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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미 ─ 꾸안꾸 시대를 넘는 진짜 ‘멋’

by B패션가

‘옷을 잘 입는다’는 것에 대해 나는 트렌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의 정보와 사유, 그리고 통찰을 입힌다.

때로는 관조적이며, 가끔은 철학적이다.


며칠 전, 우리 스토어 스태프와 대화하는 와중에,

이게 저의 ‘추구미’ 예요.

라는 말을 들었다.

‘추구미’ 라 ─

그래서 요즘 나의 ‘추구미’를 써볼까 한다.



나는 요즘 무엇을 입는가?


나는 요즘 조촐할 정도로 가벼운 조합을 즐긴다.


티셔츠들, (그중에 화이트 티셔츠를 제일 자주 입고 좋아한다.)

그 위에 셔츠,

그리고 트레이닝팬츠 (혹은 조거 팬츠라고 부르는 일명 ‘운동복 바지’) 가 기본 착장 구성이다.


여기에 내가 인정(?)하는 잘 만들어진 재킷,

혹은 경량 패딩, 점퍼류들을 걸치곤 한다.

보편적으로 널리 입는 제품들이지만,

‘입었을 때’ 만들어지는 실루엣을 믿는 선택들이다.

무엇보다 꼭 하나의 ‘킥(keek)’을 꼽자면 갖가지 나의 운동화들이 만들어 주는 변주이다.


어떻게 입게 되었어?


지난 시간 동안 입었던,

내 옷장의 옷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나를 꽤 끌어올리고 애썼던 것 같다.

‘각’을 잡았고, 꼿꼿했다.

때론 꽤 진지했다.

잘 갖춰 입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이 잘 잡힌 무게에 상반된 질감의 카테고리를 한 조각 얹는다면?’


그래서 나는 헝클어트리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뒤집힌 건 아니다.

그냥, 조금씩, 하나씩 ─


‘ 갖춰진 착장’에서 ‘흐트러진 착장’으로 ─


처음엔 운동화가 가장 쉬웠고,

그다음엔 티셔츠가 쉬웠다.


그렇게 하나 둘의 가벼운 아이템들을 걸치다 보니, 나 혼자만 알아챌 수 있는 ‘다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가벼워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편한 '의'를 하나씩 입어갔다.

옷의 헐렁한 여백 덕분에, 나의 움직임은 넘실거리며 활보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나를 무르익게 했던 레퍼런스

‘더로우(The Row)’


흐트러져도 괜찮아.

아니,

‘굳이 더 치장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의미와 확신을 준 문법이었다.


매무새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단정‘ 이 주는 신비로운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로우(The Row)는 여전히, 그리고 패션 혹은 미학에 예민한 이들에겐 언제나 ‘기준’ 같은 존재다.


아름다움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가 원하는 흐름을 주도한다.

과하게 힘을 주지 않는데도, 늘 압도적이다.


실루엣은 가볍고 헐렁해 보이지만

항상 단정함이 지나고,

무채색만으로도 깊은 밀도를 만든다.

흐트러진 듯한 구성 속에서도 균형은 정확하다.


이러한 룩(look)들을 보고 있으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욕망 같은 것이 스친다.


‘갖고 싶다’

‘되고 싶다’

이처럼 결심 같은 심지가 세워지면서, 마음의 태도를 고쳐 앉게 했던 것 같다.


The Row SPING 2026


The Row WINTER (2024)


‘멋짐’ 은 각자의 몫, 이

느낌 그 자체를 보는 것


이것이 ‘멋짐’인 것일까?

아마도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다만 그 취향에 대해 덧붙이자면,

자세히 알려고 하기보다, 그냥 내버려 두듯이 걸치는 느낌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상징일 수도 있고, 던져진 느낌일 수도 있다.

느낌 그 자체,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느낌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가치’까지 더해졌을 때,

훔쳐보고 싶을 정도의 만족감으로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가치,

아우라를 가진 ‘패셔너블’이 되다


바르고 건강한 태도와 생활 습관,

청결한 숨결,

총명한 눈빛과 끊임없이 솟아나는 힘, 사랑과 열정으로 충만한 호소력 따위의 것들.


어디에서 나오는지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마음이 만드는 태도이지 않을까 싶다.


그 태도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는 느긋한 마음이다.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유연한 의식의 흐름이 시작이다.

흐름은 사고방식을 만든다.

그리고 ‘꼴’을 만들어낸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까지 기울게 만들었다면, 당신들은 믿을까?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스타일링,

청바지에 흰 티셔츠 ─


역설적이게도, 쉽고 간결한 '한 마디'가 제일 어렵다.

패션 역시도,

흔히 말하는, 너무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 입었을 뿐인데 라는 그 착장이 제일 어려운 착장이다.

모두에게 하나쯤 있는 품목들 일 것이다.


고작 그 정도로 빛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것만 갖고도 ‘나의 꼴’에 당당할 수 있을까?

시선을 불러 세울 수 있는 이 정도의 수준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완성’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청바지 중에, 티셔츠 중에!

나를 위한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안목,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비롯되는 것일 테니까.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등

단순함이 만든 ‘시그니처’


좋은 착장은

좋은 마음과 태도에서 나온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에게 통한다.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이, 눈과 눈 사이에서 빛나고, 가슴과 가슴을 연결하는 힘을 갖는다.


그건 스스로 노래처럼 불려지고 하고,

마치 사진첩에 담고 싶은 ‘그림’처럼 캡처되기도 한다.

의식적인 노력이 없어도,

매력을 스스로 발산하게 하는 근원이다.


갑자기 세기의 유명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등

선택에 대한 지체 시간을 없애고, 개인의 아우라를 만드는 도구로 이용했던 단순함이 그들의 시그니처로 기억되었다는 걸.


그리고 무수의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 브랜드의 디렉터들도 그러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무수히 많은 날들 중에,

제일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에, (컬렉션의 런웨이) 피날레에서 그들의 착장이 담백했던 이유를.


(전) 카르뱅(Carve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Louise Trotter) 2025년 ~ (현) Bottega Veneta의 아트 디렉터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말이 있다.

허울만 요란하고, 속은 비어 있는 상태.

나만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할 때는, 허장성세를 부린다.

누구나 한 번쯤 거치는 과정이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쓸모가 있고 좋은 것들은 결국 마음을 살린다.

그 마음이 다시 하나의 ‘가치’가 된다.

비로소 ‘아우라’가 되어 배어 나오는 것이다.


조촐한 듯한 ‘단정한 표현’ 은 결핍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짙은 호소력을 가진다.


Phoebe Philo Breaks Her Silence (Publiced 2024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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