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아이를 보며 천천히 놓아주는 연습을 합니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떡볶이 먹으러 가면 안 돼?
지난 토요일 저녁, 친구들과 놀러 나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부쩍 친구들과의 외식이 잦아진 아들...
하루는 햄버거, 하루는 밀면, 하루는 마라탕, 하루는 돼지국밥...(메뉴도 참 다양하구먼...)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녀석들끼리 식당에 가서 낯선 어른들 틈에서 메뉴를 고르고, 계산도 스스로 하고, 조금씩 세상을 배워가는 듯한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내 마음이 달랐다.
'왜 저 아이들은 저녁이 되어도 집에 안 가는 걸까?
집에서 부모들이 챙기지 않는 걸까?
식사 때가 되면 집에 들어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대답했다.
"오늘은 안 돼. 주말만이라도 가족들끼리 다 같이 모여서..."
"알겠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서둘러 대답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렸다.
아들은 다녀왔다는 인사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주말은 가족 모두가 모이는 소중한 시간이다.
남편과 나, 그리고 딸과 아들...
평일엔 딸의 학원 스케줄, 남편의 회식, 나의 강의 일정 등으로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
그래서 주말만큼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나는 웬만해선 주말엔 일 스케줄을 잡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주말마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나가버렸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점점 쓰는 돈이 많아지고,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게 신경 쓰였다.
특히 요즘은 친구들과 밥을 먹고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냥 어쩌다 한 번이니까 하고 넘어갔는데 그 횟수가 잦아지면서 아이들이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걸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늘 친구들을 내세웠다.
“친구들은 전부 밖에서 저녁 먹고 늦게까지 놀아도 엄마가 아무 말 안 하는데..."
‘그래서 그게 맞는 걸까?’
‘아직은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야 할 나이 아닌가?'
답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같은 속도로 자라는 중인데
나만 아직 그 변화에 준비가 덜 된 엄마인 건가?
밥을 먹는 내내 아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도 속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길 바라면서...
우리 사이에는 식사 후에도 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한참만에 아들이 입을 열었다.
"친구들은 다 떡볶이 먹으러 갔는데 나만 집에 왔어.”
"그래서 속상했어?"
"응, 친구들이 엄마에게 다시 한번만 더 물어보라고 했는데 내가 그냥 집에 왔어."
"그런데 너 저번주도 친구들이랑 밥 먹고 왔잖아."
"친구들이랑 주말 밖에 못 노니까 그렇지..."
"친구들과 놀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잖아.
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들어와서 가족들이랑 밥을 먹으면 좋잖아."
"그런데 오늘은 진짜 기대했는데... 떡볶이 먹으러 간다고 해서...
그리고 다 같이 놀다가 나 혼자 빠지니까... 그냥 속상했어."
“그래... 속상했겠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날이 주말밖에 없잖아.
엄마는 그 시간만이라도 같이 밥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ㅇㅇ이가 이제 가족들보다 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엄마도 많이 속상했어."
그제야 아들의 눈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건 아니야. 나는 우리 가족이 제일 소중해.”
짧지만 단단한 그 말에 마음속에서 무언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는 ‘떡볶이’가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소외감, '혼자 빠진 사람'이 되었다는 마음의 허전함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제 아이의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도는 궤도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걸...
‘엄마가 제일 좋은 세상’에서 ‘친구가 더 좋은 세상’으로 조용히 이동 중이라는 걸...
그 변화가 서운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아릴까?
그래서 말해줘야 했다.
오늘, 내 마음도 그랬다고...
엄마도 속상했다고...
언젠가 아이는 더 멀리 가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큰 세상 속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그 시작점에 서 있는 엄마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아무리 멀리 가도, 가끔은 다시 이 식탁으로 돌아와 함께 밥을 먹으며 웃을 수 있기를...
*부모 마음 처방전*
1. 분리는 성장의 자연스러운 일부입니다.
친구와의 시간이 더 소중해지는 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마냥 서운해하지 말고, 부모로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보세요.
2. 침묵도 대화입니다.
화가 나고 서운할 때 말을 아끼는 시간은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대신, 감정이 정리되었을 때 따뜻하게 말로 풀어주세요.
3. 가족만의 시간을 지켜주세요.
모든 걸 허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식사 시간처럼 지켜야 할 가치를 아이에게 알려주세요.
그 시간은 아이의 뿌리가 됩니다.
4. 감정을 먼저 말하는 어른이 되어주세요.
아이에게서 먼저 위로를 기대하기보다, 부모가 먼저 진심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엄마도 오늘 속상했어"라는 한마디가 관계를 회복하는 열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