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은 커리어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냥 하루만이라도, 죄책감 없이 쉬고 싶어요.
아무 생각 없이 늦잠 자고, 멍하게 있다가,
밥도 안 하고, 핸드폰도 안 보고...
그런데 그런 하루가 저한텐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윤미(가명)는 8년 차 어린이집 교사다.
키 작은 아이들 틈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감정을 눌러야 하는 직업.
그럼에도 아이들에게는 늘 부드럽고 밝은 얼굴로 다가갔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생님’으로 통했다.
현장 경험도 많았고, 책임감도 강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한 걸음만 더 내딛어도 무너질 것 같은 지점에 서 있다.
"출근하면요... 아이들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두근거리기 시작해요.
주말 내내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두통 때문에 진통제를 달고 살아요."
점점 말수가 줄고, 이유 없이 눈물도 많아졌다.
‘번아웃 증후군’이다.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정서적 탈진, 냉소, 자기 효능감 저하가 함께 오는 심리적·신체적 붕괴 상태.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직무 스트레스로 인해 적절히 관리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증후군"이라 정의한다.
이건 단순한 권태가 아니라, '회복이 필요한 상태'다.
가족들은 그녀에게 휴직을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쉬는 게 더 무섭다'라고 했다.
"일을 안 하면요,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아이들이 금방 다른 선생님 품에 안기고
내가 없어도 교실이 잘 돌아가는 걸 보면
그동안 내가 애썼던 게 무슨 의미였나 싶고요."
그녀의 말은,
죄책감과 상실감, 정체성의 혼란이 뒤섞인 고백이었다.
나는 조용히 윤미에게 물었다.
"그렇게 쉼이 두려워진 계기가 있었을까요?”
한참을 말없이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담임 맡았을 때였어요.
감기 몸살로 하루 빠졌는데 그날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낯선 선생님 손을 뿌리치며 울고 토했대요.
그 얘기 듣는데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그 뒤론 아파도 절대 안 빠졌어요.
나는 그냥 항상 아이들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오래 혼자 버텨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누구에게 기대지 못하고,
'내가 빠지면 누군가가 힘들어진다'는 책임감만으로 자신을 계속 밀어붙여온 시간들...
그 책임감은 누군가의 칭찬이 되었고,
그 칭찬은 더 큰 기대가 되었으며,
그 기대는 점점 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게 미덕이 된 시대...
잠깐 쉬는 것도, 멈추는 것도
마치 ‘포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쉬는 사이 누군가는 더 나아갈 것 같고,
내가 빠지면 팀이, 교실이, 가족이 흔들릴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쉼 앞에서 불안해진다.
몸은 쉬라고 하는데, 마음은 허락하지 않는다.
커리어코칭을 하다 보면 종종 윤미처럼 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버텨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멈추는 순간 무너질까 봐, 뒤처질까 봐 불안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쉼은 선택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것.
우리는 흔히 열정과 끈기로 커리어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짜 지속 가능한 커리어는,
단단한 쉼 위에서 자라난다.
쉬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잃는다.
반대로, 쉼을 온전히 허락받은 사람만이
자신에게 진짜로 집중할 수 있다.
쉼이 불안한가?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조금 느려도, 잠시 멈춰도, 나는 나를 잃지 않는다.
쉬어도 괜찮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쉼은 커리어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건 나를 지키는 숨이고,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깊은 호흡이다.
그러니 오늘, 고요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쉼을 선물하자.
그것이 당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현명한 준비일 테니까.
*오늘의 질문*
: 당신에게 쉼은 어떤 의미인가요?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나를 회복시키고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커리어는 달리기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숨을 고르는 순간이 있어야,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고 더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멈춤이 아니라 ‘지혜로운 숨 고르기’ 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