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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Oct 31. 2019

씨앗 냄새

1부-질긴 인연1 질긴 인연의 원초란

1

질긴 인연의 원초란





 질긴 인연의 원초는 무엇일까? 생명이 있는 사물을 주시한다. 아파트 화단에 꽃사과 나무 한 그루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채 칼바람에 잔뜩 움츠리고 있다. 앙상하게 말라 죽은 줄만 알았던 나뭇가지에서 봄을 알리는 새순 하나가 얼굴을 내보이는 것이었다. 새순은 변화무쌍한 세월 속에서 용케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린 꽃사과 나무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자연에 순응하면서 잘도 견뎌내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어찌 생명을 함부로 버리겠는가, 한 생명은 내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한줄기 씨앗 냄새였다.

 세상에는 인연만큼 아름다움도 없다. 산과 들에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파릇파릇하다.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예술가일지라도 자연의 소리, 자연의 풍광, 자연의 운치만큼은 창조하지 못하리라.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너와 나의 인연도 운명이다.
  사무실 창밖에 펼쳐진 북한산 자락의 풍광에 푹 빠져 있노라면 몸과 마음이 평온하고 숙연해진다. 자연은 물리적 힘을 가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때로는 물리적인 힘으로 저항력을 잃고 죽고 마는 나약함을 보이는 것이다. 이럴 때는 너무 가엽고 안타깝다. 문명과 개발이란 명분 아래 현대인은 자연을 파괴하고 괴롭힌다. 자연을 파괴하고 괴롭히는 것은 인간의 삶 자체를 파괴하고 괴롭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아낌없이 주지만,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인간들에게 가혹하리만큼 무서운 응징을 내리기도 한다. 자연은 끔찍이 아끼고 돌보면 더없이 자애로우신 우리 어머니 품 안 같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 안 듣는 자식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드는 엄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중 하나는 나와 맺은 인연,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다. 그중 가족의 인연이 으뜸이다. 그 한가운데는 나와 아들이 있다. 여러 만남 중에서 악연보다는 우연, 우연보다는 필연이 내가 소망하는 만남의 가치이다. 접시 안에 나와 아들이 있다. 내게 아들 하나가 있는데 나와는 참 별난 인연이다. 아들이 병마로 힘들어할 때 아비는 아들을 위한답시고 시 한 수에 울고 웃고 아들은 아비를 위해 모노드라마 ‘씨앗 냄새’를 공연하였다. 씨앗 냄새는 아들과 아비의 인연이 담긴 소중한 생명이다. 거기에 ‘접시’가 놓여 있었다. 씨앗 냄새와 ‘접시’ 때문에 나는 독자에게 시(詩) 빚을 져 빚쟁이가 될까 한다. 먼 훗날 개나리 종소리 같은 아름다움으로 시詩 빚을 꼭 갚으리다. 생명이 방울방울 수유하지요. ‘수유하지요.’ 알고 보면 모든 것은 당신의『달거리』에서 태동했다. 우물에 달그림자가 시리게 떠오른다.

 “사랑한다, 아들아~” 혈액암에 걸린 아들을 위해 바친 아버지의 시(詩). ‘씨앗 냄새’는 차라리 시 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는 독자들의 한목소리였다. 어느 여성 기자가 내가 낸 첫 시집이 독자들에게 반향이 대단하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처음에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쑥스럽기도 하고 해서 인터뷰를 사양했다. 상대방의 호의를 계속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인터뷰에 응했다마는, 다음날 기자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기자가 묻는 말에 어눌한 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날 여러 인터넷포털에는 나의 시집에 관한 기사와 어제 인터뷰한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아들 덕분에 내가 하루아침에 유명해져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시집을 읽어 본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씨앗냄새’에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부성애가 구구절절하고, 각박한 세상을 따뜻하게 녹인 감동이었다며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었다. 아들과 아내도 나에 관한 기사를 보고 난 후 매우 기뻐했다.
  “아버지, 축하합니다.”

 “당신, 축하해요!”

 “그래, 그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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