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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모멘트 Apr 07. 2021

#3 왜 살아야하는 걸까요?

친구의 자살

우린 왜 살아야하는 걸까요?


울음 섞인 하소연에는 가시 박힌 말들이 엉겨 있었고,

상처투성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제주도를 다녀온 이후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슬프고 힘든 이유를 찾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자, 소소한 즐거움들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친구들과 독서실을 끊어 방학 내내 함께했고, 새벽까지 공부하다 지칠 때면 휴게실에서 만나 몰래 야식을 먹는 재미도 알았습니다. 백과 사전보다 두꺼울 입시요강 책을 펴서 여러 전공을 구경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며 실없이 웃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시는 선생님들과 다시 힘을 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차츰 무미건조하던 일상에 생기가 돌아왔고, 그렇게 3학년을 맞았습니다.

 

봄 기운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화이트 데이에 학년 첫 모의고사를 치뤘습니다. 방황으로 느려진 발걸음을 재촉하며 겨울 내내 노력한 만큼 후회 없이 마쳤고, 쉬는 시간에 먹은 초콜릿 덕분 이라며 우스갯소리 하며 기분 좋게 마무리 했습니다. 간만에 독서실도 들르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홀가분한 길에 편의점을들러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릴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꾸러미도 샀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다른 친구는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학교로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3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였습니다. 오가며 마주친 것만 수 백 번일 것이고,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학교였습니다. 학교 전체가 술렁였고, 같은 학년이던 고3 학생들은 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죽음을 두고 수 많은 추측과 판단이 가감 없이 쏟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습니다. 뜻 밖에 할퀴어 진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못하고 마음의 병이 되어갔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힘들어 하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본인도 이제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며 쓰라린 아픔들을 토해냈습니다. 울음 섞인 하소연에는 가시 박힌 말들이 엉겨 있었고, 상처투성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서툰 위로가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옥상으로 가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이 멎지 않았고, 세상이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세상조차 휘정거린 듯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충격과 겉잡을 수 없는 의문이 찾아왔습니다.

 

우린 왜 살아 야하는 걸까요?

 

당장 주어진 학업이나 일상을 위한 노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왜 살아야 하는지 삶에 대한 당위성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해답을 찾기 위해 책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공부는 뒷전으로 미룬 채 논술 준비한다는 핑계로 어려운 책들을 끊임없이 읽었습니다. 오랜 세월 공감을 받아온 고전 도서부터 칠 백 페이지 넘게 현대 사회를 진단한 사회과학 도서까지. 수 십 권의 책을 수 백 번 읽는 동안 싱겁게 1년이 흘렀습니다.

 

두꺼운 책을 읽으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던 고민들은 여전히 제 자리 걸음만 반복했고, 제주도에서 결심했던 다짐도 흐려졌습니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 대학 입시와 수능이 차례로 지나갔고, 고등학교 삼학년 생활이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습니다. 공허해진 마음도 모르고 고등학교 마지막 행사인 졸업식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고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학교 전통에 따라 형형색색 한복을 입은 수 백명 학생이 강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두 같은 모양과 색깔을 가진 초록색 교복을 입고 맞이했던 입학식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습니다. 녹색 일색이었던 공간에 화사한 색채가 넘쳐나고, 어색하게 앞만 바라봤던 친구들이 이제는 서로 환하게 마주보며 지난 3년을 기념했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을 같이 기억하고, 그간 있었던 추억들을 되짚었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연신 사진을 찍는 학생도 있었고, 눈물 범벅이 되어 떠지지 않는 눈으로 인사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소중한 추억과 허무했던 시간, 감사함과 해결되지 않은 울렁거림이 뒤섞여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푸르고 널따란 교정에서 무엇을 겪고 느꼈든지, 과거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서로 달라진 옷차림처럼 앞으로는 각자의 빛깔과 방식으로 살아갈 겁니다. 마치 지난 날들과는 다른 날들이 펼쳐질 거라는 예고편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우리 학창시절의 끝이었습니다.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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