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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Feb 28. 2023

토지의 속성 변화

중세의 봉건제에서 근대적 소유의 시대까지

중세시대 이전에 세계인구가 5억도 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대부분의 땅은 주인이 없었을 것이다. 훗날 왕이라 불릴 강한 군주가 나타나서 지역의 토착 부족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면서 땅을 모두 선점하게 되었다. 이후 그곳에서 대대로 살아가던 농민들에게 "소작농"의 형태로 군주의 땅을 빌려주는 시스템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세금제도도 함께 발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주가 소유한 토지가 너무 커지면서 관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에 측근인 신하들(지배계층)에게 왕이 가진 일부 토지(royal estate)의 소유권과 지배권을 나누어주게 되었고, 이들은 영주가 되어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게 된다. 이것이 왕정시대의 봉건제도다.


이 점에서 조선의 중앙집권 시스템은 봉건제보다 선진적이었다. 각 영주들의 군사력을 통제해야 하는 봉건제(대표적으로 일본 도쿠가와 막부)와는 달리 중앙집권제는 왕을 중심으로 한정된 자원을 비교적 효율적으로 집중 혹은 배분할 수 있었다. 영국의 공업도시들이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가 아닌 주로 잉글랜드 안에 위치해 있다는 점도 이런 봉건제의 영향(권력을 가진 잉글랜드가 세 개 국가의 경제력 및 군사력 통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귀족은 바로 땅을 가진 영주의 후손들만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다. 그래서 귀족 타이틀에는 지배하는(혹은 했던) 지역명이 붙는다. 마찬가지로 영국 왕실의 왕자들도 정식 타이틀에 지역명이 붙는다. 해리 왕자의 정식 타이틀은 Duke of Sussex다. 예를 들어 영국의 대표적 귀족인 런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은 현재까지도 그 일대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수백 년간 이어져온 가족경영의 부동산 회사를 통해 매년 막대한 임대수익을 얻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 성씨의 본관에도 지역명(e.g. 안동 김 씨)이 붙는데 과거 지역 지배계층(종택 위치)의 흔적이다. 성씨는 곧 양반계급과 권력의 뿌리(본관)를 상징했었다.


근대화가 혁명적인 이유는 토지소유자(대부분 영주와 귀족)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던 권력을 일반 시민들에게 권리로써 균등하게 분배했다는 점에 있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금융과 제조업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가 주류 정치판에 등장하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 일본, 영국에서 현재 대를 이어 지역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지역에서 규모가 있는 금융업이나 산업체를 운영해 온 부르주아지 집안이 많다. 즉, 지역의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선출을 통해 권력도 얻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지의 등장으로 시대의 생산시스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적인 지주들은 몰락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토지의 속성이 전통적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고 근대적 대량생산 시스템과 금융자본의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점유되는 "소유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원래 토지는 권력의 전리품이었다(부동산이 영어로 왜 왕의 땅이라는 의미의 real estate인지 생각해보라!). 지리학자 닐 스미스가 주장했던 불균등 개발(uneven development)도 이러한 새로운 소유의 시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 토지가 가진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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