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대하는 태도
오랜만에 취업 강의를 다녀왔다.
모 기관에 파견돼 근무 중인 청년 인턴들이 대상이었다.
단순히 자소서 작성 요령이나 면접 스피치 스킬 위주의 강의가 아니라,
코칭을 바탕으로 "나만의 브랜딩 키워드"를 뽑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꺼내 문장으로 바꾸는 시간.
이미 실무를 경험해 봐서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언어로 꺼내는 훈련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성취 경험과 실망(실패, 실수) 경험을 적어보고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에 대해 나누었는데,
그중 한 교육생이 실패 교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운이 나빴다."
말투는 담백했고,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말처럼 들렸다.
"어떤 감정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요?"
"전 원래 좀 긍정적인 편이라서요.
제가 부족해서라고 자책하기보다
그땐 그냥 상황이 안 맞았다고, 운이 나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정리하니까,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 순간, 나는 그 문장의 결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운이 나빴다'는 말은, 그에게는 면피가 아니라 회복의 언어였다.
실패를 자신의 치부로 삼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방어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음을 정리하는 말.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본능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그 원인을 내 탓(내부 귀인)으로 돌릴지, 환경이나 운(외부 귀인)으로 돌릴지,
그 상황이 반복되는 것인지(안정적 요인), 아니면 일회성 또는 우연한 일인지(불안정한 요인) 구분하려 한다.
그리고 이 해석의 방향에 따라 그 사람의 감정, 효능감, 재도전 의지가 달라진다.
그 친구는 실패를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운이 나빴다'는 식으로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원인에 귀인 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향해 마음의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건 분명 자기 방어이면서 동시에 자기 회복의 전략이었다.
만약 그 친구가 '내가 부족해서 떨어진 거야'라고 해석했다면,
그 실패는 자기 비난으로 연결되고 다시 시도할 용기를 잃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실패를 외부적이고 일시적인 요인으로 정리했기에
그 덕분에, 자신을 탓하지 않고 다음 시도를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그 실패가 우리를 얼마나 흔드는지는
'무엇을 실패했는가'보다
'그 실패를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달려 있다.
같은 탈락, 같은 좌절도
어떤 사람은 '역시 나는 안 돼'로 정리하고,
어떤 사람은 '이번만 그랬던 거지'라며 다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 해석의 방식은 반복된다.
습관이 되고, 언어가 되고,
결국 나에 대한 믿음의 방향을 만든다.
그런데 '운이 나빴다'는 말이 언제나 건강한 해석은 아니다.
외부 요인에 귀인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책임을 피하거나 시도 자체를 포기하는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조차 내려놓은 채,
마음속에서 천천히 물러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문장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말을 꺼낸 다음이다.
'운이 나빴다'는 말이 단지 실망을 눌러 담은 체념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출발점이라면,
그건 충분히 단단하고도 건강한 해석일 수 있다.
다만 실패의 원인을 외부로 넘겼다면,
그 실패에서 배운 점은 내부에서 다시 되짚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이 나빴다'는 말은
그저 지나가는 푸념에 머무를 수 있다.
성찰 없는 낙관은 성장을 막고,
방향 잃은 긍정은 가능성을 놓치게 한다.
그래서 실패는 감정의 언어로만 다뤄져선 안 된다.
때로는 차가운 설계의 언어로,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처럼 분석되어야 한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나 그 실패로부터 무엇을 남길지는
해석의 습관, 태도의 문장력,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에 달려 있다.
코칭 현장에서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비슷한 순간에 놓여 있다.
실패 앞에서 자신을 변명하듯 말하는 이도 있고,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우며 끝없는 자책에 빠지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그 자체로는 정답도 오답도 아니다.
그 말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만난 그 친구는 '운이 나빴다'는 말로
자신의 실패를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봤고,
그 거리만큼 마음의 숨을 돌리며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말에 나 또한 배웠다.
실패의 기억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다름 속에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지혜가 있다는 걸.
실패를 경험했을 때 한번쯤은
"이번엔 운이 좀 없었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자책도, 회피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자기 마음을 지켜내는 말 한마디.
그 말을 했던 그 청년처럼,
실패를 뒤로한 채 다시 앞을 보려는 그 마음이
오늘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지도 모르니...
그리고 그 마음 위에,
지난 실패에서 놓치고 지나친 작은 교훈을
조용히 하나씩 다시 얹어볼 수 있다면
그때의 '따라주지 않은 운'이
다음엔 '실력'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질문*
: 당신은 최근의 실패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운이 없었어’, ‘내가 부족했어’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건,
그 해석이 당신을 다시 걷게 하는가,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추게 하는가입니다.
같은 실패도 누구는 자책으로,
누구는 배움으로 받아들입니다.
실패의 경험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실패를 바라보는 태도는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의 해석이, 당신의 다음을 결정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