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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Nov 10. 2019

씨앗 냄새

1부-질긴 인연10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10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들은 역술에 빠져 엉뚱한 데 시간을  허비했다. 현재 상황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아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마는 아들의 심리상태는 심각했다. 밤에 헛것이 보이고 가위눌리고 한숨도 못 자고 아들은 점점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갔다. 이것도 모르고 아들만 혼내 키고 나무랐다. “이놈의 자식, 하라는 공부는 않고 몸도 돌보지 않고 무엇하는 짓이야!” 봄은 왔는데 마음은 아직 겨울이다. 봄에 맞는 분위기에 치장한다.

 아들은 아무 일 없는 듯 조잘대며 웃음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늘 오늘을 중시한다. 어제도 내일도 오늘처럼 시간과 시간은 존재하지만, 공간적인 개념은 오늘과 같은 것이다. 결국, 어제와 내일은 분리가 아닌 하나의 오늘이다. 기구한 운명에 구차한 변명은 없다. 아들이 병원에서 휴대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전번처럼 항암 주사 맞을 수 없다며 회사로 들리겠단다. 계획된 항암 주사 12번 중 8번을 맞고 9번째에서 제동이 걸렸다. 간 수치가 높아 부득이 항암치료를 연기해야 한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었다.

  오늘 다시 혈액검사를 하고 다음 주 검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간염일 확률이 100%란다. 항암치료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 중 하나인 셈이다. 아들의 인생에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는가, ‘호치킨 림프종(Hodgkin's lymphoma)’ 발병, 휴학, 1차 방사선 치료 완료, 복학, 다시 휴학, 그 후 3년 반 만에 다시 항암 치료, 치료 중에 간염으로 항암 치료 연기, 어떻게 보면 환자 본인보다는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 마음이 더 아프다. 8번째 항암 주사를 맞고 중간 검사 결과 “항암 치료가 아주 완벽히 되고 있다.”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아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물론, 부모 입장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아들 겉으로 보면 멀쩡하다. 하루에 두 차례 1시간씩 걷기 운동하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컴퓨터하고, 친구들 만나 사진 찍으러 가고, 외식하고….

 오늘,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아들, 너 시련이 많은 것 보니 암스트롱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려나 보다.” 아들은 싫지 않은 듯 싱겁게 웃었다. 일 때문에 먼저 사무실로 왔었는데 아들은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단다. “죽을 놈은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죽기 마련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살 놈은 산다.”라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며 자신은 아무렇지 않단다.  
 아들에게 돌리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아들은 병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초라한 나 자신이 밉다. 지금 내 가슴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지만, 반드시 봄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네 안에 거대한 공포와 불안이 일어나 자신을 삼킬 지경이라면 아들아! 너 자신과 죽기 살기로 싸워라. 너 안에 해코지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self)이니라. 본래 마음이란 빛과 어둠을 오가는 그림자 같은 형체인지라 누구든지 마음의 생김새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움직임은 이야기할 수 있단다.

 철학자나 심리학자에 의한 마음의 구조는 카메라 렌즈처럼 둥글고 사람의 눈처럼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 안에 보이는 의식 세계와 보이지 않은 무의식세계가 공존하고 있는데 무의식세계에는 집단 무의식세계인 불안한 콤플렉스로 채워져 있다. 그중 그림자는 무의식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밤이든 낮이든 빛이 있는 곳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단다. 빛과 그림자는 상극 같지만 없어서는 안 될 우주의 엄연한 질서이다. 언젠가는 과학자나 심리학자, 철학자에 의해 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기를 기원해보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은 늘 밝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그림자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들이 불안과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해왔다. 처음에는 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헛것이 보이고 가위에 눌려 몸이 오싹해져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며 울먹였다. “젊은 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단단히 미쳤군!” 하면서 아들을 향해 오히려 꾸짖고 야단치면서 정신병자 취급을 하였다. 아들은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현상들은 1차 암 치료를 받고부터 아들에게 있었던 거짓말 같은 사실이었다.
 아들의 이야기는 밤만 되면 이러한 증상들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몸이 허약해지면 마음도 허약해져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하고 아들 이야기를 등한시했던 것이었다. 아들은 삼 년 반전에 호지킨 림프종으로 목 부위에 생긴 몽우리 제거 수술을 하고 방사선치료를 받았었다. 그 후 복학하고 잘 생활해오다가 지난달 정기검사 결과 사타구니 부위에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충격이 너무나 컸다. 늘 자기 자신과 의사 선생님 외, 어떤 말도 믿지 않겠다던 것과는 정반대로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아들 말인즉, 자신의 몸에 귀신이 우글우글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아! 귀신도 너의 마음이다.”라며 독한 마음을 주문했지만, 아들에게는 나의 말이 소귀에 경 읽기였다.

 지금 당장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교훈적인 말이나 용기를 주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는 것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아들의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아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은 평소에도 사찰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입대하여 군대 생활 중에도 법당을 찾곤 하였고, 가끔 혼자서 절에 가기도 하였다. 아들은 구명시식(救命施食)이나 천도재(薦度齋)를 간절히 원했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두 가지 의식을 말했다. 이 둘 다 불교의 성스러운 의식이다. 세상에는 의술이나 의학으로 치유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 들어봤다. 어떤 종교도 생명을 중요시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육신은 언젠가는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영혼 그 자체는 영원하다. 이것이 종교의 공통적인 존재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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