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떠난 것들

그 날, 제 10장

by MingDu

"이 개자식...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분노로 며칠 밤을 지새웠다. 원룸의 좁은 방구석, 곰팡이 핀 벽지를 등지고 앉아 나는 매일 밤 민석을 죽이는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처음엔 그의 회사를 찾아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 상상을 했다. 그다음엔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의 실체와 사기 행각을 낱낱이 폭로하여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상상을 했다. 아니, 차라리 흉기를 들고 찾아가 그 잘난 포르쉐 위에서 그의 목을 긋는 것이 가장 통쾌할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민석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갈비뼈가 아팠고, 이를 너무 세게 갈아서 턱관절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수천 번 그를 죽여도, 현실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법적으로 따지기에 나는 자발적인 '투자자'였고,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약관에 내 손으로 동의했으니까. 게다가 지금 그를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면? 내게 남은 건 폭행죄 전과와, 그로 인한 회생 절차 폐지뿐이었다. 복수의 대가는 저 놈의 파멸이 아니라, 내 인생의 완전한 확인 사살이었다.

"으아아악!"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지독한 무력감.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좁은 방에서 혼자 미쳐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 분노는 갈 곳을 잃고 내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좀비처럼 며칠을 보낸 후, 나는 더위를 피해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에어컨이라도 쐬지 않으면 정말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도서관의 공기는 서늘하고 건조했다. 나는 멍하니 서가 사이를 부유했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민석의 포르쉐 배기음이 환청처럼 울리고 있었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었다.

'죽일까. 아니면 내가 죽을까.'

극단적인 선택지 두 개만을 만지작거리며 철학 코너 구석에 주저앉았다. 우연히 손에 잡힌 얇은 책 한 권. [에픽테토스 - 엥케이리디온]. 노예 출신 철학자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의 문장이 건조한 모래알처럼 눈에 박혔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타인의 행위, 평판, 재산, 그리고 이미 벌어진 과거는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릴 때, 인간은 불행해지고 비로소 노예가 된다.]

활자를 읽어 내려가던 시선이 멈췄다. 책장을 넘기려던 손이 허공에서 떨렸다.

"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깨달음 따위는 없었다. 그저 불쾌했다. 너무나 뼈아픈 팩트 폭행이라서, 반박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나 적나라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나는 민석을 죽이고 싶어 했지만, 그건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날아가 버린 3억도, 나를 조롱하던 민석의 태도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이었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다,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그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민석은 나를 잊고 골프를 치러 갔는데, 나 혼자 방구석에서 그를 상전처럼 모시고 분노라는 제물을 바치고 있었던 셈이다.

'노예.'

그 단어가 지독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자본의 노예, 빚의 노예, 그리고 이제는 증오의 노예까지.

책을 덮었다. 가슴 속의 울분은 여전했다. 책 한 권 읽었다고 용서가 되거나 평온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다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계속 분노를 붙잡고 있다가는, 민석이 아니라 내가 먼저 말라 죽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살아야 했다.

도서관을 나오자 밖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은 없었다. 예전 같으면 하늘을 욕했겠지만, 나는 그저 옷깃을 여미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는 내리고 싶어서 내리는 것이고, 나는 젖을 수밖에 없다. 그게 자연의 이치였다.

민석 또한 자연재해 같은 것이었다.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졌다고 태풍에게 칼을 휘두르는 건 미친 짓이다. 무너진 잔해를 치우고, 비가 새는 지붕을 고치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집에 도착해 젖은 옷을 벗어 던졌다. 눅눅한 방 한구석에 다리미판을 폈다.

내일 입고 갈 유일한 셔츠. 깃이 누렇게 바래고 구겨진 셔츠를 다리미판 위에 올렸다.

'치이익-'

달궈진 다리미가 닿자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셔츠를 눌러 다렸다. 주름 하나를 펼 때마다, 민석의 얼굴을 지워내듯 힘을 주었다. 3억 원을 복구할 순 없지만, 이 셔츠의 주름만큼은 내 의지대로 펼 수 있다. 지금 내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셔츠 한 장뿐이었다.

그 초라한 사실이 역설적으로 나를 진정시켰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를 입고 현관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여전히 빚쟁이였고, 눈 밑은 퀭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당장 오늘 점심값 5,000원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끈이 떨어진 낡은 구두를 신으며, 나는 매듭을 꽉 조여 묶었다.

"가자."

혼잣말을 뱉었다. 출근길은 여전히 지옥일 것이다. 독촉 전화는 오늘도 울릴 것이다. 민석은 어딘가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을지 모른다.

상관없다. 그것들은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문을 열었다. 마이너스. 그 무거운 숫자를 등 뒤에 짊어진 채, 나는 묵묵히 시멘트 바닥을 딛고 걸어 나갔다.

이것이 진짜 내 삶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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