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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Jul 11. 2024

하늘에서의 대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며칠 전 핸드폰으로 부고 소식이 왔다. 30여 년 전 우리 가족에게 아빠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린 동네 아저씨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였다. 올해 딱 일흔의 나이였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꽤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아빠이자 우리 아빠 고향 친구의 죽음은 서로 만나지 못한 세월이 무색하게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우리 아빠를 만나셨겠구나.’     


유가족들의 슬픔을 안타까워함과 동시에 비정하게도 하늘 어딘가에 계실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아저씨는 어릴 적 우리 옆집에 살며 하루에도 여러 번 아빠를 부르던 분이었다.      


“진규 아빠, 나 삽 좀 빌려 갈게.”

“진규 아빠, 오늘 말머리에 일하러 나갈 거지?”     


이웃사촌을 넘어 ‘이웃가족’쯤 되는 아주 가까운 사이.      

우리 가족을 대표하여 오빠가 조문하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시골을 떠난 후 옆집과 연락한 적이 없어 장례식장까지의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많이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만에 하늘에서 만난 일흔 살 할아버지들은 어떤 대화를 나눌까? 우리 아빠만 마흔 살 모습 그대로라 아저씨가 좀 억울하시려나.   

  

“자네는 젊을 적 그대로군.”

“일흔이면 자네 모습이 정상이지. 나는 시간이 멈춘 채로 우리 아이들, 애들 엄마 그리고 친구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네.”

“애들과 애들 엄마는 어떻게 지내는가? 나는 통 연락을 못 해봐서 말이야.”

“생각보다 잘들 지내고 있다네. 애들 엄마는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해서 시골 할머니가 다 됐고, 진규와 민정이도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살고 있지.”

“그거 듣던 중 기쁜 소식이구만. 우리 아이들과 애들 엄마도 나 없이… 잘 지내겠지?”

“그럼. 자네는 나보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오지 않았나. 아마 자네가 떠나도 자네가 남긴 추억들로 오래도록 웃으며 지내게 될 걸세.”  

   

이제 할아버지 나이가 된 아빠는 차츰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재회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토록 보고 싶던 아들딸도 만날 수 있겠지. 아빠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아빠, 여기서 우리 다 보고 있었지? 그래서 나랑 오빠랑 엄마랑 어떻게 지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겠다. 나는 이 나이가 되니까 죽는 게 무섭지 않더라. 아빠 손주들도 이제 다 컸잖아. 그리고 이렇게 아빠를 만날 거란 기대감도 있었어. 아빠 나는 살면서 대체로 행복했어. 대단한 부자도 아니었고, 좋은 직업을 갖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날이 더 많았어. 왜인 줄 알아? 아빠가 우리 가족들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호해 줬잖아. 처음엔 엄마랑 오빠랑 나만 지켜보다가, 오빠랑 내가 새 가정을 이루고부터는 아빠도 되게 바빠졌겠다. 이 집 저 집 돌보느라… 아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말이야. 고마워, 아빠.”     


할머니가 되어도 내 입에서 나오는 ‘아빠’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삼. 

   

비록 아저씨의 빈소에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 동네 꼬마들에게 오디가 소담하게 담긴 소쿠리를 건네주셨던 따뜻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했던 아저씨는 분명 천국에 있을 아빠를 만나셨을 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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