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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민정 Mar 06. 2024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구 Man's Search for meaning


대학 시절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1905-1997) 박사의 '의미치료 logotherapy'를 처음 접한 이후, 지금까지 가장 자주 읽은 책이다. 우리말 제목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되어 있지만,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구)>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강제수용소에서의 삶과 인간성을 분석한 이 책은 치유적,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하나하나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읽을 때마다 특히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저자가 수용소에서의 숱한 생과 사의 기로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부분이다.


수용소에서 환자 호송 계획(*가스실로 가는지, 요양소로 가는지 알 수 없다)이 세워졌을 때, 한 주치의는 그를 호송 명단에서 빼도록 해두었다고 했다. 그때를 빅터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그에게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나는 운명이 정해 놓은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나는 내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는 친구 '오토'에게 유언을 남기고, 호송자들과 함께 수용소를 떠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로 요양소로 가는 것이었고, 예전 수용소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사람들은 혹독한 기아를 겪게 된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탈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그는 동료와 함께 탈출 준비를 한다. 그는 마지막 회진을 돌며 거의 죽어가고 있는 같은 고향 출신의 환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정말로 살리고 싶었다. 
나는 탈출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내 고향 친구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도 나갈 건가요?"......
내가 친구에게 함께 탈출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를 엄습했던 그 불편했던
감정이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갑자기 운명을 내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막사 밖으로 뛰어나가 친구에게 그와 함께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마자
그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전선이 다가오고 수감자들을 다른 수용소로 옮기고 수용소를 비운 후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환자를 실어 나를 트럭이 도착하지 않자, 그는 다시 탈출을 계획한다. 하지만 그때 국제 적십자사가 도착하며 수용소는 마지막 날을 맞았다.

그러나 그날 밤 나치 대원들이 트럭을 타고 와서 수용소를 비우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우리는 나치 대원들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 친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망설이지 말고 트럭에 타라고 우리를
설득하면서, 이런 행운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내 친구와
 나는 마지막 그룹에 속해 있었다. 이 그룹에서 13명을 뽑아 끝에서 두 번째로
 오는 트럭에 태우기로 되어 있었다. 트럭이 도착하자 주치의가 열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중에 우리 둘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뽑힌 열세 사람은 트럭에 올라타고 우리 둘은 뒤에 남아야 했다. 

그로부터 여러 주가 지난 후, 우리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운명의 신이 우리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특히 생사와 관련된 문제일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우리 수용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그날 밤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었던 우리 친구들은 트럭에 실려 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사 안에 갇힌 채로 불에 타 죽었다......

운명은 인간의 힘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도 인간의 힘은 순간순간을 자신이 결정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있지 않을까.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는 날들에 올 한 해 해야 할 일들을 그리며, 겸허한 마음을 되새겨본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에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고대 중국의 고전에서 말하는 '현자'나 '완성된 자'란, 인도 철학이나 소크라테스 철학에서의 '선한 인간'과 똑같은 유형이다. 그런 인간이 지니고 있는 힘은
그가 누군가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에 있지 않고, 
반대로 죽임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2005.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2014. 삶을 견디는 기쁨. 문예춘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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