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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Dec 05. 2022

내 엄마의 요리조리

04. 제사 음식 

“아이고. 집안이 이렇게나 쪼그라들었네.” 

제사상에 옥춘(빨갛고 동그란 모양의 달기만 한 그 설탕 덩어리 사탕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어. 빨간색이 들어간 사탕을 올려야 딸들이 잘 된다나 뭐라나.) 하나 빠졌다고 집안이 쪼그라들었다니. 그리고 애초에 쪼그라들 걸 걱정할 만한 집안은 아니잖아, 우리 집이? ‘집안’이라는 말조차 어색해 죽겠구만.   

“명절이면 제사 음식을 차리고 떡을 다 해서 그걸 솥에 찌면 첫닭이 울었어, 나 때는 그랬는데” 

순간 귀를 의심했잖아. 아니 무슨 죽은 사람 음식 챙긴다고 산 사람이 밤을 꼴딱 새우면서까지 생고생을 하냔 말이야. 그 말을 하던 할머니는 마치 지금은 몰락한 집안의 후계자가 한때의 영광을 떠올리는 것처럼 비장하기까지 했다면 믿겠어? 정말 그랬다니까? 제사 음식이 몇 개 빠진 상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에 떠오른 안타까움 반 못마땅함 반, 혀를 끌끌 차며 차라리 안 보고 말겠다고 거실로 나가 버리는 할머니의 그 꼿꼿한 뒷모습.

그 말을 굳이 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할머니가 야속하면서도 웃겼어 나는. 얼마나 다행이야, 지금은 집안이 이만큼 쪼그라들어서. 아니었으면 우리도 첫닭이 울 때까지 그놈의 떡을 하고 있었을 거잖아. 한때는 떡도 꼭 서너 종류씩, 슈퍼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한과도, 누가 먹는다고 다식과 약과까지 직접 했거 상에 올리곤 했어. 하나같이 준비부터 조리까지 손이 많이 가도 너무 많이 가는 그 음식들을 말이야. 


내 기억 속 최초의 음식과 관련된 기억이라면 제사상. 그래, 제사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던 거였지. 분주한 손놀림, 아궁이에 가득한 나무들, 온종일 삶아지고 끓여지고 튀겨지던 음식들.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고 정성도 쏟았는데 신기하게 하나도 맛이 없어 보이던 음식들. 혹시 하는 마음에 하나 입에 넣어 봐도 그것들은 그냥 무 맛이었던 거 같아. 내가 어렸으니까 애들 입맛에 맛이 없는 거였을 수도 있지만 사실 제사 음식은 산 사람 입에 맞으라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산사람인 그것도 살아있는 어린아이였던 내 입엔 맛있을 리가 없었겠지. 어린애였던 나는 산 사람 중에서도 죽은 사람과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셈이니까. 

상에 올라가는 음식을 준비한 건 할머니와 엄마였는데 본격적으로 상이 차려지면 이내 뒷방으로 물러나는 게 이상했어. 그냥 다 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할머니는 잘 몰라도 엄마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어. 이제 본인 할 몫은 다 했으니 한숨 쉬고 싶었을 거야 아마. 왜 안 그랬겠어. 종일 종종 거리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음식을 했을 테니까. 할머니는 아마 엄마를 쫓아다니면서 말 한마디를 던졌을 테고. 

상이 차려지면 아빠는 순서에 맞게 음식을 옮겨 두고 향을 피우고 절을 했어. 그동안 나는 윗방에 있어야 했던 것 같아. 어둡고 비좁은 그곳에서 나는 제사라는 건 여자들에게만 숨겨진 비밀 같은 건가 라는 생각도 했어. 그럴 거면 애초에 남자들끼리 알아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한동안 방을 비워두고 있다가 이제 치우라는 아빠의 말을 들으면 엄마와 할머니는 제기에 올라가 있던 그 음식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았어. 죽은 사람을 위한 상을 치우면서 동시에 산 사람들을 위한 상을 차렸지. 나물이나 산적 같은 건 산 사람 입맛에 맞게 다시 조리하기도 하고. 상에 둘러앉았을 때 이미 밖은 깜깜한 밤이었어. 어린아이들은 이른 시간에 간단히 밥을 먹기도 했고, 어른들도 별로 입맛은 없어 보였어. 밥상을 어서 치우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엄마 아빠와 다르게, 이번에는 그냥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잊지 않고 말했지. 

“떡이랑 음식 몇 가지 챙겨서 동네에 돌리고, 터에도 좀 놓자.” 

