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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May 16. 2022

공간은 '정말로' 의식을 지배하는가?

공간결정론: 소통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방통행의 모순

요즘 온라인에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했던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이 보인다. 공간에 대해 수년간 고민해온 연구자로서 공간결정론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인간의 의식이 공간 형성에 관여하고 공간(건조환경)에서의 일상이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인간은 그저 가만히 영향만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공간(건조환경)은 인간에 의해 형성된다. 공간 설계자나 권력을 가진 의사결정자는 본인의 목적을 위해 특수한 공간 장치들을 은밀히 설치하곤 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문화, 정치, 경제, 자연현상, 전쟁 등 셀 수 없이 많고 복잡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쳐왔다. 따라서 인간, 사회, 자연환경의 복잡계는 완벽하게 통제 불가능한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이 인공적 공간을 일시적으로 지배할 수는 있어도, 공간에 의해 의식이 지배당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인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파놉티콘의 사례를 통해 공간에서의 감시행위를 최적화하여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공간생산의 매커니즘을 보여주었지만 이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공간적 장치로 형성하여 실현시키는지를 보여준 경우다. 즉, 애초에 공간의 설계는 인간의 의식과 관념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깨부순 오직 새로운 혁명적인 건축만이 인간의 의식 지배에 조금은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는 기껏 모더니즘의 "파괴적 창조" 관점에서 19세기 말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의 공간구조로 모던하게 개조한 오스만과 20세기 초에 고층고밀의 거주형태(아파트의 원형)를 제시한 르 꼬르뷔지에가 현대적 공간 의식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언급되긴 하지만 이것 역시 인간의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기의 순환 맥락에서 입지가 가진 기운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전통적인 풍수지리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간, 사회, 인간은 상호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분명 공간의 영향은 있겠지만 능동적인 인간의 의식과 운명을 결정 지을 수는 없다. 과거 교화를 목적으로 억압적으로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행위 역시 공간결정론을 전제로 하며, 권위적인 독재정부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폐쇄적 권력공간과 엔터테인먼트 공간(스포츠 등)을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 온 극단적인 역사가 있긴하다. 하지만 정치나 종교 그리고 경제적인 목적 아래에서 공간은 하나의 문화로서 인간사회와 상호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쪽 방향의 공간결정론은 그 자체로 모순이며, 만약 공간의 인간 의식 지배가 성립된다면 그 자체로 양방향 소통의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억압적 사회로 변화함을 뜻한다. 따라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공간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느끼기에 섬뜩한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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