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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민정 Aug 16. 2022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언제부터였을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치누아 아체베 Chinua Achebe는 1930년 나이지리아 동부 이보족 마을인 오기디에서 태어나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아체베는 아프리카 문학을 규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논하며, 언어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문제에 관해 미국의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 James Baldwin(1924-1987)이 했던 말을 인용했다. "내가 영어와 씨름해야 했던 이유는 이 언어가 나의 경험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한 번도 이 언어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고, 다만 모방하는 법만 배웠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럴 기력만 찾을 수 있다면, 이 언어가 나의 경험이라는 짐을 지도록 언어를, 나를 시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1) 그렇게 아체베는 토착어 대신 영어로 작품을 썼고, 1958년 출판된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Things Fall Apart >에서 아프리카 토착 문명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목격하듯 그려냈다. (참고: 영국은 1914년부터 나이지리아를 식민 지배했고, 나이지리아는 1960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돌고 돌아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중심은 힘을 잃어,

그저 혼돈만이 세상에 풀어헤쳐진다.

- W.B. 예이츠 < 재림 > 


제목과 이야기의 시작에 인용된 시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Things Fall Apart.'

여기에서 '모든 것 Things'은 어떤 것들일까. 그리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세상에 풀어헤쳐지는 '혼돈'이란 어떤 상태일까. 이를 규명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말하자면 '모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지켰다면 '혼돈'은 없었을까. 역으로 '혼돈'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그 징후가 나타났을 때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면. 과연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을까. 


오콩코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부와 명예를 일궈냈다. 오콩코의 아버지는 유약했고 물려줄 것이 없었다. 적어도 오콩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어떤 것도 물려받으려 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와 닮아 보일까 하는 두려움에 오콩코는 반대로 강하고 유능하게 보이려 하고, 이는 난폭하고 고약한 행동으로 표출된다. 가깝게는 가부장적 권위를 바탕으로 아내들과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시작하여 여자, 아이들, 명예가 없는 남자들, 자신보다 덜 성공한 사람들에게까지 그가 경멸하는 대상도 확장된다. 그러다가 그는 부족에서 용납되지 않는 우발적 사고를 저질러 마을에서 추방당하게 되고 가족들과 함께 외가 친척 마을로 도피한다.


그의 삶은 하나의 큰 열정, 즉 부족의 촌장이 되는 것에 사로잡혀 왔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용수철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거의 다가와 있었다. 그때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다. 


오콩코에게 자신의 행위는 목적에 따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는 부족의 관습에 따르는 한 자신의 어떤 행위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의 관습과 규범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은 오콩코라는 개인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근본을 알 수 없는 예법을 무작정 따르고, 중대한 결정은 관습에 맡기고, 비합리적 신념을 갖가지 겉치레와 공허한 말들로 공고히 한다. 이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답을 찾을 수 없어 자신이 의식 있는 인간임을 슬퍼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리고 관습이 사회의 안정과 개인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 사이에 불분명한 경계에서 후자로 한 방울씩 무게를 더하면서, 여기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배제되고 분리된다.


이런 것이 그들의 원래 전통이고 문화였을까? 그렇지 않다. 어머니의 고향에 머물게 된 것을 부끄러워하며 무기력하게 지내는 오콩코에게 외삼촌 우첸두는 말한다.


여자들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 있는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이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을 죽이지 말게. 아바메 남자들이 바보였구먼.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있었는가?"


"사실이 아닌 얘기란 없는 것이지, 세상엔 이것이다 하는 끝은 없는 법이어서, 어떤 종족에게 좋은 것이 다른 종족에게는 싫은 것이 되지......"


그리고 사회에서 존재가 부정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기독교가 들어온다. 이들은 종교로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믿게 된다기보다는, 위로를 받고 존재할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야기에서 선교사는 단 두 명이 등장하고, 그 분량도 선교사가 들어와 결말까지는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종교가 주는 위안을 바탕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품고, 무속적인 허례허식을 과감히 깨부수는 서구 문명의 체제가 가져온 변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새로운 문화에서 각자는 힘없었던 사람들이 설 자리가 생겼고, 이들이 집단을 이루게 되자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7년이 흐르고 오콩코는 유배를 마치고 부족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오콩코의 친구 오비에리카는 말한다. 


이제 그가 우리 형제들을 손에 넣었고, 우리 부족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행동하지 않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 


사려 깊게 살아온 오비에리카는 기독교가 들어와 새로운 가치를 전파한 것이 그들을 산산이 부서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언제부터였을까. 무엇 때문이었을까.


오랫동안 부족을 지탱해주었던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소외된 사람들이 숨어서 조용히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였을까. 숭고한 의식을 통해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감을 포장하기 위해 거창한 의식을 치렀을 때였을까. 가족과 친구의 사랑과 수고에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만이 눈앞에 있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방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했을 때였을까. 심지어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이미 일을 저질러버렸을 때였을까.  


마치 부족의 영혼 자체가 앞으로 닥쳐 올 크나큰 재앙, 바로 영혼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이 재앙은 어느 때부터, 무엇 때문에 닥쳐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도리와 한계를 넘어 행동했을 때 더 이상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고, 친구가 아니었고, 형제가 아니었으며, 신조차도 이용했다. 그렇게 매 순간 모든 것이 부서졌다.


이 이야기는 오콩코라는 영웅과 그가 속한 토속 문화에 관한 서사로 시작하여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의 영웅성을 지키기 위해 변화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고 몰락해가는 한 인간을 목격하게 된다. 어떤 것도 물려받지 않고 스스로 성공하는 것 혹은 성공을 증명하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었기에 목표를 이룰 수만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관습을 따랐지만 사회는 그에게도 가혹했다. 그리고 오콩코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경멸하고 소외시켰던 똑같은 방식으로 무너져 내린다. 과거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도움이 되든, 아니든 말이다. 오콩코가 증오했던 유약함의 결말과 오콩코의 폭력성의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다른 상상도 해 본다. 오콩코가 한 행동들이 모두 바로 잡혔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아가 토착민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마을이 건강한 공동체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그래도 서구 문명의 유입과 사회의 변화를 피할 수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온순하고 순응적인 오콩코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정신적 중심으로서 종교를, 이와 함께 새로운 문화를 앞세워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들어온 세력을 막을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흰 종이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번져 나가듯 사상이 변해버린 사람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릴 방법도 없다. 지금까지 믿어온 것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지러울 뿐이다. 그렇기에 오콩코가 토착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한 다른 결말을 맞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모든 것은 아름다웠고 인간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고유하고 유일했다. 그리고 이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왜곡하고 남용하여 바래져 가다가, 그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게 되었다. 결국 부족의 영웅이었던 오콩코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부족에 속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치누아 아체베 저. 조규형 옮김. 2008.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Things Fall Apart. 민음사.

1) 토니 모리슨 저. 이다희 옮김. 2021. 보이지 않는 잉크 The Source of Self-Regard. 바다출판사.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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