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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감이 좀 떨어진 것 같아

방향이 보이면 감각도 따라온다

by 커리어포유
태연 씨... 대리 달더니 감이 좀 떨어진 것 같아.


회의실을 나서는 순간, 팀장의 말이 마음을 때렸다.
딱히 큰 실수를 한 것도, 게으르게 일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태연(가명)은 누구보다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
그런데 그날, 그 말 한마디가 유난히 마음을 내려앉게 했다.

'감이 없다'는 말.
능력이 없다는 말보다 더 세게 박히는 말.
태연은 그날 저녁, 평소보다 늦게 퇴근하며 조용히 생각했다.
'나는 진짜 감이 없는 사람일까?'


입사 3년 차.
이젠 대충 회사의 분위기도, 팀장 스타일도, 일이 돌아가는 패턴도 익숙하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이상하게도 자신감을 채워주진 못했다.

문서를 넘길 때마다
'이게 맞나',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머릿속은 늘 의심과 조심으로 가득했다.
회의에서 어떤 말을 꺼낼까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실제로 기획안을 잘 내놓고도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하고 스스로 깎아내렸다.

태연은 어느새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혼란스러웠다.
회사에서는 이제 '알아서' 일하길 바라고,
선배들은 '센스 있게' 처리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도대체 그 '알아서'와 '센스'는 어디서 배우는 걸까?


실은 많은 직장인들이 이 지점에서 멈칫한다.
일에 대한 감이 안 온다는 건 능력 부족이 아니다.
방향과 기준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결과만 보고 피드백을 주고,

누군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날은 팀장의 기준에 맞췄더니 대표에게 지적을 받는다.
기준이 흐릿하니 내 감각도 흐려진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더 의심하게 된다.


태연처럼 3년 차쯤 되면 '열심히'에서 '잘하고 싶다'로 욕구가 바뀐다.
하지만 그 '잘'이라는 기준이 모호하면, 어떤 시도도 확신 없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지금 내 일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받는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이 시점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시기의 핵심은 '수행자'에서 '설계자'로의 전환이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것을 넘어,
일의 흐름과 본질을 이해하고,
나만의 해석과 제안을 더해가는 힘을 기르는 시기다.

이전까지는 빠르게 처리하고,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부터는 '왜'이 일을 하는지,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지'를 사고하는 힘이 요구된다.

그 사고력은 나만의 기준과 방향이 있을 때 비로소 자란다.
즉, '감이 없다'는 말은 지금이 나만의 성장 구조를 세워야 할 시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일머리'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일의 본질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훈련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그 훈련은 방향이 정해질 때 가능해진다.
방향 없는 노력은 늘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태연은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모습이지?"
"지금 이 일은, 내가 바라는 삶과 연결되어 있나?"

이 질문들에 처음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감이 없다'는 자책 대신, '기준을 세워야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즈음 태연은 나를 찾아왔다.

표정은 밝았지만 말끝마다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자신감을 잃은 사람은 대체로 두 가지 태도를 반복한다.
의욕 없이 버티거나, 괜히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태연은 둘 다였다.

우리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갔다.
일하면서 어떤 순간에 유독 서운했는지,
무엇을 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였는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떠올렸다.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잘 들어주었을 때,
작은 칭찬 하나에도 진심이 느껴졌을 때,
가장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고.


태연에게 중요한 건 성과 그 자체보다,
사람과의 연결, 인정받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의미 있는 협업 과정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결과 중심의 일처리'에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정작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거다.


그걸 알아챈 태연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언가 크게 바꾸려 하지는 않았다.
다만, 회의에서 한 문장이라도 더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는 팀원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기획서를 쓸 때도 숫자보다 '이 프로젝트가 왜 필요한가'를 먼저 고민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칭을 마친 뒤 그녀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요즘 좀 감이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 말 안에는 자책 대신 기준이,
불안 대신 방향이 담겨 있었다.




'감이 없다'는 말에 위축된 순간, 우리는 종종 내면의 기준을 놓친다.

하지만 '감'은 스스로 세운 방향 안에서만 자란다.

방향이 보이면 감각도 따라온다.
기준이 생기면 흔들림도 줄어든다.
커리어는 점 하나가 아니라 흐름이다.
흐름에는 기준이 필요하고, 기준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단지 익숙해서 계속하는 일인지,
아니면 내가 원해서 걸어가고 있는 길인지.

'감이 안 온다'는 느낌은 때로,
성장이 필요하다는 내면의 목소리일 수 있다.


*오늘의 질문*
: 나는 어떤 기준을 잃었을 때, ‘감이 없다’고 느끼는가?

일이 어려워서도, 내가 부족해서도 아닌데 자꾸 자신감이 떨어지고 방향이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감이 안 온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감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흔들릴 때 무뎌지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놓치고 있는 건 속도나 성과가 아니라,
당신이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만의 방식'이나 '가치'일 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 '이건 아니야'라고 느꼈는지,
무엇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는지,
그 안에서 사라졌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세요.
그 기준을 다시 세우는 순간,
감각은 자연스럽게 되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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