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부터 재생사업까지
모순, 대립, 파괴, 창조, 변화
나는 박사논문에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푸코로 대표되는 현대의 구조주의 철학을 어설프게 조합하여 논리를 전개시켜 나갔었다. 아마도 철학 전공자가 보기에는 형편없는 분석의 틀이었겠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모순적 도시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나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주거공간이 상업화되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에서 젊은 예술가들과 소상공인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거리의 문화에 의해 "파괴적 창조"와 "창조적 파괴"가 동시에 일어난다.
파괴적 창조는 기존 동네의 가치와 규범에 반하는 새로운 문화적 로직이 형성되는 것이며, 창조적 파괴는 이들에 의한 창조적인 문화가 오히려 거리의 상업화를 촉진시켜 커뮤니티를 의도하지 않게 해체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모순적 대립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성격을 쉽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조로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그 이유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모순적 대립을 동력 삼아 끊임없이 변화하는 찰나의 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도시재생사업 역시 파괴와 창조의 모순적 대립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전면철거형 개발처럼 철저하게 파괴(철거)와 창조(개발)를 구분하여 단계별로 진행해나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개발도 보전도 아닌) 재생이라는 모호한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파괴와 창조의 대상이 역전되거나 충돌되어 이도 저도 아닌 단계에 정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모두를 위한다는 가치가 오히려 모두를 실망시킬 수도 있는 위험성을 항상 내포한다. 따라서 계속 변화하는 혹은 변화해야 하는 동적 운명을 가진 도시재생사업의 성공 여부를 한순간의 정지된 지표로 파악하기는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전면철거형 개발의 지표로 재생사업의 결과를 판단하기도 한다.
도시재생은 파괴에 의해 창조되는 조각과 같다. 쓸모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새로운 형태를 창작하는 창조의 작업이다. 개발이 완벽한 무의 상태로 만들어 새로움을 쌓아 올린다면, 재생은 결에 맞게 정교하게 망치로 두들겨 새로운 시대의 가치에 맞게 그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재생에서 어느 정도의 파괴는 불가피하다. 파괴를 해야 창조되는 것이기에. 무엇을 파괴할지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창조할지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다. 새로운 지역적 가치로 기능을 다한 오래된 가치를 깨부술 때 공간의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