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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민정 Aug 03. 2016

1.2. 영어교육, 일찍 시작할수록 좋을까?

영어 조기교육에 관한 허와 실

 우리말과 영어를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로 구사하는 것(bilingual)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영어를 써야 할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고, 이 때문에 영어를 우리말처럼 하려면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고 해서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연령은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반면에 외국어를 늦게,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 배웠는데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외국어 학습을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말, 어디까지 사실일까요? 그리고 외국어 학습의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이 유리하다는 속설에는 크게 3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언어를 더 쉽게 배운다?


이는 어린 아이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를 생애 초기에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구사하게 되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말을 하지 못하던 아기들은 18개월에서 60개월 사이에 단어의 수가 100배 증가(McCarty, 1954)하며 점점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2~5세까지 어휘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언어를 학습하는 (어른보다 유리한)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언어 학습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Critical Period Hypothesis)


결정적 시기 가설은 언어를 수월하게 습득할 수 있는 특정한 시기가 있고, 이를 넘기면 언어를 습득하기 힘들다는 것인데요, 특히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언어 학습의 결정적 시기라는 개념은 모국어 습득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는데, 이것이 외국어 습득에도 적용되는 것인가 하는 논의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제2외국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를 사춘기쯤으로 보고 있는데요, 피아제(Piaget & Inhelder 1969)의 인지발달 단계에 따르면 사춘기 시기인 11살부터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지고, 이를 활용하여 언어의 원리와 규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때를 언어발달에 결정적인 시기라고 하는 것이지요.


어릴수록 뇌가 말랑말랑해서 언어를 더 쉽게 배운다?


외국어 학습을 어릴 때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또 다른 근거로 뇌의 기능 분화를 드는데, 뇌의 기능 분화는 2살에 시작하여 사춘기쯤 끝납니다(Lenneberg, 1967). 따라서 사춘기 이전에는 뇌의 유연성(plasticity)으로 모국어뿐만 아니라 외국어의 습득도 쉽게 이루어지지만, 사춘기를 넘어가서 뇌의 기능 분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외국어를 쉽게 습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이 유리한 것일까요? 


먼저, 어린아이들의 언어 학습 능력에 대해서는 2~5세 사이 이루어지는 언어 폭발은 양적으로 보면 엄청난 성장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는 의사소통에 필요한 기본 수준의 어휘를 습득하는 것이며, 문장 구사 수준 또한 단순합니다. 또한 유아기에는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지만, 나이가 들수록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됩니다. 따라서 언어습득 능력은 어린아이들만의 특수한 학습능력이라기보다는 생후 5년 간 언어에 집중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인이라도 유아기 때처럼 언어에 집중적으로 노출된다면 언어를 쉽게 습득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런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에 관해 Walsh와 Diller(1981)는 나이에 따라 최적으로 습득하는 영역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발음과 억양은 아동기가 지나가면 습득하기 힘들지만, 다른 언어기능, 예를 들어 어휘 의미 파악과 어휘 간의 관계 같은 영역은 늦게 성숙되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아동들보다 같은 시간에 몇 배로 더 많은 양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Ausubel은 언어 습득에는 아동과 성인의 차이는 없고, 유의미한 학습(meaningful learning)을 통해서 언어가 습득된다고 했습니다. 아동이 의미 없는 반복과 모방(rote learning)을 통해서 언어를 학습하는 것도 아니고, 성인도 이미 암기 기술이 발달해있지만, 이를 단기 기억에만 이용할 뿐, 기계적 학습을 통해 학습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동과 성인 모두 자신에게 유의미한 학습을 통해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어 학습의 결정적 시기에 관해 ‘어릴수록 좋다’는 것은 미디어에 의해 부추겨진 근거 없는 믿음(myth)이며(Scovel, 1999), 오히려 너무 이른 과도한 언어교육에 대해 경계하고 있습니다.


