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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포르투의 크리스마스 악몽

포르투에서 둘째 날


마드리드를 여행하면서 보고 겪었듯, 유럽은 일요일에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일요일은 휴식이라는 기독교적인 개념이 남아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직원들에게도 일요일은 온전한 휴일인 것이다.


한편, 일요일 못지않은 휴일이 있는데, 바로 공휴일이다.

잠시 도시를 머무르다 떠나는 관광객들에게는 불편한 휴일이다.

하지만 관광명소나 관광지 쪽에 위치한 식당들은 이런 날에도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 보통이면 크리스마스 당일인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다. 우리에게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다.

공휴일과 코로나, 이 두 가지가 합쳐져 포르투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와 동생은 벌써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둘 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사실 평소에도 우리 집에서 아침잠이 가장 많은 것은 나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예전에 포르투에 왔을 때는 옷가게들을 구경하랴,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랴, 노을을 보며 와인을 마시랴 정말 할 것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그것도 코로나 음성 결과지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와이너리 투어나 파두 공연이라도 예약해둘 걸 후회하다가, 다시 크리스마스와 코로나 음성 결과지의 부재로 결론지어졌다.



‘일단 나가보자’라는 말은 싫어하지만, 오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나가보는 수밖에…


우리는 조금 더 뒹굴거리다 점심까지 먹고 일단 나가보았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히베이라 광장, 그러니까 동루이스 다리의 아래로 향했다.



비가 왔던 어제는 너무 추웠기 때문에 옷을 단단하게 껴입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어찌나 덥던지!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이 화창했다. 내가 알던 따뜻한 포르투의 날씨다.

결국 목도리며, 경량 패딩이며 모조리 내 보조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클레리구스 성당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가였던 ‘니콜라우 나소니’가 ‘클레리구스 형제’의 의뢰를 받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건축했다는 ‘클레리구스 성당’를 지나면, 작가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쓸 때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렐루서점’이 나온다.

그런데 렐루서점의 문은 굳건히 닫혀있었고, 문 밖에서 어두운 렐루서점 안을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것은 나뿐이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나뿐이었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렐루서점 근처에 문을 연 카페를 발견했다.

동생이 젤라또를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젤라또를 먹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1인 1젤라또였겠지만, 많이 먹지 못하는 엄마와 동생이라 큰 사이즈로 한 개만 포장해서 나왔다.


엄마가 고른 패션후르츠맛, 동생이 고른 초코맛, 내가 고른 피스타치오맛


젤라또는 진짜 그대로의 맛이었다.

패션후르츠맛은 정말 새콤한 그 맛이었고, 초코맛은 찐한 초코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피스타치오 맛이 최고였다.


해외에서 먹는 피스타치오 맛은 한국과 다른 진짜 피스타치오 맛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 고소한 피스타치오 맛을 구현해내는 곳들이 있지만, 여전히 이 맛을 쉽게 맛보긴 어렵다.

엄마와 동생에게 물었다.


“어때??”


엄마와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맛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본인이 고른 패션후르츠맛도 한 두입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고, 동생은 초코맛만 먹고 사라졌다.


결국 또 내가 다 먹었게 생겼다.

오히려 좋아.



날씨를 만끽하며 걷다가, 카르무 성당 안에 들어갔다.


카르무 성당에서의 엄마



금으로 장식된 카르무 성당은, 그동안 보아왔던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들에 비해 아담한 크기였다.

그럼에도 이 성당이 강하게 기억에 남은 이유는 성당 한쪽에 실제 크기의 예수님의 모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고다 언덕에서 방금 끌어내려 관에 넣은 것 같은 예수님의 모습에, 엄마는 조금 충격을 받고 성당 밖으로 나갔다.




날씨 좋은 포르투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포르투의 건물들을 구경했다.

엄마에게 건물들이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하지 않냐고 물었으나, 벽이 얼룩덜룩해서 칠을 다시 해야겠다며 허술해 보인다는 답만 돌아왔다.

