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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Nov 07. 2019

씨앗 냄새

1부-질긴 인연7 지지라도 못난 놈


7

지지리도 못난 놈





 너는, 기구한 운명의 장난을 아느냐? 이것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란 말이다!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드느냐? 아들아! 나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야단을 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지지리도 운 없는 놈, 지지리도 못난 놈, 불쌍한 놈, 아들 몸 안에 암세포가 꿈틀대며 림프샘 공격을 가하고 있다.

  비장에 암 전초병이 침투하여 공격할 통로를 정탐하고 집결지를 편성하고 있다는 정보를 병원으로부터 획득했다. 5년 전에도 암세포가 아들 목 부위에 진을 치고 침투할 시기를 엿보다가 아군의 방사선 살포로 6개월간 치열한 전투 끝에 암세포는 섬멸되었다. 하지만, 아들 몸속에 다시 암세포가 침투할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때 암세포 침투로인 가슴 부위(림프), 겨드랑 등에 방사선 벽을 차단해 놓았다. 싸움은 치열했고 사선을 넘나드는 운명적인 고통이었다. 암세포와 싸우는 동안 절망과 좌절을 맛보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잘 버텨내어 상처가 아물지 않은 본전치기 승리를 하였다. 그래서 아들은 복학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연기 공부를 할 수가 있어 기뻐했다.
  아들이 공연하는 모노드라마 “씨앗 냄새‘ 공연을 관람하면서 아들이 얼마나 대견스럽던지 내 눈가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혔다. 아들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예후가 5년이다. 5년 안에 재발이나 전이가 없으면 완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의학계의 통례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은 3년 반 만에 다른 부위에 또, 다시 산발적으로 암세포가 나타났다. 검사 결과 아들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아무 일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터라, 재발이란 말에 충격은 더 심했다. 나는 일전에 팩 검사를 해보자는 때부터 걱정되었다. “왜, 팩 검사를 하라는 걸까?” 이상하게 불결한 예감이 들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손이 잡히지 않았었다. 그 걱정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을 그때 그 심정을 상상해봐라.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아 할 말을 잊어버렸다.
  아들아!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알겠나, 아들아!” 요즈음 아들은 몰라보게 조금씩 변하고 있다. 치료하기 전 벌써 내년에 복학하는 꿈을 꾸고 있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반드시 건강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일전에 침이 마르도록 환기했던 나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새기는 것이다. “밥 그러지 말고, 몸 무리하지 말고 혹시나 어울리다 보면 술 담배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이 말은 귀가 따갑도록 아들에게 강조한 아비의 잔소리 아닌 절규였다. 지나간 일을 생각해서 무엇 하랴. “그래, 그래 너는 반드시 이겨낼 거야!” “독하게 마음먹고 지금부터 시작하는 거다!”
  우리 가족은 요즈음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다. 병원에도 가고, 사찰에도 가야 한다. 며칠 전 주말에 우리 식구는 마음의 뼈다귀를 구경하러 철원에 있는 한 사찰을 찾았다. 궁색한 변명 같지만, 사찰에 당도해도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유인즉, 부처님 뵙기가 민망해서다. 경내는 초겨울답게 제법 쌀쌀했고 고즈넉했다. 주지 스님을 뵈러(친견) 선방으로 올라갔다. 선방에 들어 선지 몇 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스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고 찻잔에 차만 따르고 계신다. 잠시 후 스님은 말문을 여신다. 사찰에서 기거하면서 불심을 닦고 있는 외국 스님이 선물한 뽕잎 차인데 “차 맛이 은은하고 향긋하다.”라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우리 셋이 처음 선방에 들어갔을 적에 스님은 우리 가족을 보고 매우 혼란스러웠단다.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으니 편히 앉아 차를 들란다. 스님은 우리 가족의 얼굴만 보고도 ’얼꼴’을 읽으셨다니 놀라웠다.
  팩 검사 결과 재발 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아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사찰을 찾은 계기가 되었다. 우리 세 식구는 화합하고 뭉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은 것이 곧 부처님 말씀이라며 이 말씀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씩 반복해서 새기라고 당부하셨다. “나쁜 것은 없어져 가고, 좋은 일은 반드시 오고 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부모에게 감사하고, 아내에게 감사하고, 자식에게 감사하고, 남편에게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부처님께 감사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스님을 뵙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대웅전’과 ‘지장전’에 들러 예불을 올리고 난 후 경내를 둘러봤다. 바람결에 사각거리는 낙엽 소리와 앙증맞게 들려오는 겨울 소리, 그리고 스님의 불경 소리와 목탁 소리가 산사에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시장기가 있어서인지 점심 공양과 저녁 공양은 한 그릇 깨끗하게 비웠다. 된장국을 두 그릇이나 비웠으니…. 아내는 날 보고 절 체질이란다. 산사를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언제든지 공양할 수 있도록 공양 간은 문이 열려 있었다. 손님이 묵을 수 있는 방도 마련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이며 실천이다. 스님께서 건네준 영도 스님의 법어집 『명주』를 읽어 보니 마음의 뼈다귀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영도 스님은 얼굴이란 그 사람의 마음의 거울이라 했다. “얼굴이란 말 자체에 그러한 듯이 담겨 있기도 하다. 옛날 자원(字源)을 찾아보면 얼굴이란 단어는 본래 어원이 얼꼴이었다. 얼이란 흔히 민족의 얼, 조상의 얼, 얼빠진 놈 하는 등의 정신 곧, 혼(魂)을 말하며, 꼴이란 보통 꼴아지, 꼴값, 꼴불견…. 할 때 쓰는 어떤 것의 모습 곧 모양을 말하는 것이다. 혼의 모양, 정신의 모양이라 해서 얼꼴이라 했었는바, 얼꼴 얼꼴하는 억양이 너무 딱딱해서였는지 어떤지 언제부터인가 얼골로 발음되기 시작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얼굴은 흔히 얼골로 많이 표기되었다. 얼굴이란 문자 그대로 마음의 뼈다귀라는 말이다.” 사람은 마음의 뼈다귀에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나타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얼꼴'에 관심이 커졌다. 어떤 종교든지 궁극적인 가르침은 참인간을 배려해주는 삶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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