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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Feb 08. 2023

우리는 여전히 근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나의 연구 표류기

작년 연말부터 "근대"에 관한 서적들을 읽어오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근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책들은 아니지만 근대와 관련된 계급, 혁명, 산업, 정치, 경제, 사회학, 철학 등이다.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메이지유신, 자본주의, 공산주의, 세계대전, 소련의 몰락, 중국의 시장개방, 냉전, 소비사회, 금융팽창, 능력주의 등으로 연결된다.


박사논문에서 내가 궁극적으로 던졌던 질문은 '공간은 무엇인가?'였다.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소비공간의 생산과 온라인 블로그에 나타난 내러티브의 관계를 연구했었다. 그 후속 연구로 한국의 소비공간에 담긴 "핫플레이스"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를 준비하던 중에 나는 표류하게 되었다.


소비문화와 소비공간에 담긴 굉장히 복잡한 이념, 욕망, 가치, 지식, 기술 때문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이것들 또한 공간생산의 일부분으로 보았다. 특히 핫플레이스에는 한국 청년층의 욕망이 압축적으로 담겨있는데 이것은 다시 문화, 경제,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어 있으며 쉽게 그 경계를 구분 지어 독립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기자를 하는 대학원 후배와 자주 만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러한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갈 힌트를 자주 얻고 있긴 하다.


여하튼 복잡한 요소들을 리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길을 잃었고, 18세기의 프랑스혁명까지 흘러들어 가야 했다. 근대학문인 도시계획학에서도 그 출발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19세기 오스만 시장의 파리 대개조 사업이다. 영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를 연구하면서 파리대개조를 파괴적인 창조인 동시에 창조적인 파괴인 모더니즘의 기원으로 보았다. 그 후에 미국과 일본의 포디즘과 같은 산업적 대량생산 체제로 이어졌고 도시의 생산도 아파트와 같은 대량생산 방식을 나타냈다(이 현상에 관해서는 발레리 줄레조의 책, 아파트 공화국에서 잘 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근대 연구는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회복력 시대(The Age of Resilience)를 포함하여 최근에 출판된 여러 서적들에서 산업사회의 끝을 언급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부터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전에 따른 에너지 및 식량 위기, 기후변화 문제까지 기존 산업사회의 효율의 관점에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가 일궈놓은 풍요의 시대는 저물고 전에 없던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회복(resilience)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정확히는 회복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이렇듯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오고 있는데 지금의 급격한 변화의 동력도 따지고 보면 근대에 기인한다는 것이 내 표류기의 중간 결론이다. 근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맥락에서 새로운 변화가 설명될 수 있다. 근대를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방대하고 까다롭지만 현대의 거의 모든 사회 현상의 근원에는 근대로부터의 연속성 안에서 존재하기에 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해 갈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현재 세상의 혼돈과 무질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

요즘 내 머릿속처럼 어지럽혀진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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