나는 멀리서 보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아아.. 가까이서 보면 허술하지만 멀리서 보면 사랑스러운 도시 포르투여, 아무래도 포르투는 우리 엄마의 마음에는 들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겨울이라 메마른 공원 벤치에 앉아 엄마의 어렸을 적 이야기, 엄마의 친구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대부분 듣는 쪽이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사람들을 구경했다.

공원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 강아지와 공을 던지며 놀고 있는 사람들, 아이와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상적인 크리스마스였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딜 가나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있는 일종의 행사였는데, 오늘은 정말 평화롭고 평범한 휴일 같다.


동생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이 시간이 아깝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엄마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동생이 사라진 동생을 찾아야 한다며 일어섰다.

동생은 내 시야 안에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동생을 두고 가버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엄마와 나는 동생을 놀라게 하려 나무 뒤에 숨어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동생은 관심이 없었다.

결국 엄마가 동생의 이름을 크게 외치고 나서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우리는 포르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인 히베이라 광장을 향했다.

엄마는 집들을 구경하며 포르투의 집들은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와 다르게 생겼다고 했다.

당연하죠, 포르투는 포르투갈이니까요.





우리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언덕은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언덕배기에 있는 공원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늘진 벤치를 앉아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신발을 다시 신고, 손소독제를 한 번씩 하고 말이다.

엄마는 당이 떨어진다며 젤리를 하나 먹었고, 동생은 발이 답답하다며 신발을 벗어버렸다.


그런데 앉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엄마는 이제 일어나자고 했다.

벌써? 동생이 조금만 더 쉬자고 항의했으나, 엄마는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엄마는 빨리 지치기도 하지만, 빨리 충전도 되는 사람이다.

나는 엄마를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연비가  좋은 자동차라고 했고, 엄마는 기름을 많이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비가 그렇게 나쁜  아니라고 했다.


동생은 투덜거리면서 신발을 다시 신었다.



그렇게 드디어 히베이라 광장에 도착했다.


히베이라 광장에서, 엄마와 동루이스 다리




내가 3년 동안 더 큰 걸까?

3년 만에 히베이라 광장에서 본 동루이스 다리는 내 기억보다 작았다.

어제 위에서 볼 때는 그렇게 높아 보였는데 말이다.


동루이스 다리의 아래 길은 보수공사 중이어서 가림막으로 가려져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처음 동루이스 다리를 봤을 때처럼 설레진 않았다.



히베이라 광장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몇몇 식당들도 운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무엇하나, 우리에게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는걸.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에게 식당에서 뭐라고 먹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점심을 먹은 게 아직 소화도 안되었고, 아까 젤리도 먹어서 괜찮다고 했다.

역시 엄마는 기름을 많이  먹는 자동차와 비슷하다.


우리는 돌벤치에 앉아 동루이스 다리와 도우로 강은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동생은 가만히 있는  시간이 아깝다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러 사라졌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정은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가 해가 지는 것을 보는 뿐이다.


오늘은 종일 걷고, 앉아서 이야기를  것이 다였는데, 엄마에겐 어땠을까?

엄마에게 묻자, 엄마는 ‘좋았지, .’라고 대답했다.

‘좋았다.’ 항상 내가 듣고만 싶었던 대답이었지만, 의심이 되었다.


정말?”

응, 그렇다니까?”


 다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그래, 어차피  파리에 가면 매일매일이 바쁠 테니까 지금 잔뜩 여유를 부리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엄마가 벌떡 일어선다.


 계산으로는 아까 언덕배기 공원에서도 그렇고 지금  광장에서도 그렇고,  시간을 끌어야 일몰시간을 얼추 맞출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동생을 찾으러 멀리 버렸다.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해가  때까지 한참 기다리게 긴 것이다.



엄마가 동생을 잡아왔고, 우리는 동루이스 다리를 건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엄마는 어김없이 전속력으로 걸어갔다.

저러다 또 금방 지쳐버릴 텐데.

높은 곳은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이면 발 밑으로 훤히 보이는 강 때문일 것이다.

나도 열심히 엄마를 쫓아갔다.




다리를 건넜다면, 이젠 올라가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도 평지로 닌 사람인데, 포르투갈에 와서 언덕을 이렇게 자주 오르내린다.

