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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Nov 07. 2019

씨앗 냄새

1부-질긴 인연6 아들, 투병 일지

6

아들, 투병 일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은 뜨끈뜨끈한 고향 집 아랫목을 떠올리게 한다. 뚝배기 안에서 곰실곰실 흘러나온 청국장 냄새가 정겹다. 식탁에 저녁밥이 준비되었다. 뚝배기에서 청국장 냄새가 난다. 청국장 냄새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그리움이다. 청국장은 콩으로 만든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이다. 콩 한 톨은 봄여름을 잘 견뎌내고 가을이 오면 야물게 여물어 ‘띠디! 빵빵!’ 배낭 메고 와서 방금 청국장 뚝배기에 ‘땡그랑’하고 도르르~ 떨어졌다. “청국장은 얼마나 몸에 좋은 참살이 음식인데,” “청국장 냄새가 얼마나 구수하고 향기로운 냄새인지, 그 향을 아는 사람만이 안다.” 청국장 냄새를 맡고 있으면 정겨운 고향 집 아랫목을 떠올리게 한다. 청국장 냄새는 아들이 연출한 모노드라마 ‘씨앗 냄새’를 발견했고 부자지간에 끈끈한 정을 맺어주었다. 아비는 아들 냄새를 킁킁대며 씨앗 냄새를 찾았고 아들은 아비를 위해 청국장 냄새를 찾는 부성애를 그린 눈물겨운 이야기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텅 비어 있는 아들 방문을 열면 컴퓨터 액정에서 아들 냄새가 난다.
  지금부터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아들 병을 고치는 데 모든 힘을 보태야만 한다. “꿈나무 열매 속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침입자 쪼여오는 공포에 술잔을 마시는 젊은이 빈방엔 침묵뿐, 허연 눈에 고인 주삿바늘”은 냉정하다. 아들이 수술하기 전날 수술동의서에 도장을 찍어 줬다. 만약 수술 중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시 의료분쟁을 차단하기 위해 병원의 안전장치로써 수술 전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아 두는 것이며 병원 측의 의례적인 관례이다. “이딴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다.” “그래! 믿어야만 한다.” 지금 당장 믿을 수 있는 곳은 의사 선생님뿐이다. 첫 번째 수술은 아들 목 부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암 덩어리 3개를 제거하는 수술이다. 수술이 아무 탈 없이 잘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어머니, 지금 손자가 수술실에서 큰 수술을 받고 있어요.” “아들을 제발 좀 살려주세요! 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음성이 안개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비야, 알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머니를 찾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았다.

 수술 중에 의사 선생님들 주고받은 얘기 소리가 아들 귀속까지 다 들리고, 암세포를 도려내는 윙윙거리는 칼날 소리, 살점을 끊어내는 딸깍거리는 가위 소리, 그리고 신경이 빨려 나오는 아픔까지 느꼈다니 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에 대한 체험인가, 아들은 그 후 암세포를 박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기검사와 수개월에 걸쳐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유증으로 머리칼이 빠지고 입안이 헐고 음식물을 게우고 토해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비통함이었다. 차라리 내가 아들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어도 보았다.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력한 아비였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의 병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부모를 비롯하여 주변에서 조언하는 말은 좋게 받아들이겠지만, 절대로 믿지는 않을 거라며 오로지 자기 자신과 의사 선생님만 믿겠단다. 아들은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잘 견디어냈고 지금은 한층 더 성숙해져 있다. 예후가 오 년이다. 앞으로 일 년 반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병은 완치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아들 자신은 환자가 아니라며 부모를 안심시키고 있지만, 부모로서는 늘 걱정이다. 방학도 없이 연극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의지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놀랄 뿐이다. 자기 자신이 꼭 해보고 싶어 하는 연극에 폭 빠져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마는, 저렇게 무리하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부모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늘 태평이다.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식단에도 변화가 왔다. 나는 된장, 청국장과 장아찌 종류를 즐겨 먹고 아내는 채소류와 생선을 좋아하고, 아들은 김치찌개와 고기류를 좋아해서 세 식구는 다른 반찬을 먹곤 했는데 청국장 대신에 아내가 좋아하는 시금치, 상추, 콩나물, 등 채소류와 아들이 좋아하는 고기 등을 추가하고 반찬 가짓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식판 세 개를 준비할 것을 아내에게 부탁했다. 며칠 후, 식탁 위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스테인리스 식판이 올라왔다. 식판을 보고 아들은 좋아하면서 손뼉을 쳤다. “오늘부터 군대식 식판이네!” “엄마, 참 잘되었네!”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담아 먹을 수 있고,” 나는 청국장만 고집하지 않고 아내와 아들에게 나를 좀 양보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식판이 보이지 않았다. 식판은 아들이 모노드라마공연 소품으로 가지고 갔다는 아내 말을 듣고 허허 웃고 말았다.

