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 Jul 17. 2024

양심 없는 양심고백

"SM물산에서 판매하는 [BREATH]는 사실 실체가 없이 날조된 제품입니다. 냄새에 감정을 담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이는 다분히 부적절한 목적을 품고 있습니다. 악취로 고통받는 국민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기업의 기만적인 행위에 일조한다는 괴로움 때문에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야 이런 양심고백을 하게 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용기를 낸 저에게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텔레비전이 실제보다 부하게 나온다고 하던데 텔레비전에 나온 이 부장을 보니 그것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닌가 보다. 아니면 기자 회견을 앞두고 일부러 살을 뺐나. 향미는 실물에 비해 수척하고 꾀죄죄한 얼굴로 연기를 펼치는 이 부장을 보면서 솔직히 좀 감탄하는 중이다. 저 양반은 이 회사를 다닐 것이 아니라 연기를 했어야 했네. 대배우는 못 되어도 생활감이 묻어나는 연기를 곧잘 하는 씬 스틸러 자리 정도는 꿰찰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부장이 회사를 나간 건 3주 전. 징계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얼마 후 이 부장은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다. 이 부장을 겪어 본 사람들은 그가 징계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보다 스스로 회사를 나갔다는 것에 더 놀랐다. 이빨을 꽉 깨물고서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예측한 사람이 많았다. 물론 이 부장의 징계로 인한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몸을 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 부장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늘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건 자신이었는데, 그런 자신이 공개적으로 징계 대상자가 된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걸까. 회사를 향한 분노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욱 하는 마음에서 한 결정이었을까.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 말도 사람 나름이었다. 이 부장이 회사를 나가자마자 그의 존재감은 빠르게 사라졌다. 옛말 중에 틀린 말도 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그렇게 이 부장은 빠르게 잊혔다. 


그런 그가 지금 뉴스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양심을 고백하고 있다. 완전히 꺼졌다고 생각한 이 부장에 대한 관심이라는 불씨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며 불을 지피는 중이다. 며칠째 회사는 온통 그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부터 이 부장은 이 모든 걸 계획하고 퇴사를 했다 랄지, 이 부장이 잠자코 물러날 성격이 아니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회사에 물을 먹일 줄은 몰랐다 랄지, 역시 만만히 볼 사람이 아니다 랄지, 그래서 그의 다음 계획은 무엇 일지.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에게 훈수를 둘 때는 언제고 텔레비전에 나와 떠드는 이 부장을 보니 향미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사람 일이라는 게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법이다. 그걸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부장이 몸소 증명하고 있다니. 이 부장에 대한 몇 개의 기사 제목을 핸드폰으로 훑어보던 향미가 창을 닫으며 혼잣말을 한다.


"있는 지도 몰랐던 이 부장의 양심을 이렇게 보게 되네."

이전 17화 떳떳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장소의 냄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