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실패 속에서 자라고, 부모는 기다림 속에서 깨닫는다
"엄마, 우리도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면 안 돼?"
아들은 평소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생물체를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결. 사. 반. 대.
생물체를 키운다는 건 책임을 지는 것인데, 결국 그 책임 대부분이 나의 몫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엄마, 제발... ㅇㅇ이 집에는 강아지도 있고, 고양이도 있어. ㅇㅇ이는 도마뱀 키운대. ㅇㅇ이는 사슴벌레도 키워... ”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조르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너 독립하면 그때 키워.”
엄마의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을 거라 직감한 아들은 동물 대신 식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작년에 학교에서 받아 온 다육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아주 작은 화분에 심어진 다육이는 아들의 손길을 받아 무럭무럭 자랐고,
얼마 전에는 제법 키가 자라 분갈이까지 해 주었다.
아들은 분갈이한 다육이를 창가에 올려놓고 매일 참 열심히도 들여다본다.
그러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레몬씨를 발아시키는 영상을 본 아들이 레몬을 사달라고 졸랐다.
레몬 씨앗을 발아시켜 키우고 싶다고...
‘그게 되겠냐고...’
못 이기는 척 레몬을 사줬고, 아들은 유튜브에서 본 대로 씨앗 껍질을 벗기고 물을 적신 채 따뜻한 곳(=겨울 롱패딩 주머니 속)에 보관했다.
그런데 진. 짜.로. 싹이 났다.
아들은 신이 나서 자랑했지만 화분에 옮겨 심지 않아 결국 이틀 만에 죽고 말았다.
아들은 속상해했지만 된다는 걸 안 이상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엔 금귤이었다.
씨앗 하나하나 열심히 껍질을 벗기고 정성껏 돌보며 또 한 번 발아에 성공했다.
두 번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일단 아쉬운 대로 종이컵에 배양토를 담아 싹을 옮겨 심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물을 주며 돌보더니 며칠 사이 싹이 제법 자랐다.
이번엔 꼭 제대로 키우고 싶다며 싹이 죽기 전에 빨리 화분에 옮겨 심어야 한다고 며칠을 졸랐다.
그래서 결국 어제 마트에 다녀오면서 화분과 흙을 사다 줬다.
저녁 먹은 식탁을 정리하고 좀 쉬려는데 아들이 신문지를 펼치기 시작했다.
목 디스크의 재발로 며칠째 통증이 심해 잠도 잘 못 잔 터라 빨리 누워서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내가 후딱 옮겨 심고 치우고 싶었지만 일단은 아들이 하는 걸 지켜보기로 했다.
"하나, 두울, 세엣~~~ 열두울..."
새싹을 하나하나 세어보더니 그중 하나를 조심스레 뽑아서 옮겨 심는 아들...
그냥 종이컵의 흙을 통째로 퍼내서 바로 옮겨심으면 금방 끝날 텐데 저걸 하나하나 다 옮겨 심는다고?
사실 새싹이 워낙 작아서 하나씩 심는 건 애초에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하다 뿌리 건드리면 죽을 텐데... 그냥 한꺼번에 옮겨 심는 게 좋을 것 같아."
나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하나를 뽑아 옮겨 심는 아들...
그런데 뭔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눈치였다.
보다 못한 엄빠 출동...
내가 숟가락으로 종이컵의 흙을 파내는 동안 남편은 화분의 흙을 덜어내어 공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환상의 호흡으로 조심스레 종이컵 흙을 그대로 옮겨 심는데 성공...
순간 아들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아들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물에 젖은 신문지가 찢어지는 바람에 거실 바닥 곳곳이 흙으로 더럽혀졌고 치우는 건 또 결국 내 몫이었기에...
"화분 저쪽으로 옮겨놓고 이제 빨리 숙제해."
목과 어깨 통증을 참아가며 뒷정리를 끝내고 서둘러 자리에 누웠다.
오늘 아침, 물통을 넣어주려고 책가방을 열었는데 일기장이 보였다.
일주일에 한편씩 일기를 써서 월요일에 갖고 가야 하는 아들...
어제 미처 챙기지 못해 일기는 썼나 싶어 펼쳐봤다가 순간 멈칫...
어젯밤 일이 고스란히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제목 : 새싹심기
금귤씨를 싹 틔우게 되어 오늘 화분에 심기로 했다.
먼저 화분에 돌을 깔고 흙을 넣었다.
그다음 구멍을 파서 하나씩 따로따로 심으려 했는데 엄마가 그냥 한꺼번에 넣으라고 했다.
붙여서 심으면 뿌리가 섞여서 한 새싹에만 영양분이 갈 수도 있는데
계속 뭉쳐서 심으라고 하셔서 조금 짜증 났다.
그렇게 흙을 파고 뭉쳐서 심었는데 분명 새싹들이 키가 다 비슷했는데
미리 심었던 새싹과 부모님이 한 번에 심으라 하셨던 새싹들이 제각각이고 한쪽으로 쏠리게 심어졌다.
내가 키운 건데 새싹들을 저렇게 심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미 심었으니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키워야겠다.
흠... 그랬구나...
아들을 보내고 거실 창가에 놓인 화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들의 말대로 새싹들이 어딘가 삐뚤고 기울어져 있는 것이,
정성껏 키운 새싹들을 마음대로 심지 못하게 된 아들의 속상한 마음을 닮아 있었다.
아... 아무래도 아들이 집에 오면 다시 한번 신문지를 펼쳐야 할까보다.
*부모 마음 처방전*
1. 아이의 방식과 생각을 존중하세요.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을 탐험합니다. 부모의 눈에는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 중요한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보려는 아이의 마음에는 도전과 탐구의 열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어른의 효율이 아닌, 아이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 발짝 물러서 보세요.
2. 실수도 경험이자 배움이 됩니다.
아이에게는 실수가 곧 배움입니다.
처음에는 기대와 다르게 실패할 수 있고, 중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실패를 통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음엔 어떻게 할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건 실수를 통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3. 결과보다 과정을 지켜봐 주세요.
어른의 눈에는 '빨리빨리, 깔끔하게'가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그 느린 과정이 성장의 시간입니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경험은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설령 과정이 엉성하고 어설퍼 보여도 그 안에서 아이는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쌓아갑니다.
4. 너무 빨리 도와주려 하지 마세요.
부모의 도움은 언제든 필요할 수 있지만 그 도움은 아이가 먼저 요청할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섣불리 도와주려는 마음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너는 못 할 거야'라는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아이의 요청이 있기 전까지는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봐 주세요.
5. 아이의 노력을 칭찬하세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고 아이의 노력은 언제나 칭찬받아야 마땅합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시도하는 그 과정 자체가 가치 있습니다.
"정말 정성껏 해냈구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다니 대단해!" 결과보다 노력에 집중한 칭찬은 아이에게 진정한 성취감을 선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