 공연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공연내용이 궁금하였다. 아들은 공연 전에는 절대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면서 정 궁금하면 공연장에 꼭 오란다. 수개월 준비한 아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친척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 입구 게시판에는 ‘씨앗 냄새’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아, 여기로구나! 우선 공연장 입구에서 씨앗 냄새 팸플릿을 받아들고 성급하게 넘겨보았다. 학과장님의 글, 지도교수님의 글, 학생회장의 글, 연극부장의 글, 연출의 글 등 컬러 사진과 함께 공연에 관한 격려 글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내가 지금 성급하게 찾고 있는 것은 공연내용이었다. 학생회장의 글에서 공연주제를 찾아냈다. “이렇듯 저희 D 대학교 공연영화학부에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극 ‘씨앗 냄새’를 여러분께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한 편의 연극을 통해 관객 여러분의 가슴속에는 가족애를, 전공자에게는 창작극에 대한 도전의 불을 지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아, 이런 내용이라면 암투병생활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치면서 부모와 자식 간에 쌓여있던 불만과 갈등을 솔직하게 표현한 열정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공연을 보는 시간 내내 마음이 안개처럼 가라앉고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이 부모에게 불만을 노출하는 듯한 장면이 몇 군데에서 표출되고 있었다. 캄캄했던 공연장에 밝은 불빛이 켜지면서 공연은 모두 끝이 났다. 관람객들 눈가에도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평소에 즐겨 먹던 고기 냄새가 싫어지고 그렇게 싫어했던 청국장 냄새가 갑자기 그립다고 말했다. 아마도 조금씩 아비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외출에서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 여미며 컴퓨터 액정에서 아들 냄새가 난다. 아들 냄새를 모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았다.” 공연 속에 아들은 아버지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을 위한 시(詩) ‘씨앗 냄새’를 읊으면서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가슴에 닿은 얇은 냄새를 안고 빠끔히 현관문을 연다.” “아들이 아침 일찍 빗방울을 맞으면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엄마! 아들, 청국장이 먹고 싶어요.” “오냐, 오냐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줄래?” 아들이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집에 오겠단다. 아들이 혼자 생활해보는 것을 원했고, 학교가 C 지역으로 옮겨가 불편함을 덜어주려는 조치로 부득이하게 학교 근처에 자그마한 오피스텔을 장만해주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뭐가 그리 바쁜지 전화 한 통 없다. 아들이 좋아하는 공연에 미쳐도 좋고, 전화 한 통 안 줘도 좋으니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 “우리 집 재산목록 제1호는 건강이다! 건강!” 세상이 제아무리 변한다 해도 가족애만큼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은 행복의 원천이며 사랑의 보금자리이다.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행복을 위한 씨앗이다. 아들의 뮤지컬 대사 한 토막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하고 있으니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난 루이자 아빕니다. 딸 가진 아비 노릇 쉽지가 않네요. 아마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식물은 믿을 수 있거든요. 무를 심어보세요. 그럼 뭐가 나오겠어요? 콩 심은 데 콩 나오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입니다. 근데 자식 놈이란….”

  나는 요즈음 아들을 위해 나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연습 중이다. 가족의 추억이 담긴 낡은 사진첩을 펼쳐놓고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아들이 한창 재롱을 부릴 때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니 너무나 귀엽다. 그런 아들이 지금 장성하여 어엿한 청년이 되었으니 세월 한번 빠르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가로수에 노랗게 익은 은행잎은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것이 꼭 황금 나비가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푸름을 뽐내던 은행잎도 제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노란 알갱이를 남기고 앙상한 겨울 쪽으로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다시 돌아오면 다시 싹을 틔우는 은행나무 새순처럼 아들은 청국장 냄새를 가슴에 듬뿍 안고 파란 웃음을 지으며 금방이라도 집으로 돌아올 것만 같다. 


  어젯밤/천둥소리 벼락 떨어지는 소리에 고막 찢기고/어둠의 창가에서 아들 냄새가 난다/ 마른 눈물 쥐어짜기 싫어/ 꿈나무 열매 속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침입자/쪼여오는 공포에 술잔을 마시는 젊은이 빈방엔 침묵뿐,/허연 눈에 고인 주삿바늘/나는 씨앗 꿈을 접고 너를 보듬어 한 몸이 되리라/웅성웅성 모인 혈구 무리, 다시 태어나 가까이 웃으리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 여미며/컴퓨터 액정에서 아들 냄새가 난다/아들 냄새를 모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았다/가슴에 닿은 얇은 냄새를 안고 빠끔히 현관문을 연다/아들이 아침 일찍 빗방울을 맞으며 돌아왔다./눈으로 끙끙대며 아들냄새를 확인한다.


 병원 가는 길, 승용차 안에서 아들과 나는 다시 한번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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