"원어민 수준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는 나이가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는 완전히 제2외국어를 쓰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하며, 외국어에 너무 일찍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모국어에 결손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교육 환경에서는 외국어는 조금 더 늦게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수업을 받는 경우, 10살, 11살, 12살 정도에 늦게 시작한 아이들이 더 빨리 따라잡는다. 또한 아주 어린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어 프로그램은 큰 효과가 없다. (Mark Patkowski,1980)"


이와 같이, 외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습득한다는 것은 이민을 가는 것과 같이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국어 습득과 외국어 습득을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결정적 시기의 유일한 강점, 발음(Pronunciation)과 억양(Accent)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영어 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원어민의 발음과 억양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말하길 원해서 일 것입니다. 외국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란 큰 의미가 없긴 하지만, 억양과 발음에 있어서 만큼은 결정적 시기인 12세 이후 제2외국어를 습득할 경우 원어민과 같은 악센트를 갖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Werker(1986)는 아동들이 자기 나라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이 줄어든다고 제안했습니다. 즉, 모국어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아기들은 모국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소리들을 변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그 이후 8~10년 동안 계속되는데 이때가 되면 지각 능력이 성인들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고, 따라서 12세 이후에는 외국어 소리의 변별력이 없어지고 발음하기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어린아이들에게 영어 테이프를 들려주거나 외국에 데리고 나가면 어떻게 발음하라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비슷하게 곧잘 따라 하죠. 이렇게 소리들의 미세한 차이들을 구별하는 능력 때문에 어린 아동들이 다른 언어의 악센트를 쉽게 배우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아기 때부터 영어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노래나 이야기들을 들려줘서 익숙해지도록 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영어를 이해하고 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국어를 잘해야 영어를 잘한다 - 이중언어 구사(Bilingualism)에 관하여


다행인 점은, 요즘 (제 주변의) 많은 부모님들이 경험적으로 모국어를 잘해야 영어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의 전체적인 발달의 개인차를 고려하여 영어 교육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국어를 잘해야 영어를 잘한다는 것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여 2개의 언어를 습득합니다. (Brown, 2000)


이중언어 구사(Bilingualism)는 머릿속에 두 개의 별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Cook 1995), 끊임없이 두 언어 사이를 오가며 단어, 구절을 끼워 넣는 코드 변환(code-switching)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모국어의 언어체계가 잘 잡혀있으면, 두 언어를 오가며 비슷한 방식을 적용하여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지요.


또한 이중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보다 약간 더 느리게 습득하지만,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은 개념 형성을 좀 더 쉽게 합니다(Brown. 2000). 따라서 모국어 습득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따라 느긋하게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면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덧붙여, 이중언어 구사에 관하여 정말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Sorenson(1967)은 남미 아마존 지역의 투카노(Tukano) 족 성인들의 외국어 습득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이 공동체에서는 각 부족별로 20-30가지의 언어를 사용했는데, 결혼은 반드시 다른 부족과 했습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어느 순간 자주 접한 2-3개 언어를 갑자기 완벽하게 잘 쓰게 되었고, 성인이 되면 심지어 더 많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마음대로 모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계속해서 얻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인류학자인 Jane Hill(1970)은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는 미국 중산층 집단에서 악센트 습득은 선천적이라(innate) 성인이 악센트를 습득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언어와 발음에 있어서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결정적 시기가 아니면 습득하기 힘들다는 악센트마저도 여러 언어에 계속 노출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촘스키(Chomsky)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의 특성이 되는 원리와 시스템이 있고, 이를 ‘보편 문법(Universal Grammar)’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적고, 문법이 복잡해도 이런 언어능력에 대한 보편 능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인들이 아동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문화에서나 성인들이 아동들과 대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문화에서나 어린 아동들에게 전혀 말을 못 하게 하는 문화에서나 아동들은 언어를 배웁니다(Snow, 1986). 따라서 한 언어에 대한 문법 지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이를 다른 언어에도 널리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뇌의 기능 분화로 인해 언어 학습이 더뎌진다는 점은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 뇌의 여러 부분이 언어 구사에 기여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언어와 악센트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여러 뇌 부분이 언어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통합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성장에는 발달 단계가 있고, 이 단계를 거쳐야 발달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동이 학습하기에 충분히 성숙하여 준비가 되었을 때(readiness) 교육하면 짧은 시간에 더 빠르고 쉽게 학습할 수 있습니다. 언어 학습 및 외국어 학습은 이렇게 인지발달단계를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 참고문헌 >

Robert S. Siegler. 1995. 아동 사고의 발달(Children’s Thinking). 미리내. p. 171, p.188~p.194

H. Douglas Brown. 2000.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Longman. p.53~p.69

Patsy M. Lightbown, Nina Spada. 2006. How Languages are Learned?. Oxford University Press. p.74

전태련. 2008. 함께하는 교육학 4. 교육심리. 도서출판 마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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