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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Oct 30. 2019

씨앗 냄새

김형출 논픽션 씨앗 냄새 [프롤로그]-절망해서 소중한 씨앗 냄새 기록물

  [프롤로그]-절망해서 소중한 <씨앗 냄새> 기록물



     

 아들 하나 있다. 내성적인 성격의 외유내강형이다. 고집이 세다. D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재학 중인 아들에게 운명의 장난은 시작되었다. 2005년 봄, 아들 목 부위에 생긴 몽우리가 혈액암으로 판명됐다, 이름도 생소한 ‘호지킨 림프종(Hodgkin disease)'초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6개월 방사선 치료 후, 학교 복학 2년 반 만에 다시 휴학, 다시 항암치료 6개월, 다시 연장 치료 중, 항암 후유증으로 간염 발병 15일 입원, 2010년 4월 팩 검사 결과 비장에 남아 있던 암세포 없음 판정 복부 림프샘에 약간의 부기 있음, 현재로서는 암세포인지 알 수 없음, 3개월 후에 결과 확인 예정, 일단 안도한 우리 가족들, 그리고 ‘카페 띠아모’ 가맹점 창업으로 새로운 활력 모색, 이것이 5년간의 구겨진 아들의 이력이다.

 아들의 아버지는 소규모의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시인·수필가로서 활동 중이다. 지금 “씨앗 냄새”이라는 주제로 ‘논픽션’의 장르를 빌려 기록문학(수기·수필)을 풀어놓고 있다. 현재 아들과 나와는 코드가 안 맞지만 그래도 붙어산다. 잘 맞지 않은 코드를 맞추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 ‘씨앗 냄새’였다. ‘씨앗 냄새’가 싹을 틔워 희망의 불씨로 활활 타오는 것이 아비의 염원이다.

 아들 어릴 적에는 사람들로부터 “그놈 참 잘생겼다.” “총명하다.”라는 소리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부모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내가 93년도 4월 조그마한 개인회사를 차리고부터였다. 이때부터 아내도 같이 회사 일을 도왔기 때문이다. 돈 한 푼 없이 시작한 사업, 걱정도 많았다. 군대 생활을 정리하고 사회에 갓 나와서 사회 경험도 별로인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졌다. “부딪쳐보는 거야!” 아내와 단둘이서 금속류를 판매라는 도소매 서비스 사업의 시작이었다. 우선 국내 철강 제품에 손을 댔다. 대기업 철강 부서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퇴직하고 철강회사를 차렸다. 거기에서 약 2년간 함께 일했다,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5년간 금속을 다룬 경험도 있다. 그래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규모 회사를 차렸다. 철강이란 종류는 다양하지만, 기본 물질은 금속이다.
  국내 포항제철이나. 인천제철 등에서 생산하는 철강류와 스테인리스강이었다. 가끔 일본과 미국에서 국내에서는 생산하지 않는 티타늄 니켈합금 등 원자재를 수입하곤 했다. 수년 동안 정말 열심히 영업하고 열심히 배우고 했다. 신용도 조금씩 쌓았다. 그렇게 재미를 붙이던 초창기에는 경험 부족과 의욕이 앞서다 보니, 덜컹 비싼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전국적인 대규모 사기단에 걸려 물품 판매대금을 몽땅 날리게 되었다. 몇억은 나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이 엄청난 사기 사건은 SBS 방송에서도 방영되었다. 사기사건 그 현장에 갔을 때는 사기당한 억울한 사람들만이 북적댔다. 사기꾼은 자취를 감추고 어지럽게 나뒹구는 그들의 검은 흔적뿐이었다. 이런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데 약 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아들도 평소와 같이 말없이 학교도 잘 다니고 곱게 성장했다. 아들이 비틀어진 때가 아마 고등학교 2학년부터가 아닌가 싶다. 크게 말썽을 부린다거나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이 빗나갔다는 거다. 학원에서도 원만하게 잘 적응하고 공부도 잘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갑자기 진로를 바꾸겠다는 거다. 인문에서 예술계통인 연극을 하겠다는 것이다. 연극에 끼와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인제 와서 연극을 하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연기 학원과 수능학원에 다니게 했다.
  예술계통은 이론보다는 실기가 우선시된다. 몇 군데 원서를 내고 실기시험을 봤지만, 학원에 다닌 만큼의 실력밖에는 안 되었다. 결국, 대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했다. 부모 말도 안 듣고 자기 욕심만 차리는 아들이 미웠다. “어디 잘되는지 두고 보자!” 재수 1년이 지나가고 다시 입시 철이 돌아왔다. 몇 군데 대학에 연기와 이론연출 원서를 제출했다. 한 학교에서도 합격했다는 소식이 없었다. 아들은 실망하며 부모가 가라는 학교에 원서를 내어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때 아들은 아무런 말 없이 입학금 내러 동행했었다. ‘M 대학 문예창작학과’ 나는 연극보다 문예 창작 전공을 원했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른다.”라며 아들을 위로했다. 그래도 아들은 성에 안 찼는지 연기에 대한 미련에 혹시나 하는 눈치였다. 그 일로부터 며칠 후 학교에서 예비합격자라며 연락이 왔다. 예술계통의 명문 D 대학 ‘이론연출’에 붙었다.
  이렇게 해서 아들은 자기 자신이 원했던 공부를 하게 되었고 적극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연기 공부를 하지 않은 것치고는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학년부터 친구가 연출한 영화에 단막극도 찍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혈액암 투병 중인 아들을 5년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아비로서 한 인간으로서 아들과 나의 인연이 바로 ‘씨앗 냄새’란 것을 알았다. 아들과 깊은 인연을 끝까지 아름답게 잘 가꾸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들을 위한 시 한 편 읊조리다 보면 마음이 시려 온다.

