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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Nov 02. 2019

씨앗 냄새

1부-질긴 인연3 반갑지 않은 손님 찾아왔다

3

반갑지 않은 손님 찾아왔다






  ‘벨로미’는 대학 1학년 2학기 때 입영을 하여 2년 6개월간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동기생이 연출하는 30분짜리 단막극에 불량배 역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주일간 부산에 내려가 있었다. 몇 번 가 보지도 않고 부산이 참 좋다고 떠들어 대던 아들이다. 몇 번 가보지 않은 놈이 뭘 알아서 좋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올여름 휴가는 다른 데로 갈 생각 말고 해운대로 꼭 내려오시란다. “이놈의 자식! 엔간히 쏘다니고, 촬영 끝나면 바로 올라오너라, 알았나?” 그러게 통화를 하고 난 며칠 후 멜로미가 전화를 했다. “엄마, 밤에 자고 나니 목 밑에 몽우리가 생겼는데 약국에 가서 약 사 먹으면 금방 나을 거야.” 아들과 아내의 통화를 엿듣고 있었다. “나 좀 바꿔 줘?” “뭐, 목 부위에 몽우리가 생겼다고?” “당장 병원에 가보든지, 약국에 가서 약 지어 먹고 내일 전화해!”

 내 어릴 적 병치레할 때 보면 가끔 사타구니나 겨드랑 등에 조그마한 몽우리가 생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저절로 없어지곤 했었다. 병치레 한번 없던 아들의 목 밑에 몽우리가 생겼다니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당장 상경하라고 하면 아들과 또 한 차례 실랑이를 벌일 것이 뻔하다. 오늘은 내가 참자. 우리 집은 나를 포함해서 아내, 아들, 모두 한 가닥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 부딪치면 지지 않으려고 서로 으르렁거리기 일쑤다. 특히, 나와 아들은 더 심하다.

 아내는 늘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미련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지금 내가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건강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아들은 아비 말뜻을 잘 새겨듣고 있는지, 아니면 매사 잔소리로 흘려버리는지 알 수가 없다. 자고로 가족이란 구성원이 많아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옛날을 생각하면 참 행복했던 것 같다. 비록 가난했지만, 사람의 정 하나만큼은 철철 넘쳐흘렀다. 할머니, 아버지 어미니, 형, 누나, 동생들까지 북적거리며 늘 시끌벅적했었다. 요새는 집집이 핵가족인 경우가 많아 가족 간의 활기가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 같아 마땅치 않다. 아들이 부산에서 올라왔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겠다는 내 말에 아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지 않아도 죽지 않아요!” 내일 가겠단다. 아들이 옆에 있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만만한 수화기만 꽝! 놓고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전화통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놈의 자식! 병원에 가보라는 데, 아비에게 하는 대꾸가 그게 뭐 하는 짓이고!” “집에 가서 보자 이놈의 자식!”
 바깥에는 장맛비가 징글맞게 퍼붓고 있다. 나에게 최근 한 달은 짓궂은 장맛비처럼 지루하고 얄미웠다. 오늘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보니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지금까지는 뜬구름 잡는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이제부터는 반드시 해야 할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노력해야 한다. 여러 사람의 염려 덕분에 아들도 몇 개월 동안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다. 아무 병도 아니기를 염원했던 것은 부모의 희망 사항일 뿐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병을 조기에 발견했고, 아들은 아직 젊고 치료만 잘하면 완치할 수 있는 병이라니 정말 잘 되었다. “이만한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나도 몰래 감사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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