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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저를 자꾸 숨기게 돼요

심리적 안전감이 무너졌다

by 커리어포유
좋은 얘기 하면 시기할까 봐,
안 좋은 얘기 하면 까내릴까 봐,
자꾸 저를 숨기다 보니
다 같이 있어도 외로움뿐이네요.

얼마 전, 한 커뮤니티에서 보게 된 글이다.

한 회사에서 4년 넘게 일했지만 아직도 팀원들과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는 글쓴이...
주말에 뭐 먹었는지, 요즘 본 예능 같은 가벼운 이야기만 나눌 뿐
자신의 진짜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 글을 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 모두, 비슷한 이유로 마음을 닫고 있는 건 아닐까?


회사라는 공간은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성과는 물론이고 말투 하나, 표정 하나까지도 때론 누군가의 기준으로 쉽게 재단된다.

그런 환경에서 ‘나’를 온전히 드러낸다는 건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괜히 솔직하게 말했다가 불이익당하면 어쩌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말하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거리를 두게 된다.

'적당한 거리' 속에 자신을 숨기고,
그러다 보면 결국 외로움이 자리를 잡곤 한다.


코칭에서는 이런 상태를 '심리적 안전감이 무너졌다'라고 말한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내가 이 조직 안에서 '나답게' 있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이 감정이 부족한 조직일수록, 사람들은 자기 개방을 하지 않는다.

자기 개방이 없으면 신뢰가 자라지 않고, 신뢰 없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런 조직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텅 빈 채 돌아간다.

서로에게 마음을 닫은 채, '기능적인 협업'만 남은 공간.

그 안에서 우리는 점점 감정에 무감각해지고, 존재감마저 흐려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스스로를 숨기게 되는 걸까?


첫째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행동이 누군가의 판단 대상이 된다.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동료 간의 미묘한 경쟁심, 상사의 피드백 방식...
이 모든 것이 심리적 위축을 불러온다.
특히 조직 내에서의 입지가 불안하거나, 한 번이라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표현보다 침묵을 택하게 된다.


둘째는 조직문화의 분위기다.
말은 자유롭게 하라고 하지만, 정작 솔직한 의견을 꺼낸 사람만 불편한 상황에 처하는 조직.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뒤에서는 말이 오가는 분위기.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든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심리적 안전감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이 만들어주는 심리적 인프라다.


셋째는 과거의 상처와 연결된 감정 회피다.
예전 조직에서 경험했던 갈등이나 상처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면
새로운 조직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경계하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지만, 실제로는 '방어' 상태에서 관계를 유지한다.
그 안에선 어떤 의미 있는 연결도 일어나기 어렵다.


이처럼 조직 안에서 마음을 열지 못하는 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도, 인간관계에 서툴러서도 아니다.

문제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오랜 시간 쌓인 조직의 분위기, 한 번 던져진 말이 남기는 인상,

그리고 말 한마디를 둘러싼 수많은 '의도'와 '해석'들...

누가, 어떤 말투로,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했는가에 따라 같은 말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을 감추는 데 익숙해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으며 앉아 있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말해도 될까?'
'괜히 분위기 흐리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겠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란다.
누군가 다가와 주기를,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기를.

하지만 진짜 소통은
그런 자기 검열 위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우리는 말의 기술을 익히기 전에 감정의 민감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그 말이 내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는 일.

모두에게 완벽히 이해받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내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

그런 작은 선택들이 무너졌던 심리적 안전감을 조금씩 회복시켜 준다.


커리어 코칭은 바로 그 마음의 미로 속에서 방향을 찾도록 돕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말을 아끼게 되었을까?"
"무엇이 내 마음을 닫게 만든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왜 진심을 감추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잠들어 있는 감정과 욕구를 조심스레 비추는 손전등 같은 것이다.

그 질문 앞에 멈춰 설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다시 이해하게 되고

내가 나로서 편안할 수 있을 때 진심을 꺼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어떤 말보다 더 깊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

내 감정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을 때

말도, 관계도, 일도 조금씩 달라진다.


*오늘의 질문*
: 나는 언제부터 내 마음을 숨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지금, 나를 가장 조심하게 만드는 관계는 누구와의 사이일까?

어느 순간부터 말이 줄었고, 하고 싶은 말보다 해도 괜찮은 말만 고르게 되었던 기억.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본 적 있나요?
혹시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말의 문을 닫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떤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보다 눈치를 먼저 살피고,
말보다 표정을 먼저 정돈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당신을 조심하게 만드는 그 관계를 마주해 보세요.
그 안에 당신의 감정, 당신의 가치, 그리고 잊고 지낸 ‘나다움’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감췄던 그 순간을 다시 꺼내는 것, 그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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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