     

추억의 124병동
 
  이별은 인연처럼 묘연하고 만남은 악수처럼 반갑다, 고마워, 거기에 있어서…. 아들아 젊은이의 한 고단함이 체온처럼 아리다 못해 링거 방울처럼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어둠 안에서 다가오는 절박한 기적 소리를 보았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별이 서러운 것은 만남의 질투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행복하다마는 이별 같은 인연으로 만남 같은 인연으로 어두운 밤에 숨이 찬 기적 소리를 기다리는 124동 병실들 히터처럼 따스하고 형광등 불빛처럼 환하다 백합꽃 같은 사랑이 피었다 지면 긴 겨울은 지나가고 매몰찬 신음만큼 씨앗 냄새는 흥건하게 이별과 만남을 배웅하고 마중하겠지 추억의 124병동 안쪽, 이별에 관해 의문이 있다. 어디에도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124병동 안에는 없다 창밖에 어둠이 노래하고 별이 총총한 걸 봐서 나는 죽음을 모르는 무식한 자다 죽음 그 자체를 본 적이 아직 없기에, (문학과 현실2010년 봄호 발표)

     

 나도 내가 좋아하는 글을 열심히 쓸 것이다. 여기 글은 나의 첫 시집 ‘비틀거리는 그림자’ 서문의 일부 내용이다.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인 김형출 시인의 첫 시집이다.

     

 붓방아 타령을 하면서 제대로 얻은 것이 없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티끌 같은 존재라면 이루고 이루지 못함에 미련을 버려야 함에도 아등바등 욕심을 부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느새 쉰하나의 고갯길을 넘고 있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끼면서 후미진 인생의 자락을 잡고서 그냥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마냥 글이 좋아서 겁 없이 나부대며 멋모르고 시작한 나의 시인 명패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시단에 나와 시를 쓴 햇수를 말하라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다 시인이 될 수도 있다. (중략) 시를 쓰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답답했던 가슴이 펑 뚫리는 것 같아 이제는 이것을 버릴 수가 없다. 나의 설익은 첫 시집『비틀거리는 그림자』를 세상에 선보인다는 설렘과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면서 부끄러운 손을 독자에게 내밀게 되어 송구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시 한 편 봐준다면 나는 행복한 시인이 될 것이다. 인생은 비틀거리는 그림자, 나는 인생을 노래하고 싶다.



 김형출 시인은 자칭, 타칭 개구쟁이가 별명이다. 그 별명만큼 그는 언제나 천진한 소년처럼 얼굴에 생글생글 미소가 감돌며 그가 쓴 글이나 대화 속에서 그만이 가지는 여유와 해학적 기지가 번득인다. 그러한 그의 성품은 문인으로서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것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중년을 훌쩍 넘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개구쟁이 같은 심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그만큼 맑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흐트러짐이 없고 언제나 반듯하고 삶에 대해 예리하고 치밀하다. 그의 외형적 분위기로 보면 인생을 아주 순탄하게 살아온 걱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군 장교로 살아오다가 전역 후 사업가로 변신하는 가운데 사업의 실패로 인생의 쓰디쓴 맛을 보기도 했지만 강한 의지로 절망을 극복해 내면서 지금은 탄탄한 사업적 기반을 이룩해 경영인으로서 성공했다. 김형출 시인의 시적 메타포는 그의 삶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는 진지하고 인생에 대한 본질을 감지해내려는 갈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는 다소 허무적인 맛깔을 담고 있으면서 강한 패러독스와 아이러니가 번득인다. 그것이 다른 시인과 그의 시가 차별화되는 요인이다. (김창동(소설가, 문학저널 발행인), 축하의 글 <삶에서 근원根源되는 시적詩的 메타포> 중에서)

     

 김형출의 시적 모색은 추상의 시 세계에까지 닿아 있다. 의식 세계에 끌어들인 인식의 비약과 변형과 낯설게 하기의 극단적 상징화는 어느 정도의 전달성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하지만, 시인의 적극적 모색은 새로운 시의 지평地平을 열어가는 시적 행보行步임에 틀림없다. 김형출의 이러한 지각행위知覺行爲는 ‘슈르(surrealism)’의 냄새까지 피우고 있다. 무의식의 캄캄한 심층에서 자동기술自動記述로 구체화한 추상일까? 분명한 것은 <너 안의 너> 등 일련의 추상적인 시가 관계없음의 비상 관성, 시적 진술의 질서일탈…,의 비합리성을 띠고 있음이다. 그것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요인에 더 상관될 것이다. (윤강로(시인), 작품해설 <시의 탐색자> 중에서)

     

 나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이야기이다.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 사랑이란 메시지를 나와 아들을 통해서 얻고자 노력했다. 누구나 다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도 가족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많은 생각과 반성과 성찰이 있었다. 아비로서 아들에게 잘못한 것이 많아 부끄럽다. 아들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로서 너무나 나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들을 위해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 아들이 5년 동안 병마와 싸우면서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서 제2막을 준비하는 장한 아들의 이야기며 부성애를 노래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여기, 작은 이야기가 고통과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아들을 위해 잔소리만 해댔으니 아들이 얼마나 나를 미워했겠어, 아들아, “이제는 정말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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