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배운 이멀전(Emulsion)

사회 초년생을 응원합니다

by 똑똑한호구

동네에 자주 가는 미용실이 있다. 1년이 넘게 주기적으로 가다 보니 이제 디자이너 선생님뿐 아니라 거기서 일하시는 보조선생님들도 얼굴을 거의 알고 지내는 정도인데 최근에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갔더니 새로운 얼굴이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하면,


"넵"


이라고 답을 했다. 메신저나 카톡에서가 글자로 쓰는 건 많이 봤지만 말로 "넵"하는 경우가 내 눈에는 낯설었다.


디자이너 선생님이 "xx 씨 이 고객님 이멀전 해주세요"

"넵"


Emulsion :
1. 명사 technical a mixture of liquids
2. 명사 a thin coating on photographic film or paper that contains chemicals which are sensitive to light


나는 머리를 감겨주는 샴푸실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보조로 보이는 선생님은 내 얼굴에 묻어있던 염색약을 지워주었다. 몇 분 지났을까? 디자이너 선생님이 체크하러 오셔서는

"xx 씨 이멀전이 뭐예요? 이멀전을 하면 뭐가 달라지죠?"

음....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데...? 아마도 이마를 비롯한 얼굴에 염색한 부위를 잘 지우고 뭔가를 해야 되는 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된 모양이다. 그리고 이 보조 선생님은 잘 몰랐던 것 같네.


디자이너 선생님은 내 얼굴에 지워지지 않은 염색자국들을 다시 지우면서 이멀전의 이유와 효과 등등을 설명해 주었다.

"여기까지 이렇게 하면 우리 고객님 얼굴에 염색 자국이 다 남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이렇게 하면....(부드럽고 능숙하게 쓱쓱) 자 이제 알겠어요? 그리고 염색자국만 지우면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머리를 이렇게 (진짜 능숙하고 시원하게 머리를 쓱쓱쓱~) 알겠어요?"

"넵 이제 알겠어요"


눈을 감고 있던 나에게 이 보조 선생님이 말을 걸어왔다.


"제가 20살인데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와서 실습 나왔거든요."

"어머 그래요? 이 일이 쉽지 않을 텐데 고생이죠~? 손도 빨라야 하고 눈치와 센스도 있어야 하고.."


알고 보니 미용실 본사에서 대학생을 실습하도록 3일간 교육을 보낸 거라고 한다. 대학생이 실습을 나왔으니 얼마나 모든 것이 낯설까? 금방 전에 디자이너 선생님의 시범과 설명이 이 학생에게 혹시라도 스트레스가 될까 걱정이 돼서 나는 힘들어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 근데 일이 재밌어요"


씩씩하게 "넵"이라고 답하면서 일을 배워가고 있는 20살의 소녀 같은 그녀를 보니 뭔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을 생각해 보면 실수할까 봐 벌벌 떨었더랬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의 당당한 멋짐은 이런 것인지.


그러고 나서 보니 "넵"이랑 생경했던 대답이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디자이너 선생님의 친절한 실습생 교육으로 인해 알게 된 이멀전을 하는 이유는 단지 얼굴에 묻은 염색약을 지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뿌리염색을 하는 사람의 경우 기존의 머리색과 이번에 뿌리염색을 하는 색깔의 차이를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뿌리염색에 있어서도 과학이 들어있고 그 결과물을 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연습 그리고 노력이 들어간다.


그날 머리도 감겨주고 머리도 말려준 실습생 선생님. 곧 사회초년생의 일상이 시작될 텐데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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