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행사 분위기를 살리는 짧고 강한 한마디
모 대학 총동창회장 이·취임식 진행을 하고 왔다.
무려 9년 만에 열리는 행사라더니, 주최 측의 각오가 남달랐다.
사전에 시나리오가 무려 여섯 번이나 수정됐는데, 그마저도 현장에서 또 달라졌다.
그만큼 행사에 공을 들인다는 뜻이었기에, 나 역시 작은 실수도 하지 않으려 신경을 많이 썼다.
행사 초반 분위기가 좋았다.
9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전임 회장님의 이임사도 감동적이었고,
신임 회장님의 취임 인사도 단정하고 힘이 있었다.
무대 아래에선 동문들이 반가운 얼굴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오랜만의 재회를 반기고 있었다.
그런데 행사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시작되면서 식사 시간이 이미 지체된 상황.
사람들은 배가 고팠고, 집중력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그때, 학교 측을 대표해서 오신 학장님의 축사가 시작됐다.
처음엔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또박또박한 발음, 진중한 목소리, 학교와 동문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축사의 무게가 늘어났다.
교육 철학, 리더십, 조직의 변화...
축사는 어느새 강연이 되어가고 있었다.
청중의 시선이 점점 단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앞쪽에 앉은 한 분은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시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중간중간 하품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는 사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사람,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사람까지 있었다.
좋았던 분위기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만 끝내 달라는 신호를 보내고서도 한참이 더 지나서야 학장님의 축사가 끝났다.
행사 진행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준비한 원고만 5장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얘기를 하다 보니 주사 마냥 했던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경우도 봤다.
사회자로서 내빈을 이미 정중히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상에 올라 다시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감사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귀한 발걸음 해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미 청중들에게 박수를 한 번씩 다 받은 그분들을 또 호명하고 감사인사를 하느라 청중의 시간을 뺏는 게 맞는가 싶다.
그래서인지 반대로, 짧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축사를 들으면
나는 속으로 감탄하게 된다.
몇 년 전, 모 포럼의 창립총회 진행을 맡았을 때다.
신설되는 조직의 첫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고,
정치·경제·학계 등 다양한 인사들이 모인 제법 무게감 있는 행사였다.
마지막 축사 연사로 이름이 불린 분은
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모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원로 인사였다.
나는 속으로 약간 긴장했다.
'말씀이 꽤 길어질 수도 있겠구나...'
그분은 단상에 오르자마자
마이크를 한 번 가볍게 톡 건드리시고는,
잠시 행사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바쁘신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ㅇㅇㅇㅇ포럼이라는 새 이름 아래 함께 모였다는 사실이 저는 참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이 자리가 오래도록 좋은 뜻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내려가셨다.
그날 무대에 오른 수많은 연사들 중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말은 짧았지만, 무게가 있었고,
그 짧음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날의 말은 어떤 기교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줬다.
축사는 무대를 차지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자리를 빛나게 비워주는 말이어야 한다.
그날 이사장님의 말처럼, 축사는 말의 분량이 아니라 진심의 밀도다.
내가 얼마나 아는가 보다,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는가를 전하는 것이 먼저다.
가장 인상 깊은 말은 언제나 그 자리에 딱 맞는 분량과 온도를 가진 말이다.
말은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쓰임은 누군가를 위한 빛이 되어주는 것이다.
오늘처럼, 단상 위에서 말이 너무 길어져
결국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끊어야 하는 순간이 생기면,
그날의 기억은 말의 내용보다 어색했던 공기만 남게 된다.
말은 자취다.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이 머물렀던 분위기를 사람들은 더 오래 기억한다.
말은 길어야 깊어지는 게 아니다.
말이 짧아도, 마음은 충분히 전해질 수 있다.
오히려 짧아야 더 오래 머문다.
그래서 나는 축사를 준비하는 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린다.
첫째, 말은 '잘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먼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필요한 말만 남기는 것.
'무엇을 말할까'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것.
그게 진짜 스피치다.
둘째, 축사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상대'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철학보다
그 자리를 만든 사람들, 그 수고와 시간, 그 분위기를 향한 배려가 먼저다.
그럴 때 말은 전달이 아니라 감동이 된다.
셋째, 청중의 시선을 살펴라.
청중은 무표정해도 생각보다 솔직하다.
하품, 뒤척임, 눈길의 흐름, 자잘한 웅성임.
그 모든 게 '지금 이 말이 너무 길다'는 싸인일 수 있다.
그 싸인을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말의 흐름을 지킬 수 있다.
좋은 축사란 무엇일까?
멋진 말? 훌륭한 문장? 거창한 인용구?
아니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한 문장,
진심을 담되 분위기를 흐르듯 건네는 한마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면,
그 축사는 이미 가장 아름다운 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