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son
Don't forget.
I was born for the reason.
I survived for the reason.
I am just what I am.
For I am the reason.
No other reason for what I am.
잊지 마라.
나는 이유가 있어서 태어났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살아남았다.
나는 그저 나이다.
내가 존재함이 그 이유이기에.
내가 존재함에 다른 이유는 없다.
폭력과 혐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여러 글들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살아가다 소멸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과정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이는 막연하거나 거창하거나 허황된 몽상이 아니다. 어린아이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순수하고도 완전한 삶의 목적을 분명히 말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동생이 정말 귀여워요.” “이 사탕 두었다가 친구한테 주고 싶어요.” “공룡을 좋아해서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의사가 되어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고 싶어요.”
우리에게는 누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삶에 충실할 권리가 있다. 물론 나비가 누에고치에서 벗어 나오려 애쓰듯 성장에 필연적인 성장통은 있다. 그러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와 같은 말에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겁박에 불과하며, 폭력을 정당화하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잔인한 명제이다.
이런 비인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살아남아도 다시 한번 냉혹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의학박사 베셀 반 데어 콜크 Bessel van der Kolk (1943~)가 지은 <몸은 기억한다>에서는 이것이 ‘개인’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꼬집고 있다.
사람들은 군인들이 전쟁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사실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폭행을 당하고 학대를 받는지, 얼마나 많은 커플이 폭력과 마주하는지(실상은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무정한 세상에서 모든 가정이 안전하다고, 우리가 사는 국가는 의식이 깨어 있고 문명화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잔인한 일들은 저 멀리 다르푸르나 콩고 같은 곳에서만 벌어진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잔인한 일들은 저 멀리 다르푸르나 콩고 같은 곳에서만 벌어진다고 믿으려 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일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일을 증언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한다. 그러니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관한 기억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약물이며 알코올, 자해로 그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을 차단하려 하는 건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 않을까? 1)
트라우마로 인한 결말을 부인하면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 구조에도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전쟁으로 발생한 피해를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나약함’이라는 편협한 판단을 내리려는 태도는, 1930년대 전 세계적인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부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르사유 조약에 명시된 어마어마한 전쟁 배상금은 이미 망신을 톡톡히 당한 독일에 더 큰 굴욕감을 안겨주었다. 그러자 독일 사회에서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자국의 참전 군인들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며 가혹하게 대했다. 힘없는 상대에게 잇따라 굴욕을 안겨주는 이 같은 조치들은 나치 체제가 인권을 가차 없이 저하시키게 한 발판이 되었다. 즉 강한 자가 열등한 자를 격파하는 건 당연하다는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여, 전쟁을 실행하는 근거가 되고 만 것이다. 2)
그림책 작가 유리 슐레비츠 (1935~)는 75세가 되어서야 2020년에 지은 <우연 Chance>에서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네 살 때부터 조국 폴란드를 떠나 유럽을 떠돌다 귀향했던 과정을 그렸다. 희망을 품고 그 험난했던 길을 지나 다시 고국에 도착했을 때 그가 마주했던 현실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전쟁 후 폴란드에서는 유대인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겼고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는 생존자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3)
폭력은 개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에디 제이쿠 Eddie Jaku (1920-2021)는 100세에 남긴 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The Happiest Man on Earth>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일을 기억하며, 개인으로서 느꼈던 현실과의 괴리를 말한다.
