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근대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발달한 도시학은 최대 다수의 개인들을 만족시킬 "합리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그래서 도시계획에서 합리적인 공간 배분 및 집중, 공공성 확보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전략이다. 20세기 초, 두 차례의 세계대전,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파괴와 궁핍은 재건을 위한 개발행위를 합리화시켰다. 우리도 한국전쟁 이후의 도시 개발 및 재개발 행위들이 이천년대까지 반세기 동안 이어졌고 그것이 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행위라고 믿어져 왔다. 즉, 구시대의 파괴가 사회경제적으로 용인되어 왔다.
이천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서 논의되어 왔던, 개발을 통한 합리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탈산업화 과정에서 이것은 필연적으로 재생이라는 믿음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문제는 도시재생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 따르고 있지만 정작 재생을 통해 추구해야 할 합리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되지 못했다. 개발(파괴) 없이 동네를 되살리는 것 정도로 가볍게 여겨졌다. 정작 주민들이 원하는 인문학적 개인의 삶, 공간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부재한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맹목적인 상업적 가치 추구는 도시재생의 합리성을 왜곡시키고 과거와 비슷한 개발의 합리성으로 흐르게 하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추구해야 할 합리성은 무엇인가? 개발의 합리성은 국가에 의해 제시된 통합적 비전과 가치라면, 재생의 합리성은 주민 개개인이 고민하여 만들어가는 다양성의 가치다. 그래서 재생은 어렵고 시간이 소요된다. 어쩌면 20세기의 구시대적 관점에서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사업이 현대 도시재생이다. 그만큼 경제적 효율의 합리성이 아닌 새롭고 다양한 미래의 가치를 발굴하여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