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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민정 Jun 25. 2022

토니 모리슨 < 빌러비드 Beloved >

당신은 늘 사랑받고 있었다 

육천만 명 그리고 그 이상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사랑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사랑하는 자라 부르리라.

- 로마서 9:25, 빌러비드 Beloved의 도입부 


여러 번을 읽어도 책이라기보다는 펄떡이는 생물로 느껴지는 이 이야기에 대해 정돈된 생각을 쓰기란 쉽지 않다. 육천만 명 그리고 그 이상. 대서양 노예제도로 희생당한 아프리카인들의 목숨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그저 숫자가 아닌, 그 시간에 존재했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그려볼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에 늘 함께 있었던 그림자이자 주인공인 빌러비드 Beloved에 대해 생각해본다.


잊고 싶은 기억. 그러나 차마 묻어버리지 못하고 떠도는 기억. 떨칠 수 없는 궁금증이 일어나도 답을 찾을 길이 없는 기억. 그렇게 지난 기억은 세서 Sethe의 일상에 여전히 불쑥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세서의 과거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 폴 디 Paul D가 세서의 집에 불쑥 찾아오며 과거의 기억은 실체로 나타나고, 세서는 이를 마주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오랜만에 재회한 세서와 폴 디는, 세서의 딸인 덴버 Denver가 태어나기 전, 그들이 노예로 살았던 과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본다. 미래를, 살만한 인생을 꿈꾸며. 그 새로운 삶과 관련 없다 생각하는 기억은 여전히 각자 묻어둔 채로.


그때, 한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세서의 딸과 같은 이름인, 빌러비드라고 한다.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서는 죽은 딸의 영혼이 늘 집에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빌러비드는 왜 실체로 나타났을까? 그것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제대로 인생을 시작해보려 한 순간에. 


빌러비드가 정말 세서의 죽은 딸인지 세서와 덴버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나타난 딸, 언니라 여기며 반기고 사랑하며, 켜켜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빌러비드에게 낱낱이 들려준다. 그러나 폴 디는 드디어 찾게 된 평안한 일상에 불쑥 나타나 현재를 들쑤시는 빌러비드가 어쩐지 불편하고 못마땅하다. 그럼에도 결국 세서와 폴 디는 덮어두었던 과거의 의문스러운 사건, 세서의 남편 핼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비로소 나누게 된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생각했던 핼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필사적으로 캐내던 세서는 마침내 지금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폴 디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 사람도 나한테 말하고 싶구나, 세서는 생각했다. 그때 심정이 어땠느냐고, 쇠 재갈에 짓눌린 혓바닥이 얼마나 아팠느냐고, 얼마나 간절히 침을 뱉고 싶었으면 엉엉 울기까지 했느냐고 내가 물어봐주길 바라는구나."


그리고 그때에서야 폴 디는 그 당시 자신이 어떤 존재로 느껴졌는지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세서와 덴버, 빌러비드의 관계가 깊어지고 그들이 과거의 기억을 파고들수록, 폴 디는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 점점 힘겹게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 세서와 폴 디는 세서의 과거에서 결정적인 사건인 빌러비드의 죽음에 대해 말하게 된다. 사실 세서는 빌러비드의 죽음에 대해 속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당연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세서에게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자신의 곁에 있을 수 없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기를, 아픔 없이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세서의 사랑이고,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세서의 자유이다.      


그러나 진실에 대해 듣고 나서도 폴 디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도리어 더욱 복잡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한 번도 자유를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노예에서 해방된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던 폴 디는 자신이 꿈꿨던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조지아 주 앨프리드 수용소에서는 귀에 들려오는 비둘기 소리를 즐길 권리도 허가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안개든 비둘기든 햇빛이든 구릿빛 흙이든 달이든 모두 총을 든 사람들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들 중 왜소한 놈은, 덩치 큰 놈도 마찬가지였지만, 폴 디가 마음만 먹으면 나뭇가지처럼 똑 분지를 수도 있었다. 자신의 남자다움이 총에 있다고 알고, 총이 없으면 여우에게도 조롱당할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내들. 암여우도 비웃을 이런 '사내들'이, 그냥 내버려 두면, 비둘기 소리를 듣거나 달빛을 사랑하는 일조차 못하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작은 것만 사랑했다. 하늘에서 가장 조그만 별을 골라 자기 별로 삼고, 잠들기 전에 구덩이 위쪽 틈새로 그 사랑하는 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채 자리에 누웠다. 사슬을 채우는 동안 나무 사이로 슬쩍 훔쳐보기도 했다. 풀잎이나 도롱뇽, 거미, 딱따구리, 딱정벌레, 개미 왕국. 그보다 큰 건 그게 뭐든 꿈도 꾸지 못했다. 여자, 아이, 형제 - 조지아 주 앨프리드 수용소에서 그렇게 큰 사랑을 했다가는 그들이 배를 갈라 활짝 뒤집어놓았으리라. 그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는-욕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곳에 도달하는 것, 그래, 그게 바로 자유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폴 디는 결국 124번지를 떠난다. 무시하고 끊으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지금에야 알게 된 세서의 과거인지,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과거인지 확실히 답을 찾지 못하며. 


