Syndrome, 파리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이 증후군은, 낭만의 도시라고 기대했던 파리의 실체, 그러니까 인종차별이나 청결문제 등을 마주하면서 오는 문화쇼크를 말한다.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크면서 오는 실망감에서 비롯된 증후군인 것이다.



새로운 것을 느끼고 싶어 간 도시에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나에게 마드리드의 둘째 날이 그랬다.

마드리드증후군이랄까, 마드리드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어져 떠나고만 싶었다.

문제는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함께 여행을 하는 엄마와 동생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일정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복잡한 와중에 엄마가 오늘은 뭘 하냐고 물어봤다.

나도 아직 몰라.

조금은 짜증 섞인 답이 튀어나왔다.

대답을 하고도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일단 아침부터 먹자며 말을 돌렸다.


아, 진짜 오늘 뭐하지?



오늘도 마드리드의 하늘은 흐렸다.

누군가는 여행을 할 때 그냥 나가고 본다는데 나에게는 그게 너무 어렵다.

요플레를 먹으면서 마드리드에서 할 만한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일단 크리스마스 마켓, 광장 그리고 일요일이니까 성당.

부족하다, 부족해!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관이라도 갈걸 싶지만, 당시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괜히 늦장을 부리다 일단 나가보자는 엄마와 동생의 말에 나가게 되었다.



오늘은 일요일. 마트들이나 옷가게들은 문을 닫았지만, 몇몇 식당들은 열려있었다.

우리는 어제 지나가면서 봤던, 줄이 어마어마하던 추러스 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줄은 길었다.

뒤쳐지는 것을 싫어하는 동생이 열심히 달려가 줄을 섰다.


몇 개 시키지? 한 개?

그래도 세 명이니까 두 개는 시키자.

찍어먹는 초코도 시켜줘.

당연하지.


츄러스가게는 여러 매장이 붙어있었는데 테라스자리도, 매장 안 자리도 꽉 차 있었다.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엄마가 한 마디 했다.


“어우, 여기서 코로나 걸리면 어떡해?”


엄마가 던진 작은 말 한마디에 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으면, 진짜 그럼 어떡하지? 카운터 직원이 먹고 갈 것이냐, 포장할 것이냐 물었다.

어떡하지? 하지만 테이크아웃을 하기에는 바깥은 너무 춥고 축축했다.

어.. 먹고 갈게요.


때마침 입구 쪽 자리가 비어, 그 자리로 안내받았다.

회전율이 빠른만큼, 츄러스는 정말 빨리 나왔고, 탄성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쫀득하고, 츄러스를 찍어먹는 초콜릿도 정말 진하고 달콤했다.

장담컨데, 내 생에 최고의 츄러스였다.


하지만 즐거운 입과는 달리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 옆 테이블 사람들이 코로나 확진자라면? 방금 지나가는 사람이 코로나 확진자라면? 모든 사람이 코로나 확진자처럼 보였다.

불안증이 도져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어느새 확진되면 지금 있는 호스텔에서 머무를 수 있나? 까지 갔다.

그 사이 그릇은 비어갔고,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는 내 말에 엄마는 컵이 있었다면 남은 초콜릿 소스를 포장해갔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바깥으로 나와 힘을 내보려 했다. 그래, 괜찮겠지 뭐! 하지만 골목이 멋스럽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힘이 빠지고 말았다.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들을 파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아주 빠르게 둘러보고 어제 야간 산책 투어 때 갔던 알무데나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문은 활짝 열려있었는데, 일요일이라 미사를 진행 중이었다.

비록 나와 동생은 냉담자지만, 엄마는 열심히 성당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유럽 성당에서 미사를 드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엄마에게 미사를 드리고 싶냐 물었더니, 엄마는 별다른 답이 없었다.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잠깐 앉자고 하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미사를 드렸다.

예상치 못한 엄마의 행동에 이대로 우리도 미사를 드려야 하나? 했는데 동생이 속삭였다.


나가자!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엄마에게 미사가 끝나면 보자고 하고 동생과 나는 성당 밖으로 나갔다.


성당 앞에서 전날 밤에는 까맣게만 보였던 마드리드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어제 보이지 않았던 마드리드의 전경을 혼자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흐린 날의 마드리드 전경은 감흥이 없었다.


동생과 열심히 사진을 찍긴 했지만 뭘 찍는지도 잘 모르겠고, 춥기만 했다.

오면서 본 스페인 광장은 공사 중이었고, 이제는 정말 할 게 없었다.

우리는 대체 왜 마드리드에 왔고, 나는 왜 마드리드의 일정을 4일이나 잡았을까?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고 싶었고, 리스본으로 빨리 넘어가고 싶었다.



