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 Mar 17. 2020

돼지 멱따는 소리로 화를 내며

제일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나는 나만의 이유가 많았다. 아들에게 며칠 전에 옮은 감기로 어지러웠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하필이면 날씨도 구리구리 해서 기분도 몸도 아무것도 받쳐주지 않았던 오늘의 육아였다. 이제 14kg가 나가는 아들이 안아달라고 떼를 쓰면 못 이기는 척 결국에 안아주다 보니 저번에 무릎에 물 찼을 때와 비슷하게 무릎이 아파왔지만, 그래도 오늘은 나의 낮잠도 포기해가며 그동안 못해줬던 영양식이나 해주자며 열심히 요리도 했다.


내 사정을 알기나 할까, 내가 먹고 싶지만 양이 얼마 안 돼서 너에게 다 양보한 나의 정성 어린 밥을 몇 번 안 먹고 바닥에 뱉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 모든 불행한 상황을 눌러왔던 이성이란 뚜껑이 해체되기 시작하며 눌린 감정 속에 새로이 싹튼 짜증과 분노, 유치함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동네 산책이나 하자며 시골길을 걸으며 하하호호,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그 표정과 엄마의 얼굴을 양손으로 만져주며 봐주던 그 눈빛은 이미 터진 뚜껑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아들은 아까 먹인 감기약에 피곤이 몰려와서 짜증이 났었을 것이다. 이틀째 똥도 못싸서 밥이 안 들어갔을 것이다. 놀고 싶은데 집안일을 해야 한다며 자꾸 등을 보이는 엄마랑 놀고 싶은 마음은 강한데 아직 말을 못 해서 온갖 짜증이 났을 것이다. 내가 이성이 남아있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갔을 아들의 행동이었다. 내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화내지 않고 설명하며 지나갔을 하루이다.

나의 화를 최종적으로 불러낸 아들의 마카롱 호출

그렇다한들 내가 화를 낸 것이 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도 커 가면서 여러 상황을 겪고 여러 감정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세상에 나가면서부터는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들과 살 수 없다. 어린이집만 해도 언제나 네 뜻대로 될 수 없고 너의 의중을 먼저 헤아려지는 일은 드물 것이기에, 상대가 어떠한 상황에서는 짜증이 날 수도, 네가 혼이 날 상황도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많이 두렵지 않았다. 비이성적인 환경이 사라질 리 없는 세상이었다.


그저 내가 미안해진 이유는, 엄마 먹으라고 식탁에 차려놓은 장난감 마카롱이 네가 가지고 있는 6개 중에 엄마 그릇에는 4개, 너의 그릇에 달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저 네가 어질러진 종이컵들을 하필 오늘 가지런히 정리를 해놔서이다. 식탁에 앉아 이미 성질이 날대로 난 엄마를 부르며 앉으라던 아들을 괴팍하게 쫓아내고서야 아들이 차려준 마카롱 그릇이 보였다.



맨날 내가 엄마에게 하던 소리였다.

"아 제발 부엌에서 좀 나와, 나랑 얘기 좀 하자!"라고 외치며 속으로는 엄마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며,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함께 양질의 대화를 하며 유대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먹이려고만 하는 엄마에게 가끔은 신경질도 났다. 나의 늘어가는 뱃살을 보면서도 우리 엄마는 건강하려면 먹어야 한다며 내가 가는 날에는 잔칫집 수준으로 음식을 해 놓았다.


가끔은 정크푸드가 먹고 싶고, 가끔은 안 먹고 싶은 날도 있는데 매일같이 성인 남자의 양으로 밥을 퍼주는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항상 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거 말고, 나랑 같이 놀아주는 엄마였다. 나는 엄마랑 놀고 싶었다. 카페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가고, 맨날 "뭐 해 먹어, 음식 이렇게 하면 맛있어" 같은 소리 말고, 넌 요새 뭐하고 지내, 어디에 흥미가 있어?"가 더 필요하다고 말이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고 하더니만, 나는 그렇게 불평하던 엄마의 모습을 하고, 어떻게 엄마와의 시간을 원하는지 너무 잘 아는 아들의 마음을 때려줬다. 엄마의 마음, 자식의 마음이 이해는 가면서도 그 불만스러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 오늘의 나였다. 나도 엄마가 가끔 이유 없이 화를 낸다고 생각했을 때 엄마의 컨디션을 알리가 없었다. 컨디션이 공유되지도 않는데 어찌 아누, 말도 안 해주는데 어찌 아냐는 말이다. 하지만 가끔 엄마의 포인트모를 폭발에 속으로 "왜 저래, 정말.."이라며 그저 다혈질 엄마라고 생각해왔다.


아들 입장에서도 그랬지 싶다. 잘 놀다가 갑자기 왜 저러나, 여태껏 웃어주다가 밥 몇 번 뱉었다고 귀청 떨어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냐고, 영유아기 정서에 얼마나 해로운지 아냐고 말만 했다면 따지지 않았을까. 평상시보다 저기압인 것을 내가 알리가 있냐고 말이다.  


아마 친정에 가면 또 "아, 그만하고 여기 와서 앉아 좀~!!!!"이라고 엄마를 다그치겠지만, 덜 해보려고 한다.

아들의 올챙이 배를 보면서 안 먹으려고 하면 걱정은 또 되겠지만, "그래, 오늘은 안 먹고 싶구나"를 말로라도 뱉어보려고 한다.







안 미안해도 되는 사소한 일에 미안하다고 했던 엄마의 마음이 서글프게 이해가 간다.  

자식에게 마음 약한 이런 구질구질한 감정 플레이 안 하고 싶었는데, 내가 또 엄마인지라.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