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와 걱정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10년 전 즈음인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사는 언니와 각별하게 지냈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게 즐거워 종종 만나 차를 마시곤 했다. 언니는 먹고 싶은 건 당장 사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꽤 넉넉한 형편이었다. 언니의 남편은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언니에게도 없는 게 하나 있었다.
“나는 변변한 보험이 하나도 없어.”
“언니 거 말하는 거야?”
“나하고 신랑. 우리가 크게 아프면 그날로 우리 집은 파산일걸? 하하.”
걱정을 쓴웃음으로 넘겨버리는 언니를 보며, 나는 정말 친동생처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 다른 건 몰라도 형부 정기 보험은 가입해.”
“그게 뭔데?”
“음 그건… 형부가 돌아가시면 목돈 나오는 거. 형부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도 언니랑 애들이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까.”
멀쩡한 사람을 두고 죽음을 얘기한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근데 그런 보험은 얘네 아빠가 싫어할걸? 자기 죽으면 목돈이 나온다는데…”
“그래도 가입해. 언니는 가정주부잖아. 만에 하나 형부가 먼저 떠나면 언니랑 애들이랑 힘들단 말이야.”
우리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사실을 알고 있던 언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렇긴 하겠네. 그런 생각은 아직 안 해봤네.”
“형부 생각이 무엇이든 1억짜리라도 그냥 가입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주말에 애들 아빠랑 얘기해 봐야겠다.”
“응. 그래야 언니가 아이들을 키우는 내내 마음이 편해.”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강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보험회사 직원으로서 다양한 보험 상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릴 적 내가 직접 겪어 본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남편의 정기 보험을 알아보았다.
“며칠 후에 보험설계사 분이 자기네 회사로 찾아갈 거야.”
“왜?”
“내가 자기 정기 보험 가입한다고 했거든.”
남편은 왜 가입하는지, 얼마나 가입할 건지 따져 묻지 않았다. 사실 남편이 보험에 대한 반감이 있든 경제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여유가 없든, 이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한부모 가정에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
가장의 정기 보험은 장마철 밖에 나갈 때 챙기는 단단하고 긴 우산과 같았다.
가장의 죽음이 유가족에게 얼마나 무겁고 고단한 짐을 지우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어느 날 갑자기 죽으면 나랑 애들은 어떻게 살겠어. 다 울고 난 뒤에는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잖아. 애들이 다 커서 독립할 때까지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있어야 내가 마음이 편해.”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험료 얼마 내고 자기가 평생 안심이 된다면 됐지, 뭐.”
어느 날 갑자기 배우자가 떠난다는 것은 어떤 슬픔과 견줄 수 있을까. 게다가 내 옆자리가 텅 비었다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가난’이라는 고통이 뒤따라 찾아온다면…
언제나 그렇듯 신이 계획한 잔혹극에도 교훈은 숨어있었다. 배우자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은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과 먹고살 만한 경제력이다.
정기 보험.
생소하다면 배우자와 한 번쯤 이야기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