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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 이명지 Jan 21. 2022

부끄러움에 기대어

<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여기쯤까지 와보니,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어느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속울음을 삼키며 스스로 제 어깨를 두드리며 살아온 세월도, 발길질을 해대고 싶었던 그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한 사람의 일생이란 얼마나 많은 따뜻한 눈길과 응원으로 이뤄지는가. 그걸 아는 데 한 육십 년쯤 걸리는가 보다. 육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조금 알 것 같다. 내 삶에 무늬 진 그 고마운 손길, 눈길들을 하나하나 세며 남은 시간을 걸어가야지 싶어 진다.


 그런데도 자꾸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꼰대질이 잠자리에 누워서야 반성으로 다가온다. 낮에 뱉어버린 말이 낯 뜨거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린다. 부끄러움은 두꺼운 이불도 가려주지 못한다.


 살아온 날들의 알량한 행적, 별 내세울 것도 없는 그걸 코에 걸고 나는 또 꼰대질을 했다. 벌떡 일어나 사과 문자를 보냈다. 부끄러움이라는 마지막 희망만은 놓지 않으려고, 부끄러움에라도 기대야 좀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또한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와 다른 생각들을 왜 용납하기 어려운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노여운가? 내가 부족한 것이 들키는 게 왜 그토록 두려운가 말이다.


 누구를 동정하기는 쉽다. 돕기도 쉽다. 그러나 자신보다 잘난 꼴을 인정하는 건 몹시 어렵다. 얼마나  못난 짓인가? 얼마나 지질한가 말이다.


 기억하든 못하든 나의 인생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중에는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섞여있다. 악연이 선연을 돋보이게 해 주었으니 그 또한 선연이라 해야 하나?


 돌아보면 아직도 용서되지 않는 인연도 있다. 자다가도 일어나 이불 킥을 한다. 하지만 용서하려 애쓴다. 진짜 애쓴다. 그걸 내려놓지 않고는 내가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자비심? 그건 내게 허영일뿐이다.


 어깨에서 교만의 힘줄이 빠지는 건 언제쯤 될까? "내가"라는 쇠심줄은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종교나 책이나 좋은 말씀들에서 얻는 깨달음은 쉬 흐트러졌다. 그래서 끊임없는 정진이 필요하겠지만 삶 속 경험에서 한 대씩 얻어맞은 건 평생 잊히지 않는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인가 보다. 그러니 스승은 도처에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부끄러움이라는 스승에 기대어 조심스레 걸어 보아야겠다.


써놓고 보니 나 쫌 멋진 것 같다! 

아, 또 나댄다!

꼰댓병!

시끄럿! 닥쳐!


*이미지 첨부사진: 타마라 렘피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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