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살림과의 전쟁: 드디어 이사 가자구요!

버릴까 말까, 엄마와 청소 밀당은 여전히 진행 중

by 똑똑한호구

올해 초부터 나는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내려와 청소를 시작했다.

35년 이상을 살아온 부모님의 집은 손때가 묻은 물건들 뿐만 아니라 그 사용을 다한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낸 뒤였다.


청소를 하기 시작한 것은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아빠를 챙기는데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였는데 그 시작은 "비움"이었다.


어르신들이 한 곳에 오랫동안 살다 보면 아까워서 못 버리고 혹시나 다음번에 쓸 것 같아 못 버리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물건이 늘어나기만 하고 쌓여만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35년을 살아온 부모님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KakaoTalk_20250913_082950351.jpg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발에 뭐가 거려 보니 이런 게 어디서 나온다. 근데 왜 하나뿐인 거지? ㅎㅎ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사용했던 방은 조금씩 부엌옆의 부엌데기방으로, 아니 그냥 주방 옆 창고로 변해 현재는 방안에 오래된 장롱과 두 개의 대형 김치냉장고 그리고 각종 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방 옆 창고방으로서의 기능으로라도 원래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나는 그 방부터 정리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방에 방바닥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75L 쓰레기봉투 3개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제일 쉬운 영역이었던 것 같다.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부분은 유통기한이 2년이 지난 캔맥주가 11개쯤 발굴되었을 때처럼 음식에 넣어 먹으면 되는 걸 왜 버리려 하느냐고 역정을 내시는 엄마와 실랑이할 때였다. (캔맥주의 유통기한은 1년이란 걸 알게 되었다는 ㅎㅎ). 사실 캔맥주처럼 상태가 깨끗하고 유통기한이 적혀있는 물건은 그래도 치우기 쉬운 물건들 중 하나다. 진짜 어려운 물건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고 형체와 용도가 불분명한데 누가 봐도 필요 없어 보임에도 (최소 수년간 손댄 적이 없는) 아깝다고, 또는 귀한 거라고 하실 때이기도 했다.

엄마슬리퍼.png [엄마의 최애 슬리퍼] 새 슬리퍼가 2개나 더 있는데 이렇게까지 낡은 슬리퍼를 계속 못 버리게 하셨다(멀쩡하다 우기심). 똑같은 제품을 사드리고 나서야 버리셨다는 ㅎㅎ

우리 집 식구도 많았지만 자그마치 8남매 장남이란 이름으로 명절이며, 제사며 큰집살림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줄어들 줄을 몰랐다. (그리고 원래 늘어난 살림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가장 쉬운 레벨의 주방 옆 작은방을 치운 다음부터 나는 속도를 내서 청소를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버릴 때마다, 그리고 일회용인 플라스틱을 다회용으로 쓰시지 못하게 분리수거하거나 선물 받은 물건에 포장되어 있던 스티로폼이나 보자기를 버릴 때 엄마는 불편함과 못마땅함을 토로하셨지만 그것도 주말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안 보련다~~"의 마음이셨는지 내가 청소를 하면 아예 안방에 들어가 TV를 보시면서 못 본척하시기도 했다.


청소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음에도 최근에야 겨우 진출한 곳이 주방이다. 주방은 엄마 고유의 영역이라 아주 낮은 자세로 차근히 진입해야 했다. 그래도 주방 중에 가장 쉬운 청소구역이었던 싱크대 상부장 tea 영역을 치울 때 유난히 유통기한일자가 2002년인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의 모든 자녀가 모두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간 해였다. 어쩌면 그때쯤부터 뭔가 새로울 것도 챙겨야 할 미성년의 자녀도 없다 보니 부모님의 살림도 멈추기 시작한 건 아닐까 싶었다.


방학 때라도 자주 내려올걸....


주방옆 창고방을 치우던 날 아마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오래된 공간에서 우리 부모님이 이번엔 진짜로 떠나실 때가 되었다고. 내가 10살 때부터 살았던 부모님의 오래된 주택은 그때당시 중년이었던 부모님이 땅을 매입하고 그 땅 위에 자그마치 일곱 식구가 함께 평생(?!)을 살겠노라고 생각해서 지은 부모님 인생이 녹아있는 집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 거기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우리 집 막내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일곱 식구가 콩나물시루처럼 붙어살던 그 공간에서 은퇴한 부모님 두 분이서 그대로 사셨다.


은퇴한 노부부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오래된 2층 주택.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22개의 계단이 부모님에겐 허들이 되어간다. 십수 년 전부터 계단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자식들이 졸라댔지만 부모님은 나름 완강하게 버티셨더랬다. 이 집이 어떤 집인데, 나는 여기서 평생 살 거다 등등의 논리로 맞서오셨다.


모든 공간이 쓰지 않는 짐들로 가득했던 집에서 공간이 살아나고 사람이 사는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아빠는 하룻밤새 2번의 119 응급실행을 겪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더 이상 22개의 계단이 있는 오래된 주택을 고집하실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진짜로 부모님이 이사할 시간이 되었다.


이사 가시자고요~. 맡겨만 주세요. 이사는 자식들이 다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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