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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Feb 24. 2021

미운 놈 떡 하나 더 줄까

떡을 더 먹을 자격이 잇어서가 아니라

이 속담은 어떤 상황에서 나왔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그놈이 왜 미웠으며,

왜 미운데도 떡을 주려고 하는지.


"놈"이라고 하는 걸 보니 아마 나보다는 어린 사람을 지칭했던 것 같다. 아마도 사별과 재혼, 또는 첩을 두었던 시절의 내 배에서 나오지 않은 자식을 두고 나온 속담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랑은 관련이 없지만 나랑 같이 함께 해야 하는 관계.

게 중에도 좋아서 맺어졌다기보다

굉장히 불하고 싫은 존재.

하지만 끊어버릴 수 없는 그런 관계 속에서 나는 저 놈이 미운데 미워하자니 내 속만 시끄러워져서 내 마음을 억지로라도 넓히고자 더 품으려고 애썼던 누군가의 마음에서 나온 다짐 아니었을까.


네이버에서는 미운 사람일수록 감정을 쌓지 않아야 후에 탈이 없다는 뜻으로 비추어지지만 그 유래를 유추해보자면 그런 관계 속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올해 2월부터 나에게 그런 존재는 시부모님이다.

맞는 부분도 없고 서로에게 편하지도 않지만 억지로라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관계.


굉장히 옛스러운 사상을 가지신 경상도 어느 지방의 시부모님은 아직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호적이 그 집안으로 이전된다는 (2008년에 법적으로도 폐지된 호적 제이건만)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옛날과는 다르지"라고 머리로만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인 듯하다.


사상은 조선시대인데 마음 가는 건 새로 나온 삥한 자동차.

현시대의 문물을 다 누리면서도 아직 한복 입고 시냇가에서 방망이로 빨래하던 시절을 가슴에 품고 계신다.


그리하여 대놓고 이래라저래라 하시진 못해도 마음이 계속 불편하셨다. 이번 명절에도 미리 연락을 하여 시어머님의 스케줄을 미리 맞췄어야 하는 며느리는 공방을 옮기고 받은 주문을 처리하느라 매번 트러블이 있던 명절 스케줄을 미리 확인하지 못했고, 어머님은 내가 미리 스케줄을 맞추지 않아서 휴가를 미리 빼지 않았으니 명절에 3일 내내 있다가 친정에 일요일 하루 가는 것을 "또" 제안했다.


이 막돼먹은 며느리는 그렇게는 안된다며 저번에도 어머님 스케줄 맞춘다고 친정도 같은 날 쉬는데 시댁을 먼저 이해해 가느라고 친정에는 못 갔다며 이번은 안된다고 2일 시댁에 2일 친정에 가겠다고 말했고, 그 반을 똑 잘라 가겠다는 며느리가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명절날 폭발한 시어머니가 속내를 털어놨다.


내가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3일씩 있다 간다고 했으면 마음이 참 좋았을 거라고 하시면서 한 5년만 그러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며 2년 전에는 아버님이 제사를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네가 우리 아들을 교회로 끌고 갔으니 그 마음을 풀어주기에 5년 동안 명절에 시댁에 있으라는 말과 뭔가 앞에 단어만 바뀐듯한 데자뷔가 슥ㅡ 지나갔다.


"어머님, 그러니까 사실은 제가 친정에 가는 게 마음에 안 드신 거죠?" 하니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다"며 내가 안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하루 (명절 다 지나고 일요일^^) 보내주는데 우리 때는 친정에 갈 생각도 못했다며 여태까지 머리가 눌러놓았던 현재 시대의 끈을 풀고 가슴속을 다 보여주셨다.


친정이 가까우니 명절에만은 시댁에 죽 있으라는 시부모님.

나는 외동딸에, 15년간 해외생활로 우리 부모님은 명절을 가족끼리 명절답게 못 지내봤다는 그 말도 아버님이 효도는 나중에 시간 많이 남았으니 나중에 해도 된다는 말로 돌아왔다.


