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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공포의 동루이스 다리

포르투에서 첫째 날


사람마다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동생은 놀이기구 같은 것을 무서워해서 바이킹을 한 번만 같이 타 달라고 애원해도 절대 타지 않는다.

남동생은 벌레를 무서워해서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않고 선풍기만으로 버티곤 했다.

나는 예전에 선단 공포증이 있어서 바늘의 뾰족한 부분을 잘 못 봤었다.

아빠는.. 뭘 무서워하는지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 어찌 되었든 내가 모르는 아빠가 무서워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로 말하자면, 정말 다양한 것들을 무서워하는 공포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본을 떠나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포르투로 향한다.


많은 사람들이 ‘포르투’라고 하면 ‘동루이스 다리’를 떠올린다.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루이스 1세’ 때 건축되어 이름이 붙여진 동루이스다리는,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 ‘테이필 세이리그’가 설계하였다.

그리고 에펠탑처럼 증축 당시에는 흉물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이제는 포르투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았다.


동루이스 다리



내가 가지고 있는 포르투에서의 기억들도 대부분이 동루이스 다리에서 보낸 것들이다.

따뜻한 날씨에 동루이스 다리를 보며 와인을 마시는 것도, 근처를 산책하는 것도 낭만적이고 무드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좋은 것은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 진다.

나는 엄마와 포르투를 공유하고 싶었다. 엄마가 당연히 포르투, 동루이스다리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쉬움이 남는 리스본이지만, 포르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기차를 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차역을 가는 과정에서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는 작은 실수가 있긴 했지만, 무사히 포르투행 국영 기차를 탈 수 있는 오리엔트 역에 도착했다.


오리엔트 역, 사진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리엔트 역은 1998년 세계 박람회를 위해 지어졌으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소개된 건축물 중 하나다.


하지만 이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나 세고비아의 ‘수도교’와 같은 굵직굵직한 건축물들을 지난 이후여서 그런지, 엄마와 동생은 무덤덤했다.

뒤늦게 이 역에 대한 설명을 해주자 엄마는 사람의 갈비뼈 같다고 했고, 동생은 죽기 전에 봐야 할 것도 많다고 했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 정도 걸리는데, 정말 지루한 시간이었다.


엄마는 갱년기를 겪는 중이라 밤낮으로 잠에 들지 못했기에 뜬 눈으로 세 시간을 보냈고, 동생은 오랜 시간 앉아있어 허리가 아팠다.

나는 중간에 표 검사를 하느라, 우리의 캐리어가 괜찮은가 확인하느라, 옆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또 움찔하느라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런 지루한 시간 속에서도 행복은 있다.

맞은편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존재를 보고, 미소가 지어졌다.




반면 엄마는 기차 안에서 개를 켄넬에 넣지도 않았다며 화들짝 놀랐다.


엄마에게 유럽권은 개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익숙하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저러다가 개가 짖거나 실례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했다.

물론 엄마의 걱정과 달리 강아지는 소란 한 번 피우지 않았고, 도착지에 도착하자 조용히 주인과 함께 기차에서 내렸다.

강아지는 꼬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엄마는 이번에는 주인이 얼마나 애(개)를 잡으면 개가 저렇게 기가 죽어 꼬리를 팍 내리고 있냐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반려견을 입양할 때 자격을 따지고, 반려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있었기에 개와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간에 지하철과 같은 기차로 환승해 포르투의 중심에 있는 ‘상벤투 역’에 도착했다.

상벤투 역 내부는 아줄레주 양식으로 꾸며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벽들은 모두 공사 중이라 가려져있었다.



2018년의 상벤투역



날씨가 정말 좋았다.


포르투의 숙소는 상벤투 역의 근처이자, 공항버스 정류장의 근처의 작은 호텔이다.

그리고 이 숙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의 근처이기도 했다.

숙소 체크인을 하기 전에 그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맥도널드의 가드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당시 포르투갈은 코로나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식당 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48시간 내 발급받은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지가 있어야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그 정책의 적용은 12월 26일부터였다.