이런 심부름은 언니와 내가 할 일. 이웃집에 음식을 가지고 가는 건 늘 조금 신나는 일이었는데 제사가 있는 날은 귀찮았던 것 같아. 평소라면 음식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면서 내가 뭔가 베푸는 입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즐기고, 빈 그릇을 그냥 내주는 법이 없는 집에서 내주는 새로운 음식을 받아서 집으로 가는 길엔 늘 군침이 돌았는데. 제사를 마친 저녁은 깜깜한 밤이었으니까 밖에 나가는 게 싫었어 그냥.  


집안이 쪼그라들었다고, 부침개 할 때 요지(이쑤시개)가 들어가지 않으면 뼈가 없는 자손이 나온다는 말을 해서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할머니는 96살에 돌아가셨어. 진즉에 할머니가 된 엄마가 여전히 수고스럽게 제사상을 차리는 게 자식인 내 눈엔 안쓰럽다마다. 엄마는 저걸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걸까 싶다가도 그 말이 이제 이 제사는 새언니(오빠가 물려받지만 제사 음식을 하는 건 새언니일 테니까 말이야.)가 물려받으라는 말로 들릴까 봐 내뱉기는 망설여지더라고. 상을 차릴 때마다 하나씩 잊고 빠트리는 음식 때문에 빈자리가 더 늘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나의 엄마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었다고 조심스레 말해봐도 엄마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더라. 

“그래도 이렇게 제사를 지내서 너희들 별 탈 없이 자란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그만큼은 할 거야. 내 할 도리는 해야지.” 

엄마가 제사상을 계속 차리는 건 얼굴도 모르는 죽은 사람들, 조상이라는 사람들에게 자식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겠거니. 그걸 힘들다고 멈추면 혹시나 부정이 타서 자식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싶어서 엄마는 쉽게 그만둔다는 말을 못 하는 거겠거니. 그러니까 결국 이건 다 자식인 우리 잘 되라는 그런 마음이겠거니. 엄마가 계속하겠다고 한 이상 내가 할 일은 엄마를 더 열심히 돕는 것뿐이겠구나. 그래서 그렇게 했어. 빠진 음식이 있으면 엄마에게 일러주고, 자잘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적당히 사거나 빼가면서 그렇게. 그게 엄마 마음을 더 편하게 하는 일이라면 그게 낫겠다 싶었지. 


“이제 더는 못하겠다. 나도 이만치 했으면 할 만큼 했지 뭐.” 

누구보다 열심히 제사 그만 좀 지내자고 틈만 나면 말했으면서도 엄마가 그 말을 하니까 걱정이 앞서더라.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분노한 조상이 벌을 내리는 게 두려워서는 아니었고. 제사를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한 이유가 엄마의 건강문제 때문이라 그랬어. 어렸을 때 그렇게 느리게 흐리던 시간이 어느 순간 쏜살같이 지난다고 느껴지는 것처럼 과연 어른 중의 어른 이제는  노인이 된 엄마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버리는 것 같더라고. 엄마가 허리가 말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그러려니 했는데.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엄마가 잔뜩 굽은 허리로 간신히 한발 한 발을 내딛으며 내게 다가오는 걸 보는데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흐르는 시간에 과속 딱지를 붙여서라도 멈춰 서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 저절로. 어린 시절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던 풍경, 제사 음식을 차리던 날의 추억은 그렇게 과거가 되었어. 긴 세월 무수히 많은 제사 음식을 차려낸 엄마의 정성을 생각했을 때 조상들도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만하겠다는 걸 이해 못 하지는 않겠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냐고 토라지지 않겠지, 조상들도 염치가 있으면 그런 말 못 하겠지. 


그렇게 우리 집은 2022년 추석에 제사 없는 첫 번째 명절을 보냈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늙은 엄마가 젊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때보다 아침 시간은 여유가 있더라. 번거로울 거 없이  순전히 산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이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을 차리는 거. 그게 뭐라고, 삼시세끼 하는 건 똑같은데도 무척 간편하더라고. 

“제사 안 지내니까 뭔가 이상한데, 또 되게 여유 있다. 그치 엄마?”  

내 질문에 엄마는 바로 맞장구를 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무슨 그런 소리냐고 혼을 내지도 않았어. 그저 소파에 앉아서 추석 특집 아침 마당 볼 준비를 했지. 추석엔 특별 초대 손님이 늘 많이 나오는 날인데도 앞서는 제사를 지내느라 매번 놓쳤거든. 

‘조상님들도 우리 옆에 와서 앉아서 혹은 저기 앞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아빠처럼 누워서 한가하게 티비나 보다 가세요, 이것도 그런대로 괜찮지요?’라는 생각을 했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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