내 몸은 오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뿐만 아니라 수용소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사람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사람이 얼마나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너무나도 무거운 고통 속에서 살았다. 4)
이기심이나 잔혹함에 불과한 폭력을 이해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를 나는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폭력에서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하는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게 된다.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 Primo Levi는 이탈리아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 스물네 살에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됐고 3년여 후 귀향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을 그린 <이것이 인간인가 Se questo e un uomo >에서 그는 폭력이 행해진 구조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과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보여주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에도 사회나 구조라는 이름으로 묻혔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여전히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잔인한 일들을 세세히 알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수백만 명을 조직적으로 기계적으로 학살한 것, 가스실, 화장터, 비열한 시신 약탈, 이 모든 것이 밖으로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사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런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책을 강구했는데, 공식석상에서 신중하고도 냉소적인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학살’이 아니라 ‘최종 해결책’이라 표현했고 ‘강제 이송’이 아니라 ‘이동’, ‘가스실 살해’가 아니라 ‘특별처리’ 등으로 썼다. 이런 끔찍한 사실에 대한 소문이 퍼질 경우, 전 국가가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맹목적인 신뢰와 군대의 사기가 흔들릴 수 있다고 히틀러가 두려워한 것은 근거가 없지 않았다. 연합군 측에 알려져 선전의 주제로 이용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연합군 라디오에서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을 여러 번 묘사했다. 하지만 너무나 잔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그걸 믿지 않았다. 5)
독일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수십 만 명 중 첫 희생자들이 반 나치스 정당의 정치가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6)
그는 말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수용소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아우슈비츠의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글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글을 써야 할 동기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7)
그는 1947년 이 책을 출판한 이후 1976년에 청소년판 <이것이 인간인가>를 위해 “독자들에게 답한다”라는 부록을 썼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히 느꼈기 때문에”라고 했지만 그가 생에 걸쳐 전하는 메시지는 개인적인 필요를 뛰어넘는다.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이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진심으로 비판하고, 그들과 다른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나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럴 때만 (나는 기독교도가 아니지만) 적을 용서하라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려는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존재할 수 있게 도와줬던 사람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에디 제이쿠는 구조되었을 당시 몸무게가 28kg에 불과했다. 그때 그가 머물렀던 병원의 엠마라는 간호사에게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알려 달라고 간청했을 때 엠마가 그에게 속삭였다.
“죽을 확률이 65퍼센트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다행히 살 확률이 35%나 된대요.”
에디 제이쿠는 그때 생각을 이렇게 전한다.
그 순간 나는 하느님에게 약속했다. 만일 내가 산다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독일 땅에서 벗어나겠다고, 그 모든 만행을 저지르고 내 모든 것을 강탈해간 독일 땅으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또한 나치가 이 세상에 남긴 상흔을 바로잡는 데 나의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그리고 하루하루를 최대한 충만하게 살겠다고.
우리가 힘을 낸다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이 기적을 행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잘 안다. 내일은 온다. 하지만 마음이 죽는다면, 내일이 와도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희망에 기회를 한번 줘보는 게 어떨까? 돈 한 푼 들지 않으니 말이다!
친구여, 나는 이렇게 해서 살아났다. 9)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의미 치료 Logotherapy를 창시한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 Victor E. Frankl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말한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10)
폭력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 삶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면 똑같이 누구에게도 폭력을 가할 권리가 없다. 폭력은 개인의 이름과 책임을 회피하는 어떤 상태와 형태에서 행해지는 비겁함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는 이유가 있다. 온갖 혐오와 폭력에도 어떤 사람들은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삶은 이유 없는 고통을 가하는 자들이 아닌, 그 고통을 함께 느끼고 어떻게든 다른 존재가 그 고통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지속된다. 그리고 그 삶은 늘 존재한다. 나는 “삶은 고통보다 길다.”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고통에도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그 증거이다.
참고문헌
몸은 기억한다 The Body Keeps the Score
베셀 반 데어 코크 Bessel van der Kolk 지음. 제효영 옮김. 김효영 감수. 2016. 을유문화사
1) p.38
2) P. 298-299
우연 Chance
유리 슐레비츠 Uri Shulevitz 지음. 서남희 옮김. 2022. 시공사
3) p.253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The Happiest Man On Earth
에디 제이쿠 Eddie Jaku 지음. 홍현숙 옮김. 2021. 동양북스
4) p.210-p.211
9) p. 185-186
이것이 인간인가 Se questo e un uomo
프리모 레비 Primo Levi 지음. 이현경 옮김. 2007. 돌배개
5) p. 273
6) p.281
7) p. 305
8) p. 270
9) p. 185-186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the Meaning
빅터 프랭클 Victor E. Frankl 지음. 이시형 옮김. 2005. 청아출판사
10)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