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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Jul 25. 2024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

꿈을 키우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본 글은 지난 주말 둔촌 백일장에서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대회에 제출한 글을 브런치에 써도 되느냐고요? 네, 너무 됩니다. 시간이 없어서 많은 부분을 원고지에 적어내지 못했거든요. 언제쯤 마감 시간 안에 글을 맛깔나게 척척 써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난봄, 하교하는 둘째 아이의 작은 손에 화분이 들려 있었다. 한 살이 식물인 강낭콩을 기르며 관찰 일지를 쓰는 것이 과학 숙제라고 했다.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 한쪽에 화분을 놓고 흙 속에 강낭콩 다섯 알을 심은 아이는 식물이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을 흠뻑 주었다. 제 성을 따서 작명한 ‘신콩이’는 우리 집의 작은 일원이 되었다. ‘신콩이’의 짙은 갈색의 흙냄새와 따사로운 햇볕은 내 기억 속 그곳,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간다.  



   

그해 늦가을, 아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작은 시골이라 아빠의 소식은 금세 전교생의 귀로 흘러들었고, 친구들의 동정 어린 눈빛이 나를 더 주눅 들게 했다. 아빠를 잃은 나와 배우자를 잃은 엄마의 세상은 일순간 작아졌다. 밤낮없이 이웃집을 드나들던 엄마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고, 늦은 저녁까지 아이들과 뒷산을 누비던 나는 집에서 책이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하얀 눈이 덮인 우리 집은 얼음 속처럼 시렸다. 매서운 바람을 핑계로 집 안에 머무는 날이 잦았다. 하지만 꽁꽁 언 우리의 시간에도 따뜻한 볕이 비추기 시작했다. 봄이 온 것이다.     


시골의 봄은 분주하다. 겨우내 집 안에만 머물던 노쇠한 할머니들까지 문밖으로 나와 일손을 보탰다. 역동적인 시골의 봄 열차에 엄마도 뒤늦게 합류했다. 읍내 시장에 나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 아름 사 온 것이다. 각종 채소의 모종과 씨가 메마른 마당에 쌓였다. 그리고 봄바람이 가져다준 그것 들은 집 앞 텃밭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바빠진 엄마의 손과 발, 촉촉이 젖은 텃밭의 흙은 생기를 가져온 듯했다. 차가운 얼음 바닥에 훈풍이 불어 생명들이 꿈틀대는 소리가 들렸다.     


구획된 텃밭에 모양이 다른 잎들이 날로 풍성해졌다. 유약을 바른 듯 연두색의 반짝거리는 어린잎, 태양을 찌를 듯 끝이 뾰족한 잎, 수려한 꽃 모양의 짙은 녹색 잎에는 어떤 열매가 달릴까? 아침마다 호스로 물을 주는 것이 엄마의 일이라면, 쓸모없이 잡초를 뽑아내는 것은 어느새 나의 몫이 되었다. 뿌리와 잎 사이를 엄지와 검지로 꽉 잡아 쑥 뽑아내면 잡초의 잔뿌리까지 밖으로 나왔다. 잡초가 낸 자리를 흙으로 다시 살살 덮으며 기도했다. 아빠의 빈자리도 좋은 추억의 흙으로 메워지길, 다시 전처럼 일상의 대화와 보통의 날들이 주렁주렁 열매 맺길. 

    

맨 앞 기다란 줄기에는 옥수수가 듬성듬성 달렸다. 그 뒤를 이어 참외, 수박이 귀여운 열매를 뽐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듯 작지만, 확실한 것들이 줄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엄마는 작은 열매를 보며 미소 짓는 날이 더러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텃밭으로 끌고 가기 일쑤였다. 호미를 들고 엄마 손에 이끌려 텃밭에 나가는 것이 내가 가장 기다리는 방과 후 일과가 되었다. 나와 엄마의 공동작인 찰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집안을 울리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퍼졌다. 텃밭에 앉아 엄마와 내가 재깔거리는 소리가 이웃집까지 들렸다고 했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의 보답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것들이 식탁 위에 놓이며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갔다. 그뿐일까. 다종다양한 열매를 손에 쥐며 엄마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 식물은 손끝이 까매지도록 김을 매고, 이른 새벽 물을 담뿍 주어야 굵은 결실을 내주었다. 손이 바삐 움직이고, 텃밭 식물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엄마 얼굴이 반짝였다. 더 까매지고 단단해진 엄마의 손을 잡으면 나도 저절로 힘이 생겼다. 좋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아이가 가져온 강낭콩 화분 옆에 시장에서 사 온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어두었다. 우리 집의 단출한 텃밭이 꾸려지자 아이의 시선이 베란다에 점점 오래 머물렀다. 어떤 색 꽃을 피울까, 꼬투리는 몇 개나 달릴까, 강낭콩이 자라면 뭘 해 먹지, 아이의 생각은 온통 작은 텃밭에 머물렀다. 그 시절 나와 엄마가 겪었듯, 작은 텃밭을 가꾸는 아이의 마음에도 새싹이 돋아날 테다. 강낭콩 줄기가 길고 굵어지며 아이의 생각 줄기도 조금은 단단해지겠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가만히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집의 작은 텃밭에는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하는 강낭콩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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