오늘은 24일이었고, 26일은 우리가 프랑스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타이밍이 딱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냐!



나를 비롯한 출입이 금지된 사람들은 정책은 26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으나, 가드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를 가져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음성 결과지가 있는 몇몇 사람들은 맥도널드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에게 어디서 검사를 받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어제 근처 검사소에서 받았는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 다 닫았을 거라며 어깨를 으쓱하고 떠났다.

유럽이란!


마지막으로 가드에게 포장은 가능하냐고 물었고, 가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동생이 신나게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키오스크를 잡고 씨름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면 뭐하나, 맥도널드의 키오스크는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키오스크인데!

한편 엄마는 실내는 코로나가 무섭다면서 맥도널드를 나가버렸다.

오늘도 역시 난국이었다.


 포장한 햄버거 세트를 들고 숙소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원래 오늘의 계획은 저녁으로 내가 좋아했던 식당에서 문어 요리를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아보니 맥도널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식당에서 코로나 음성 결과지를 요구했기에, 계획을 그대로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생겼다.


게다가 내가 크리스마스의 유럽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과거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도시, 베를린은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옷가게, 식당, 마트 등이 어느 정도 운영했었는데 포르투는 얄짤이 없다.

분명 내일은 크리스마스라 가게들이 문을 다 닫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식량을 미리 구비해두어야 한다.


아까는 날씨가 좋았는데 날이 흐려지고 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아르마스 교회



항구도시인 포르투에도 만만치 않은 언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열심히 언덕을 지나 쇼핑센터로 향하는 길에 아르마스 교회를 지나쳤다.

아르마스 교회는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인 아줄레주 양식으로 장식된, 앤티크한 느낌이 물씬 나는 교회였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 쇼핑몰이나 가자.



동생이 아르마스 교회보다 더 좋아했던, 쇼핑몰 안의 크리스마스 트리



쇼핑몰 지하에 있는 마트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구매했다.

지금껏 머물렀던 숙소들처럼 주방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을 보는 데 있어 신중을 기했다.


한편 1월 6일은 ‘동방박사가 온 날’이었고, 마트와 베이커리에는 스페인 전통 빵인 로스꼰이 진열되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로스꼰을 한번 구매해서 먹어볼 법도 했으나, 로스꼰은 정말 컸다.

평소 우리 가족은 누군가의 생일이면 베이커리에서 파는 가장 작은 케이크를 먹는다. 심지어 그것마저도 남긴다.

그런 우리가 저 로스꼰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안 되었다.


그래서 로스꼰을 통째로 사는 대신 카페에서 조각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장을 보고 나오니 카페에서 옷가게까지 모조리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게 포르투의 크리스마스이브인 것이다.


아직 살 것이 남았는데!


빠른 걸음으로 숙소 쪽으로 향하는데, 분명 좋았던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삼단 우산 하나에 머리만 넣고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갔다.

다행히 우리가 가려고 했던 핫도그 가게는 아직 문이 열려있었고, 내일 먹을 핫도그 세 개를 포장해왔다.


정신없는 크리스마스 준비였다.



비가 쏟아지는 김에 숙소에서 몸을 녹이다 보니, 어느새 해도 지고 비도 그쳤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맥주를 들고 동루이스 다리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비만 잔뜩 맞았지만, 동루이스 다리에만 가면 포르투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동루이스 다리에 가는 길에 지나친, 산투 일데폰소 성당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혹은,  비가 왔어서 그런지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에서는 꼭 이렇게 어두침침하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며 무섭다고 했다.

그런 영화들의 배경은 주로 안개 낀 영국 아닌가? 그러나 저러나 엄마는 무섭다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가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위로 갈 것이냐, 아래로 갈 것이냐.


우리의 숙소는 다리의 윗길에 가까웠다.

그리고 오늘 엄마와 동생의 남은 체력을 고려했을 때, 윗 길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윗길을 선택했다.


동루이스 다리의 윗길



동루이스 다리의 윗길에는 장점이 몇 가지 있다.


동루이스 다리는 아래로는 차가 다니지만, 위로는 트램이 다닌다.