아니, 나이도 친정부모님이 더 많고,

우리 가족을 경제적으로나 다른 부분에서 지원해주는 쪽도 친정이 더 많고, 가족력으로 봤을 때도 5대째 살아계시는 시댁보다는 명이 대체로 짧았던 우리 친정 쪽에 더 효도를 먼저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아니 먼저 하는 것도 바라지 않고 이런저런 상황 감안하면 아무것도 못하니 반반하는 게 옳지 않은가.


가깝다고 좋은 건 딸내미가 힘들 때마다 찾아가 장작 6시부터 출근길에 올라 8시쯤 퇴근하시는 부모님의 손을 빌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시댁에 명절만 가는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2개월에 한 번 짧게는 한 달에 한번 내려가거나 올라오셔서 1-2박을 하곤 했고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의 명절은 결국엔 시부모님 대로 진행되어왔다.


명절이 아쉬워도 친정이 더 아쉬울 텐데,

이렇게 고리타분한 논리가 전개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단지 여자이기 때문이다.

딸 가진 집안에서 이런 식으로 요구할 수 있었을까?

이 부분은 시작하면 끝도 없이 울분이 터지기에 이 글에서는 이 문장으로 마감한다.


어째서 나는 공들여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려고 유학까지 갔다 와서 진취적으로 살던 싱글 시절에서 점점 뒤로 후퇴하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을 시발점은 시부모님이었다.

남편의 생각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래도 부모를 바꿀 순 없지 않으냐 하고

시누이는 현명하지 못하다 한다.

왜 이 모든 총알받이를 내가..... 할많하않.


"이럴 거면 그냥 친정에 있고 아예 오지 마"라는

여느 감정표현이 삐뚤어진 여자 친구가 내뱉는 "우리 헤어져!"를 시어머니로부터 시전 당했다. 남편이 연애하던 시절에 자주 써먹었었다. 나는 또 그런 식으로 삐뚤어지게 뱉는 말을 혐오하기에 "헤어져"라고 하면 말 그대로 진행해드리는 삶을 살아왔다. 결국은 아쉬운 사람이 내뱉고 아쉬운 사람이 붙잡게 돼있는 이치. 양가 부모님이 있는 손주 사진방도 어머님은 나가셨고 오늘 사진 몇 장을 보내자 아버님도 나가버리셨다. 경상도 남자가 상남자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 걸까. 내 세계에는 없다. 좁은 마음과 상남자는 영 매치가 되질 않는다.


깊은 고뇌에 빠졌다. 내가 좋아서 만난 관계가 아니었기에 "예스"하고 끝내면 참 편하겠지만 부모와 단절된 남편의 행복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 편하자고 시작한 일에 내 불행이 섞일 아이러니한 상황.


내 남편을 굳이 굳이 이해하려고 한 세대 올라가 그의 부모를 굳이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니, 그들도 어쩌면 살아온 삶이 그랬기 때문에 이딴 가부장적인 문화의  피해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사상과 경험에서 나오는 행동은 그 전전 세대를 봐야 이해할 수 있다는 심리상담센터의 선생님들의 지나가는 말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으며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래서 난 또 내가 한 달 동안 개고생 해서 만들어낸 고가의 리얼 금이 칠해진 명품 접시를 차곡차곡 보자기에 싼다. 작은 손편지와 함께..


그것이 그들이 나의 눈물 섞인 도자기를 받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떡 하나 더 드리자며 내가 먼저 어른 행세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고, 내면 아이가 불러일으킨 기억 속에 초등학생인 나에게 젊은 나의 엄마가 "그래, 잘 생각했어."라며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고 어리다고 모자란 것이 아니듯 네가 누구든지 품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면 된다"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ㅂㄷㅂㄷ

#며느리는 괜히 시댁이 불편한 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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