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한부모 가정의 아이
사정이 조금 다를 뿐, 틀리지는 않습니다.
한여름 저녁 무렵, 아이들과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 모퉁이에서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째 아이는 그 무리를 설핏 살피더니 말했다.
“저기 있는 친구, 4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요. 그때 선생님께 많이 혼났었는데….”
“개구쟁이 친구구나.”
“한부모 가정 친구예요.”
순간 날카로운 가시가 손가락 끝에 박힌 것처럼 가슴이 저릿했다. 아이의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은 이유는 꾸중으로 이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친 것도 없으면서 괜히 감정에만 휘둘려 혼내고 싶지는 않았다.
한부모 가정 아이라서 말썽을 피운다는 걸까?
한부모 가정 아이라서 완벽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걸까?
한부모 가정 아이라는 이유가 곧 문제아라는 생각일까?
많은 생각이 휘몰아쳤지만, 다그치듯 아이를 몰아세울 것 같아 입을 꾹 닫아버렸다. 제 엄마도 같은 모습이었다는 걸 아는 녀석이라 좀 서운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한부모 가정 아이에 대해 선입견이 있다는 걸 안다. 다들 이혼 가정이 많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인식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나 또한 한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딘가 부족한 구석이 있을 거라 여기지는 않는지 반성하게 된다.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내 기준에는 사소한 일이라도 크게 다그치곤 했다. 이웃에게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든지,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다든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을 때 엄마는 다정한 격려는 건너뛰고, 무서운 경고장부터 날리는 경우가 흔했다.
그 이유는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되었다.
아빠와 함께해야 할 교육을 혼자 감당했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두세 번 어를 시간이 없던 탓에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단번에 교정하려 했을까.
간혹 애들 아빠와 일정이 맞지 않아 아이 둘을 데리고 체험활동에 참여할 때가 있다. 그러면 전날부터 교통, 먹거리, 체험 내용을 꼼꼼하게 숙지한다. 체험활동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의 안전에 신경이 곤두서고, 활동에 필요한 것들이 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된다.
2-1=1이라는 공식이 들어맞지 않은 상황이다.
하나가 빠졌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빠진 부분을 어떻게든 메우려 부단히 노력한다. 홀로 남은 엄마나 아빠가 늘 그렇다. 아이들 성장 과정에 움푹 파인 구덩이가 생길까 봐 매 순간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 엄마가 그랬고,
어딘가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아빠도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하자면,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어딘가 단단해진다. 배터리가 가득 충전된 가정에서 편안하게 자란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스스로 내공을 쌓게 된다.
그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정서일 수도 있고, 나를 지키기 위한 특별한 사회적 기술일 수도 있다.
현재의 모자람이 미래의 부족을 단언할 수 없다. 어쩌면 현재의 결핍이 더 괜찮은 미래를 짓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아이를 혼자의 힘으로 키우는 부모를 응원한다.
내가 그렇듯, 자녀도 아마 보통의 어른으로 잘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