그래도 일몰 시간에 맞춰 뛰어올라가는 것보다, 고양이도 구경하며 느긋하게 올라가니 제법 오를만했다.


어젯밤에 왔던 모루공원은 오늘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마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동생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동생은 내가 새로  가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자기에게 너무  어울리는  아니냐며 깐죽거렸다.

나도 아직 제대로 못 입은 옷인데! 꿀밤을 먹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동루이스 다리를 보기 위해 맞은편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수도원 위에서 본 동루이스 다리



포르투는 위에서    사랑스럽다.


푸른 하늘에 붉은 지붕들까지, 보기에 너무 좋았다.

다만, 보기와는 달리 바람이 매우 차가웠.


우리는 경량 패딩과 목도리를 착용했다.

하루 종일  보조가방 안에 있던 것들이 이제야 빛을  것이다.



엄마와 동생이 이 풍경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조금 초조했다.


일몰시간까지 남은 건  시간 삼십 분.

우리는 과연  시간을 기다릴  있을 것인가? 일몰을 보려다 감기에 걸린다면 큰일이다.


보통 이런 애매한 시간에는 카페에 들어가거나 마트를 구경하곤 한다.

하지만 이 쪽에는 카페가 별로 없다. 그리고 코로나 음성결과지도 없다.

그렇다면 마트에 가야 한다.

크리스마스에 문을 연 마트는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괜히 구글지도를 켰다.

그러다 운영 중이라는 근처의 마트  곳을 발견했다.

엄마와 동생에게 마트 구경을 가겠냐고 물었고, 슬슬 추웠던 엄마와 동생을 빠르게 좋다 답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것은 문을 닫은 마트들이었다.

 정도 되니 포르투가 지긋지긋해졌다.



다시 모루공원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몰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아쉽지만 노을을 포기하고 돌아가자  말에, 엄마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좋아했다.

아쉬워할  알았던 동생도 추우니 빨리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거기에 이럴 거면  이렇게 일찍 숙소에서 나온 거냐며 나를 타박하는 말도 덧붙였다.


역시 이래서 일단 나가보자는 말이 싫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포르투에서 유명한 ‘나타 에그타르트 가게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맛있는 것은 비교해봐야 한다.

엄마와 동생은 리스본에서 먹은 것보다  맛있다고 했다.

뜨끈하고 맛이 있었지만, 나는 리스본에서 먹은 것이 더 맛있었다.

한편 엄마는 한입 베어 먹은 에그타르트를   먹겠다고 해서 다시 통에 넣었다.






날도 추웠으니, 이제 따뜻한 컵라면으로 몸을 녹일 때다.

어제 프런트 직원이 말한 대로 뜨거운 을 달라고 하기 위해 프런트로 향했다.

프런트에는 어제  남자 직원과 다른 중년의 여성 직원이 있었다.

남자 직원에게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고 는데, 여성 직원이 오늘은 휴일이라 룸서비스가 안된다며 답했.


우리는 뜨거운 만 기대하며 돌아왔는데!

어제 15 전에만 말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으나, 크리스마스는 직원들에게도 휴일이라 어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럴 수가.. 나는 옆에서 곤란해하는 남자 직원에게 야속하다는 눈길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손으로 돌아오자 엄마와 동생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냥에 실패한 가장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이 지긋지긋한 크리스마스의 포르투.


내일이면 포르투를 떠나니, 냉장고 파먹기를 하기로 했.

엄마나 동생이 조금만 먹어도 배부른 사람들이라 다행인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여서, 그리고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어서 포르투에서 한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긋지긋함도 느껴져 빨리 프랑스 넘어가고 싶다.


이런 나와는 달리, 포르투에 처음 온 엄마와 동생은 아쉬움이 더 클까 걱정했다.

엄마와 동생의 괜찮다는 대답들은, 불만이 있음에도 나를 안심시키기  거짓말이 아닐까 심도 들었다.

나 혼자 지레짐작으로 걱정만 했기에 그런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며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홀가분해지는 법을 배워야겠다.



포르투를 떠나니 홀가분해진다.

이제 포르투는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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