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아들을 염려해 준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함께 활동하고 있는 문인에게까지 아들에 대한 근황을 알렸다. 젊은이들에게는 흔치 않은 병이기는 하다 마는 녀석이 우리 아들에게 찾아와 지금부터 아들은 이놈과 이기는 싸움을 해야만 한다. 병원에 가면 환자가 얼마나 많던지, 투병하는 그들을 볼 때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아들 데리고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건강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아들에게 당근보다는 채찍으로 대한 것이 후회 막심하다. 아들의 병이 혹시 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의 지은 죄가 커 아들을 고생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죽고 싶을 정도로 좌절과 절망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둡고 긴 터널이라도 반드시 끝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늘 희망과 믿음을 간직해왔던 터라 온 힘을 다하고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올 거라 믿고 싶다. 세상에는 좌절을 딛고 일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좌절과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주저앉기도 한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은 세상에 널려 있지만, 그 좋은 말들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각자의 마음에 있다. 좋은 말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언제 들어 봐도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나는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그루 사과나무 심겠다.”라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의 이말 한마디 속에는 희망이 살아 움직인다. 멋진 명언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삶의 교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우리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사고를 불어넣는 메시지이다. 또 한 가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말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원효’의 깨달음에서 유래한 삶의 철학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주는 귀중하고 소중한 삶의 길잡이다. 이 경구가 나의 좌우명이 되었고 가훈이 된 지도 오래됐다. 늘 액자 속에 살아 있는 진리를 마음속으로 새기면서 나를 조절하고 있다. “세상사 모든 일은 오르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얼마나 지혜로운 말인가, 그래서 세상은 아직껏 살 만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희망은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이번 예견 하지 못했던 일로 좀 더 아들에게 인자한 부모가 될 것을 다짐해 본다. 불안했던 생각과 마음을 떨쳐버리고 우리 세 식구는 희망의 노를 젓고 있다. "이만한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희망을 잃지 말고 잘 극복 하십시오.” 잔뜩 흐린 가운데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메아리친다.
현재 아들은 투병 중이다. 호지킨 림프종(Hodgkin's Lymphoma)'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놀랐던 가슴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희망으로 돌아섰다. 이 병을 최초로 발견한 영국 의사 ‘토마스 호지킨’의 이름을 딴 병명이다. 호지킨은 비호지킨 림프종(non-Hodgkin's lymphoma)에 비해 완치율이 비교적 높은 혈액암이라 한다. 다음 주 월요일 이른 시간에 아들과 함께 병원에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가벼울 것 같다.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를 찾은 우리 식구다. 불어 닥친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줄 것이다.
기가 살아 있는 아들을 보면서 고마움을 한없이 느끼고 있다. “아들아, 넌 극복할 수 있어!” “나도 엄마도 기가 살아난다. 아들아!” 바깥에서 희망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들을 생각하며 지은 시詩 한 편 남겨둘까 한다. 병원 가는 길, 승용차 안에서 아들과 약속을 했다. 아들이 나에게 한 말은 “아버지, 담배 끊으세요?” “알았다!” “아들 너는, 반드시 병마와 싸워 이기는 거야!” 그때는 우리의 약속을 반드시 지킬 거다. 지금 다시 금연 중, 지금 다시 흡연 중, 두 경계에서 고민 중이다. 지금 아들에게는 무엇보다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용기가 솟구치는 선물이 필요하다. 아들이 원하는 선물은 바로 병마와 싸워 이기는 것이다. 아들과 지켜야 할 약속, 다시 한번 새끼손가락을 걸고서 마주 보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