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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Dec 21. 2018

육심과 욕심 사이

변덕이 죽 끓듯하다

아기 4개월 때, 내 욕심에 눈이 멀어 나는 아이를 맡길 상황도 아니었던 육아휴직 중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이직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갔었다.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 "그럼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십니까"에 나는 갑자기 나갔던 혼이 돌아오기라도 하듯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갔고, 나는 말인지 방구인지스러운 헛소리로 마무리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와서도 가끔가다 지원서를 내는 도중에 정신이 문득문득 들어서 거의 다 써가는 지원서를 취소하고는 한다. 오랜만에 보는 여러 친구들과도 만나고 싶어 약속을 무리하게 잡다가도, 아이가 어디 나갔다가 들어오는 나를 보고 입술을 씰룩씰룩할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무례하게 취소해버리고는 한다. 아직도 나의 삶과 아이 엄마로서의 삶에서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가정적인 누구는 아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그 모든 것이 너의 욕심 때문이라고 하고, 커리어를 중요시하는 누구는 한국 엄마들은 원래 3개월 또는 6개월만 있다가 아이는 다른 손에 맡긴 채 다시 복직한다며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두 가지 욕심 사이에서 나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낳으면 적어도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려고 생각했었다. 반면에 대학교를 나와서 일에 미쳐 나의 발전에 만취하고 싶었기도 하다. 그저 그 시기가 겹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언제쯤 나의 욕심은 한 갈래로 합쳐질까.


이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꾸 떠올리게 되는 건 과거에 대한 후회이다. 내가 해외의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하지 않고, 유학을 가지 않고, 남들처럼 한국에서 순차적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가서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으면, 지금쯤 대리나 과장을 달아 육아휴직을 써도 그래도 사직은 고려하지 않을 텐데. 대학에서 과만 안 바꿨어도 커리어에 쌓는 시간이 늘었을 텐데. 결혼을 조금 미뤘으면 시댁 스트레스와 더불어 이 모든 고민을 조금 천천히 가졌을 텐데. 이렇게 자꾸만 내 모든 20대는 모든 것이 되돌려야 하는 일 투성으로 다가온다.


오랜 기간의 후회가 지겨워 나오는 생각은 내가 미리 늙어보는 것이었다. 40대가 되면, 50대가 되면 어떠한 후회가 남을까? 어쩌면 내가 지금 내 생각대로 느지막이 애를 낳았다면, 차라리 빨리 결혼을 해서 아기를 가질 걸 하고 후회하지 않을까. 아이가 만약 안 생겨버렸다면 주위 어느 사람처럼 아이를 위해 모든 방법을 노력하는 중 아닐까?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커리어에만 집중했다면, 일만 하지 말고 20대 때 좀 즐기면서 살아볼 걸 하고 후회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 인생의 굴곡에서 다음 웨이브로 가서 생각해보니 지금 하는 고민은 어쩌면 사랑하는 반려자와 자녀,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의 행복한 고민일 수 도 있겠다 싶다.


그래, 나는 예상보다 일찍 온 행복에게 왜 일찍 오고 난리냐며 내가 이러면 곤란하다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철없는 30대 아줌마인 것 같다.

"남자는 좋겠다.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라던 질투는 이제 "여자라서 다행이다. 그래도 나는 선택할 기회라도 있어서. 적어도 누군가에게 돈 벌어오는 일을 맡기고, 나는 집에서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조금이라도 더 있을 수 있어서"로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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