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26

사이판에 진짜 흔적을 남기다.

by 최민정

사이판 조텐키유 공공도서관에 두 번째 방문하는 날이다. 도서관 서가에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빼곡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많이 낡아 보였다. 특히 한국 서가의 책들은 내가 어렸을 때나 읽었을 법한 오래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책이 유행에 민감한 물건은 아니지만, 유행을 지나 시대에 많이 뒤처지는 디자인과 문체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고 서점에서 아이들이 사이판에서 읽을 책을 고르면서 약속한 게 있다.


“우리 이 책 다 읽고, 사이판 도서관에 기증하고 오자.”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사이판에 있는 유일한 공공도서관에 아이들이 다 읽은 책을 기증하기로 했다. 엄마의 의견이었지만 아이들도 대번에 찬성했다. 태평양 건너 어느 도서관에 자신의 물건이 꽤 오랫동안 머문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가슴 뛰는 일일 테니까.

사실 다른 뜻도 담겨 있었다.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재미있는 책에 빠져드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예전부터 모든 교육의 뿌리가 독서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흥미 있는 책을 스스로 찾아보고, 틈나면 꺼내 읽고, 책의 내용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 이런 것들이 아이들이 커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싶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 혹시나 사이판에 방문하는 한국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아이가 다 읽은 책,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갖고 도서관에 방문했다. 큰아이는 다 읽은 책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오래 간직하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은 소중한 책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유리창 반대편 사서를 향해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듯 우뚝 멈춰 섰다.


“사서 선생님께 이 책을 기증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비장한 임무를 맡은 작은 아이가 사서분께 자신의 한국 책을 기증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사서는 책의 표지와 속까지 꼼꼼히 살피더니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쓰라며 펜을 건네주었다. 이름을 쓰는 작은 아이의 손이 경쾌한 리듬으로 바삐 움직인다. 신이 났는지 이름과 날짜를 또박또박 예쁘게도 적었다.

초라한 한국 서가에 반짝이는 하얀 책 한 권을 남기는 일. 사이판에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특별한 방법이다. 도서관을 나와 차에 타자마자 큰아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들썩였다.


“오늘이 가장 신나는 날이에요.”


가라판 대로변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가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한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줄 선물을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골라놨다.

“인당 15달러 이내로 골라 보자.”

아이들은 15달러가 한화로 얼마인지 계산을 하더니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단짝 친구에게 줄 선물과 자신의 기념품. 쇼핑을 즐기지 않는 엄마지만 아이들의 즐거운 쇼핑 시간은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큰아이는 친구의 키 링과 자신의 하늘색 팔찌, 작은 아이는 친구의 키 링과 자신의 머그를 골랐다. 모양, 색상, 재질, 가격을 따지느라 기념품 가게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15달러 이내로 골라놓은 물건들이 봐도 봐도 좋은지 아이들은 연신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Joeten-Kiyu Public Library #I Love Sai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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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TIP

한 달 살기 방문객은 도서 대출이 불가해요. 하교 후나 주말을 이용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어린이 도서실에 있는 보드게임을 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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