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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Jul 10. 2024

떳떳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장소의 냄새

냄새를 맡은 후 지표에 맞게 입력하는 일. 향미는 [BREATH]의 핵심 비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냄새에 감정을 연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게 진짜 가능한 일인가. 향미는 애초에 감정으로 이름 붙여진 냄새가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아니 애초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만들어 파는 것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러니 향미는 ‘이 냄새를 맡으면 그 감정이 따라올 거예요’라고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것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냄새를 판매하는 것이 영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게다가 지금은 악취가 가득한 세상이니, 악취를 대신할 냄새가 있다면 그리고 그 냄새로 간편하게 감정을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한가.  


무철은 향미에게 오늘 전달될 냄새를 잘 테스트해 달라고 했다. 평소처럼 향미에게 주어진 일을 하되, 평소보다 더 세밀하게 냄새를 살펴 달라고 말이다.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긴 했다. 향미의 손에 심박동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가 연결된 것.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제품 테스트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박무철 상무의 지시사항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실험실의 쥐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라는 향미의 볼멘소리에 무철은 ‘동물 실험이 가능할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라고 했다. 이어서 이것은 동물 실험이 아닌 고급 테스트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게 말이야 방귀야 라는 뾰족한 향미의 말에 무철은 향미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그 손의 감촉. 그놈의 손. 이번에도 향미는 그 손에 넘어가 버렸다. 향미의 신체 반응은 바로 옆에 있는 모니터에 성실히 전달되고 있다. 알 수 없는 눈금자와 그 사이를 오르내리는 그래프들.

 

시약통을 열고 숨을 깊이 마신 후 뱉는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축축한 먼지의 냄새다. 오랫동안 문이 닫혀있던 지하실의 무거운 문을 열었을 때 날 법한 냄새. 창문으로 손을 뻗어 문을 활짝 열고 바깥공기를 안으로 들이고 싶어지는 눅눅함. 

다음으로 비릿한 냄새가 난다. 생선의 배를 가를 때의 비릿함보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만진 후 손에서 나는 비릿함과 닮아있다. 날것의 포유류를 자르고 다지고 저밀 때 나는 냄새.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거나 끓는 물에 넣어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나기 전의 비릿함. 조금 과장하자면 죽음의 냄새라고 부를 수도 있을 법한 냄새.

마지막으로 신 냄새가 난다. 레몬에서 날 법한 상큼한 냄새와 다른 부패가 막바지에 이를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한창 썩을 때 나는 악취와는 다른, 이 모든 일이 끝났음을 알리는, 이제 더 썩을 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나는 부패의 끝을 알리는 냄새. 


매뉴얼에 따라 냄새의 수치를 입력한 다음 손에서 심박을 측정하는 기기 역시 제거한 후 향미는 생각한다. 시약통에 든 냄새에 감정을 붙인다면 무엇일까. 글쎄, 무엇이려나. 감정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장소는 떠오른다. 이 냄새는 어두운 뒷골목과 닮아있다. 인적이 드문, 지름길로도 쓰일 수 없는 막다른, 굳이 찾지 않고서야 발을 들이지 않을 만한 작은 골목의 끝. 그런 이유로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람만이 찾을 만한 곳. 급한 용변을 볼 곳을 찾는 사람이거나, 숨어서 담배를 피울 곳을 찾는 청소년이거나, 세상이 알면 안 되는 사랑을 하느라 늘 숨어서 서로의 몸을 더듬을 만한 곳을 찾는 연인이거나.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허둥지둥 떠나는 장소에서 날 법한 냄새다.       


"이 냄새로 뭘 할 계획이신가, 박무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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