폴 디가 떠나고 세서와 덴버, 그리고 빌러비드 사이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다시 찾아온 빌러비드를 통하여, 세서와 덴버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고통스러운 기억까지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몸은 현재에 머물러도 여전히 정신에 떠도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되새기게 된다. 마침내 덴버는 이야기로만 들었던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빠의 삶까지도 그릴 수 있게 되며, 할머니가 자신에게 궁극적으로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노예는 쾌락을 느껴서는 안 된다. 노예의 몸은 쾌락을 느끼려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식을 많이 낳아 주인이 누구든 그를 기쁘게 해 주려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도 쾌락을 느껴서는 안 된다. 할머니는 나한테 그런 소리는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말라고 하셨어요. 언제나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내 몸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죠. 


빌러비드는 세서라는 사람 자체를 모조리 알고 싶어 하고, 세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과거를 보상하려는 그들의 사랑은 격렬해지고 집요해진다. 사랑을 넘어 집착이 될 때까지. 고립되어 그들만의 사랑에 갇힐수록 빌러비드는 더욱 만족할 줄을 모르고 그 욕심은 비대해진다. 비대해지다 못해 현재를 삼켜버린 빌러비드와 그에 사로잡힌 세서를 집에 두고, 덴버는 드디어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다. 덴버가 다시 맞이한 세상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세상은 왠지 모를 환영과 안전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덴버는 과거에 자신이 알았던 존스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간다.


"오, 아가. 오, 아가." 존스가 탄식했다.

덴버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땐 몰랐지만, 그토록 친절하고 다정하게 '아가'라고 불러준 그 말이, 세상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그녀에게 열어주었다. 그 달콤하고도 가시 많은 곳에 이르기 위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손수 이름을 쓴 무수한 쪽지들로 이루어진 오솔길을 따라갔다. 


그렇게 덴버는 현재로 한걸음을 내딛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기억은 지울 수 없다. 피하고 싶고 고통스러운 기억조차도 자신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 기억의 주인이 된다면, 그 기억을 내 안으로 묻을 수도 떠나보낼 수도 있게 된다. 행복한 기억이든 고통스러운 기억이든 상관없다. 기억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닌 진실을 아는 것이며,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그때에서야 기억은 과거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빌러비드는 죽은 사람이자, 빌러비드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현재의 삶 속에 여전히 아우성치며 살아 있는 영혼이다. 자리를 찾지 못한 기억은 빌러비드처럼 언제든 함께 있다가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은 마주칠 수밖에 없게 된다. 빌러비드는 삶을 채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현재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누리는 자유의 밑바탕이다. 


실체로 나타난 빌러비드는 말한다. 나를 생각하면 아프고 괴롭다는 것을 안다고. 하지만 나 역시 당신의 일부이기에 나를 알고, 느끼고, 이해하고, 사랑해 달라고. 나는 당신을 주저앉히기 위해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차마 기억하기에도 고통스러운 과거도 당신은 모두 지나왔고 그래서 지금 살아있다고. 고난의 길을 지나 온 현재의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러니 나를 똑똑히 기억하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복구되자 빌러비드는 비로소 사라진다. 아니, 사람들은 빌러비드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서야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다 못해 자신이 인간임을 잊게 하기까지 했던 무언가의 실체를 밝힐 수 있게 된다.


피부가 희기만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하기 위해 흑인의 인격을 모두 빼앗을 수 있었다. 일을 시키거나 죽이거나 사지를 절단할 뿐 아니라, 더럽혔다. 완전히 더럽혀서 더는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했다. 완전히 더럽혀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생각해낼 수도 없게 했다. 


142번지를 떠났어도 폴 디는 여전히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고 동네에서 맴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잠가둔 과거의 기억을 열고, 그가 원했던 인생, 사랑, 그리고 자유가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왜 이곳이었는지, 그리고 왜 이곳을 떠날 수 없는지를. 노예로 살았던 과거에도 언제나 늘 자신을 인간으로 대하고 느끼게 해 줬던 살아남은 단 한 사람, 세서에게로 폴 디는 다시 찾아간다. 이제는 정말로 미래를, 인생을 함께 하기 위해.    


이 이야기는 흑인이 짐승 취급당하며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살해당하는 것이 당연했던 때, 사랑하는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은 세서의 말로 끝난다. 온갖 폭력으로 육체는 고통받았고 그 상처는 몸과 기억에서 지울 수 없지만, 세서의 영혼 만은 살해하지 못했다. 세서에게 폴 디는 말한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그 당신이."


"나? 내가?" 


토니 모리슨 저. 최인자 옮김. 2014. 빌러비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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