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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Nov 06. 2019

씨앗 냄새

1부-질긴 인연5 아들, 투병 일기

5

아들, 투병 일기





  텅 빈 아들 방에 형광등을 켜고 침대며 옷장이며 서랍 속이며 책꽂이며 아들 냄새를 끙끙대며 컴퓨터를 켰다. 액정에 나타난 아들의 사진을 보고 섬뜩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남이섬에서 함께 찍었다는 여자 친구 배경 사진 대신, 부산 기장에 있는 용궁사 부처님 형상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놓은 사진으로 바꿔 놓았다. 아내와 함께 부산에 가서 잠시 들렀던 사찰이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능청을 떨고 있지만, 아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고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와 아내도 아들 못지않게 속이 타고 마음이 뒤숭숭하고 불안해서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감추고 싶을 뿐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악연을 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들의 모습이 거울 속에 투영되었다. 어젯밤부터 하염없이 내리던 빗방울 소리에 잠을 깼다. 오늘은 아들이 골수 검사를 받는 날이다. 아들이 간밤에 편안하게 잤는지 궁금했다. 큰 검사를 앞두고 편안하게 잤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 같다. 아들은 부족했던 잠을 하품으로 표출한다. “아들아, 어젯밤 몇 시에 잠자리에 들었어?” 물으니 새벽 네 시경에 잠자리에 들었단다. “오늘 검사하는 것 알면서 그때까지 뭐 했어?” 또 물었다. 아들은 모 자동차회사 사이트에 접촉하여 여러 종류의 승용차에 대해서 조목조목 살펴보았단다. 아들의 끈질긴 집념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경차와 소형차 두 종류를 가지고 어떤 것이 좋을지 저울질을 하면서 싱글벙글 좋아했단다. 지금 아들에게는 무엇보다 안정과 용기가 필요할 때이다. 아내와 함께 병원 가는 아들을 지하철역까지 태워 주었다. “좀 아파도 꾹 참고 치료 잘 받고 와라!”

 오후에 S 병원  ‘낮 병동’에 들렸다. 아들은 침대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척추 꼬리에 구멍을 뚫고 주삿바늘로 골수를 채취하는 검사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는 중에 지금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검사 때 통증으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옆으로 낑낑대며 겨우 앉는다. 몇 시간만 지나면 통증은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상태를 유지할 거라는 말에 아들은 기운을 차린다. 우리 가족은 대학로 거리로 나와 점심을 함께했다. 점심 중에 오간 대화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검사 때 얼마나 아팠는지 넌지시 물어봤다. 아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픈 통증을 느꼈다며 승용차 사 준다는 기쁨으로 아픈 고통을 꾹 참았다면서 피식 웃었다. 아내와 나도 덩달아 “하하하, 호호호”하고 크게 웃었다. 그 와중에서 승용차를 고르고 있었다니 참 대단한 녀석이다. 아들에게 물었다. “지금 승용차가 중요한가? 아니면 몸이 중요한가?” 아들은 둘 다 중요하단다. 몸도 승용차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며 몸이 빨리 완쾌되어야 운전하는 거 아니냐면서 말을 살짝 바꾼다. “아버지도 이번 기회에 담배를 단칼에 끊으시라.”며 나의 얼굴을 살핀다.
  음, 아들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신중하게 고려해서 내일까지 알려 주마.” 성격이 급한 관계로 내일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퇴근하여 아내와 아들이 있는 자리에서 피우고 남은 담뱃갑을 와이셔츠에서 꺼내 탁자 위에 '탁' 치면서 자신만만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담배와 전쟁을 선포한다!” 라이터도 여기에 있음, 몇 년 전에도 담배를 근 일 년 가까이 끊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나의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가족 건강을 위해서 또한, 나의 의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담배 끊는다는 말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내였다. 이제부터 식구 모두가 운동을 다니는 것이 좋겠다.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들에게 한 약속도 반드시 지킬 것이다. 부자간에 한 약속은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열어 줄 것이다. 아들 녀석 조언에 나는 담배를 끊고, 나는 아들이 병마와 싸워 이기라는 격려로 소형승용차를 사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처럼 어떨 때는 말 한마디가 아픔을 치유하고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기도 한다. 지금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과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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