성당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알무데나 성당 앞에 예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왔다는 의미를 담은, 노숙자 모습의 예수상이 벤치 위에 누워있었다.

울적한 마음이 들어 나도 그냥 누워버리고 싶었다.


미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엄마를 데리고 오기 위해 사람들을 역행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관계자들은 하나 둘 불을 끄고 있었고, 엄마는 아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드리드의 대성당이어서인지 알무데나 성당 내부는 꽤 컸다.

엄마가 재단 뒤를 가리키며 사람들이 줄 서서 올라가 기도하는 저기에 가보자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하고 올라갔을 나지만, 뭔가 피곤하고 인파 속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와 동생 둘만 올라가기로 했다.



아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살짝 졸았던 것 같다.

눈을 뜨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혹시 코로나? 아,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기도를 하고 온 엄마와 동생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엄마는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우리는 숙소로 향했고, 가는 길에 전날 가이드에게 추천받았던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물론 오징어튀김 샌드위치 가게에도 줄이 길었다.



엄마와 동생에게 나를 두고 나가도 상관없다고 말한 뒤,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5시쯤인가, 가벼운 몸으로 잠에서 깼다.

엄마와 동생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와 동생의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괜히 나 때문에 여행에 차질이 생긴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슬슬 배가 고파 아까 사 온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를 먹자고 했다.



빵에 야채나 소스 없이 오징어튀김만 들어간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징어튀김만 케첩에 찍어 먹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밥도 먹고 나니 몸이 빠르게 좋아졌다.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오늘은 정말 한 게 없었다.

아쉬우니 마드리드의 야경이라도 보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늘의 내 감정이 엄마에게도 옮은걸까? 엄마는 계속 쉬고 싶다고 했다.


결국 동생과 둘이 나가게 되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솔광장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늘은 다른 광장으로 향했다.

솔광장보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개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쾌적했다. 또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다가 이집트에서 스페인에 신전을 통째로 기부했다는 데보드신전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이전에 SNS에서 데보드신전을 세상에서 가장 별 거 없는 여행지로 선정했다는 글을 본 적 있긴 했지만 그냥 궁금했다.

얼마나 별 거 없는지 가보자고!



데보드신전은 레티로공원 안에 있었는데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두워서 으스스했다.

우리는 주먹을 꽉 쥐고 공원 위로 올라갔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공원에는 조깅하는 사람들도 많고 시끌벅적한 광장과는 달리 평화로웠다.


데보드신전


데보드 신전은 저게 다였다.


왜 세상에서 가장 별거 없는 관광지로 뽑혔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데보드신전에 물이 살짝 고이면, 물에 비치는 신전의 모습을 밤에 보면 꽤 멋지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바닥은 아주 건조하게 말라있었다.

정말 별 거 없네.

그럼에도 동생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었다. 동생이 영상을 찍는데 방해하지 말고 비켜달라고 해서 나는 공원의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거기서 마드리드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우와!


마드리드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 순간이다.

멀리 보이는 마드리드 왕궁과 알무데나 성당 때문인지 마치 세계 3대 야경 명소라는 프라하에 온 것만 같았다. 계속 마드리드에 정을 주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는데, 이제야 마드리드의 매력을 조금 알 것만 같았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틀어놓은 노래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야경을 즐겼다.

낭만적이었다.


한편, 기다려도 동생은 오지 않았다.

다시 신전쪽으로 향하니, 신전 옆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왜 이러고 있냐는 내 물음에 동생은 왜 자기만 두고 사라졌냐고 타박했다.

아니, 네가 따라올 줄 알았지. 동생에게 저 뒤로 가면 멋진 뷰를 볼 수 있다며 데려갔다.

우리는 영화 ‘주디’에서 르네 젤위거가 부르는 Over the Rainbow를 들으며 야경을 감상했다.


오늘 하루 종일 마드리드는 내게 너무 차갑고 낯선 도시였는데, 공원 아래서 내려다본 조명이 가득한 밤의 마드리드는 따뜻한 도시였다.

이제야 좀 편안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동생이 에스파냐 광장 맞은편에 있는 한 호텔을 보고 감탄했다.

동생은 저 호텔이 지금껏 본 건물 중에 가장 예쁘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그 많고 많은 유럽 건물들 중에 최근에 지어진 것 같은 저 고층 호텔 건물이 좋다고? 그렇다고 한다.


리우호텔, 사진출처 아고다


동생은 유럽보다 뉴욕 같은 초고층 건물이 가득한 동네를 더 좋아하겠다라고 생각하며, 숙소에 도착했다.


엄마에게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다는 말을 해주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드리드의 매력을 조금 깨달으며 마드리드의 절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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