그리고 윗길은 트램이 지나지 않을 때는 트램 길로 자유롭게 지날 수 있기 때문에, 더 넓은 길을 누릴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멋진 도나우강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야간에 지난다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본, 도나우강변의 야경


나와 동생은 이 야경을 보며 사진을 찍고, 이야기도 하며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왜 그러지? 화장실이 급한가?

엄마를 쫓아가 동루이스 다리 위에 올라온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말을 시키지 말라고 했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자, 엄마는 질색하며 대답했다.


“무서워, 무섭다고!”


그제야 아차 싶었다.

엄마는 높은 곳과, 물을 무서워한다.

그 둘이 콜라보된 곳이 바로 이 동루이스 다리인 것이다.

평소에도 엄마는 운전을 할 때도 물 위의 다리를 지나면, 아래가 보이는 것이 무서워 1차로로 달리곤 했다.

그런 엄마에게 밑이 훤히 보이는 동루이스 다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엄마에게 무섭다면 안쪽 트램 길로 가도 된다고 외쳤지만, 이미 저 멀리 가버린 엄마에게 닿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처음에는 허탈하기도 하고, 짜증이 났다.

왜 엄마는 좋은 것을 보고도 즐기지 못하는 걸까?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엄마의 무섭다는 말을 곱씹으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내린 비로 인해 미끄러운 바닥을 실수로 헛디뎌 아래로 떨어지는 상상을 하니 무서워졌다.

나도 엄마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동루이스 다리를 건넜다.



동루이스 다리



나름의 소동을 겪고 나니, 엄마나 나나 동루이스 다리에 대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동생만 신이 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맥주나 마시자


하지만 맥주를 마실 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몰 스팟으로 유명한 모로 공원은 밤이 되니 너무 어두울뿐더러, 사람도 없었다.

문득 ‘이렇게 어두침침하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비가 왔어서 벤치들도 모두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나마 밝은 곳에 위치한 마른자리를 찾다 보니, 어떤 뷰도 볼 수 없는 공원 초입에 앉게 되었다.





정말 낭만도, 무드도 없었다.


맥주를 마시다 말고, 엄마는 갑자기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바로 낮에 샀던 시리얼이었다.

엄마는 안주가 있어야 한다며 작은 봉지에 덜어온 시리얼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춥고 궁상맞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와 동생은 초콜릿으로 코팅된 시리얼이 맛있다며 좋아했다.


그래, 좋으면 된 거지 뭐.





숙소로 향하면서, 엄마가 내일은 따듯한 국물을 먹자고 했다.

우리의 숙소에는 커피포트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따뜻한 물이 룸서비스로 가능한지 호텔 프런트에 물어봤다.

남자 직원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고, 내가 내일도 가능하냐고 묻자 15분 전에만 말해달라고 했다.



내일 저녁에는 컵라면을 먹는다면, 오늘 저녁에는 낮에   핫도그를 먹는다.


엄마는 낮에 먹은 맥도널드 햄버거보다, 이 핫도그가 훨씬 맛있다고 했다.

겨우겨우 들어가서 산 햄버거구만!

나도 핫도그를 먹어보았다.


엄마 말대로 맥도널드 햄버거보다 있는 핫도그였다.








사람은 다 똑같을 수 없다.


각자 다른 취향과 입맛, 다른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싫고 무서운 것일 수 있다.


흔히 자식들은, 본인이 해주는 모든 것을 엄마들이 마냥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엄마들에게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나는 엄마가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경험해보지 않은 낯선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해보면 좋아할 거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경험하지 않고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저녁에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엄마는 그 시간에 숙소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다.


여행을 하기 전에, 엄마와 내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당연스럽게도 ‘딸, 덕분에 너무 좋았어. 고마워’라는 말을 기대했고, 엄마는 원하지도 않는 것을 강요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싫다는 콩과 버섯을 먹으라고 강요받았던 나처럼 말이다.


나는 엄마에 대해서, 엄마의 취향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단순히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 경험시켜준다라는 명목 아래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한다.


타인을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자식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내일은 아래 길로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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