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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알 수 없어” 그 매력 속으로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지만 가까운 ─ 뜨겁지만 차가운 〈 코케트 〉

by B패션가

‘세이렌’과 연결되는 적정한 온도를 가진 캐릭터다.

또 다른 매력의 캐릭터 ‘ 코케트’로 이어 기술해 보려고 한다.


노파심에, 〈 들어가기 전 〉 유념할 것은,

어디까지나 [책]이라는 사유의 도구를 활용해 지극히 사적인 나의 시선이다.

또한 나의 개인적인 세계관을 책이 가진 재료를 안목으로 삼았다.

내가 눈에 담고 있는 ”패셔너블한 태도“에 관한 것이다.


또 한 가지 경계(?) 해야 할 것은,

사람과 상황을 봐 가며 들이대야 한다.

자칫하면 요망 지다.

관찰자의 태도로서 학습의 쓰임이라면 쭉 읽어보길 바란다. 상관없다.

누군가를 짐작하거나 알아가기 위해서 “이성적 탐구”가 필요하니. 기꺼이.


그리고, 이제 “나의 그릇“에 담아내려면,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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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이, 가능하다면 이제부터 시작해도 좋다.





화끈하면서도 차가운 ─



사람들은 쉽게 얻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에 상대를 소유할 수 없을 때,

혹은 거절당할 때, (거절당할 까봐)

더 애를 태우고 흥분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멀어진 것 같으면서도 가깝고,

가까워진 것 같은데, 다시 거리가 느껴지는 …?

이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 일정한 거리’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워,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데

이상하게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을 땐 도통 알 수도 없다.

“이게 뜨거운 건가?” 혹은 “차가운 건가” ─ 어떤 온도에 맞춰야 하는 거지?

가끔 어떤 상대는 화를 내기도 한다.




오래도록 유혹의 힘을 발휘하려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 오비디우스

책 속에서는 〈 앤디워홀 〉 의 무용담이 나온다.

1967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할 것이 없는 것일수록 더욱 완전한 것이다.”라는 그의 지론을 언급했다.



침묵, 진공상태 〈 여백 〉 ─ 호기심 가득한


세상에는 자신을 내세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랑하고 보여주고, 이로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 동안 ‘ 일시적인 승리를 맛보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 여백 〉 을 남기지 않는다.


여백이 없으면 유혹이나 매력적이기 어렵다.


여백은 여유의 다른 말인 셈이다.


차가운 코케트는 자기 주변에 여백을 남김으로써 아리송한 이미지를 만든다. 냉담한 태도와 침묵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말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한 걸음 다가가 볼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나의 마음이 조금 다가가도 되나?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무관심하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지만, 누군가 다가오면 순순히 자기를 맡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부 의사를 밝히지도 않는다.


다만 너무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나의 걸음도, 나의 마음도 왠지 ‘조금’ 가도 될 듯 한 신호를 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태도는 사람들을 계속 끌어들인다.


‘조금’ 다가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 누군가들은 코케트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자 열망하고 있다.


인정을 넘어 때론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침묵’이라는 진공상태를 싫어하는 본성이 있다.

감정적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빈 공간을 말과 열정으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진공을 여백으로 그냥 두고 즐긴다면 그 태도 자체가 매혹 ・ 유혹으로 완성될 것이다.


흔히 “안달 나게 하다”라는 것의 특성


흔히 코케트의 매력은 도발적인 외모나 매혹적인 태도로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만족을 주지 않는 기술”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사로잡아 유인하는 능력이다.

차갑고 멀리하는 듯한 인상지만 이상하게도 강력한 유혹의 힘이 발휘된다.


흔히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안달 나게 하다.”라고도 표현한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 사랑과 욕망’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과감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여 상대의 관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케트는 차갑게 돌변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때론 이러한 태도가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고, 호기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라는.

또한 냉담한 모습은 상대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온기와 냉기를 잃은 상태는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코케트의 힘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교차시키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는 다시 마음을 얻고자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책 속에서는 8세기경 ‘ 양귀비’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녀는 상냥한 태도와 냉정한 태도를 적절히 혼합해 현종을 사로잡았다.


갖은 애교를 떨다가도 그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돌변해 화를 내며 냉랭하게 굴었다.

그는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여념이 없었고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물 역시 같은 효과를 자아냈다.


특히! 바로 이 대목이다. 여기가 “사람과 상황 봐 가며” 나의 현실적 맥락을 들이대야 한다.


아무리 상대의 ‘사랑‘의 마음이 전제되었더라도 위와 같은 행동은 무례하고 건방지다.

혹은 현대인의 대표적인 기분장애의 질환으로 꼽는 조증 조울증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확신 없이 저랬다가는.

그다음은 내 말하지 않겠다.


‘들이대기’ 보다 ‘물러서기’


코케트의 매력은 적극적으로 유혹하기보다,

(시쳇말로 “들이대기” 보다)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거나, 주었거나 ─

갑자기 뒤로 한 발 물러서는 특성에 있다.


이 대목에서 책 속에서는 흥미로운 심리학적 해석이 등장한다.

‘ 나르시시즘’의 맥락이다.

유년기 때, 즉 사회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배우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전까지 제 멋대로 내 세상인양 즐겁기만 부리던 사고와 태도를 접고 부모를 통해 배려의 미덕을 학습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사는 여성’ 이 있다.

흔히들 ‘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애간장을 태우는 그녀들이 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고, 본인 스스로의 일상과 존재 자체에 만족하며 일상과 삶을 영위하는 그녀들은 무엇이든 애를 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느끼고, 행동하며 서슴없이 즐긴다.


남성들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그녀들을 보며,

길들이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는 의미를 새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질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다.


질투심은 나르시시즘과 연관되지 않는다.

또한 나르시시즘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자신을 드러내고픈 마음과 끊임없이 자랑하려는 태도는 인정받고 싶고, 존재를 확인받고 싶다는 불안의 표현일 뿐이다.


도발하는 적정한 지점, 그걸 알아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과 행동뿐만 아니라, 상대를 유혹할 때 역시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 흥분’의 역치를 정확히 계산한다.


단정하면서도 가끔씩 자신을 헝크러뜨려 풀어놓는 모습과 태도,

어떠한 행동 속에 내 몸의 특정 부위를 드러내는 제스처,

가끔 ‘ 어떤 날’에 예상하지 못했던 착장으로 상대를 흥분하게 하는 연출력 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이 같은 표현방식은 ‘ 세이렌’과 연결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차갑고 뜨거운 교차점과 속을 알 수 없는 냉기가 결착된 유혹의 캐릭터가 바로 ‘ 코케트’였다.


좀 더 자세히 읽고 싶다면 책〈 유혹의 기술 〉 , 로버트 그린 저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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