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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민정 Jul 11. 2018

영어 선행학습 논란에 대하여

초등 영어 방과 후 학교 폐지 논란에 대한 교육적 검증 

지난 3월, 「선행학습 금지법」의 시행에 따라 초등학교 1·2학년 방과 후 영어 수업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영어를 정규 교과로 가르치기 때문에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수업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선행학습에 해당하므로 금지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쟁점을 교육학 및 언어발달 단계에 근거하여 검증해보고자 합니다. 


1. 선행학습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선행학습’이 ‘앞으로 배울 내용을 미리 배워놓는다’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는 달리, 교육과 수업에서의 ‘선행학습’ “어떤 학습과제를 성공적으로 학습하기 위해서 그보다 먼저 학습해야 할 전 단계의 학습과제를 습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는 곱하기를 학습하기 전에 더하기와 빼기를 습득해야 합니다. 영어에서는 읽기를 하려면, 모양들을 글자로 인식하고, 이를 소리와 연관시키고, 이러한 글자 모임을 낱말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지식을 미리 혹은 많이 외워놓거나 오랫동안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고차원의 학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 선행학습입니다. 실제로 영어학습에서 학생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들은 ‘단어를 많이 몰라서’ ‘발음이 안 좋아서’와 같은 단순한 문제들이 아닙니다. 이는 ‘문자를 음성과 연결시키지 못해서’ ‘개별 철자의 조합을 단어로 인식하지 못해서’ ‘읽기 과정에서 단어의 의미를 빠르게 인출할 수 없어서’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로, 언어 습득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따라서 영어수업에서는, 특히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학습자의 경우,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영어 습득 단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진단하고 핵심 능력을 키워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준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2. 영어교육의 적절한 시기 


현재 교육과정에서 3학년부터 영어를 정규 교과로 가르치는 것은 외국어 학습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수업을 받는 경우, 10살, 11살, 12살 정도에 늦게 시작한 아이들이 더 빨리 따라잡으며, 또한 아주 어린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어 프로그램은 큰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Mark Patkowski,1980). 외국어에 너무 일찍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모국어에 결손을 가져올 수 있으며, 모국어의 언어 체계가 잘 잡혀 있으면 외국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3. 언어교육은 지식 습득 교육이 아니다 


문제는 이번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 방과 후 금지 조치 및 향후 유치원 누리과정에서 영어 수업을 금지하는 이유가 “한글·영어 등 지식 습득을 위한 교육이 아닌 놀이·돌봄 중심으로 방과 후 과정을 개선한다”는 데 있습니다. 앞서 선행학습의 개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언어 학습은 지식을 축적하는 양적 변화가 아닌, 언어 습득 단계에 따른 질적 변화가 핵심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동은 3세부터 글자 유형을 구별하기 시작하여 4세쯤이 되면 주변에 있는 인쇄 글자를 읽기 시작하고, 5세가 되면 몇 가지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음소에 관한 인식(의미의 변화가 있는 글자의 소리를 구분하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7세 이전까지 글자는 알고 있지만 말소리와 완전히 연관시키지 못하다가, 친숙하고 발음하기 쉬운 어휘부터 배워나가며 글자와 말소리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단어를 파악하기 위해 글자들을 소리로 바꾸고, 소리를 섞어서 단어를 만들 수 있게 되죠. 글자를 알고 나서 중요한 것은 소리와 표준 철자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아동들은 단어를 파악하기 위해 글자들을 소리로 바꾸어 단어를 인식하다가 이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유창하게 눈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면, 7세를 전후한 시기는 아동들이 듣고 말하기에서 나아가 글자 해독과 읽기를 시작하며 서로 다른 글자들을 변별하고, 단어를 그 소리에 따라 분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기로, 문자와 소리를 일치시킬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읽기와 독해를 준비해야 합니다. 더욱이 발음과 억양(accent)은 많이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동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고, 모국어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소리를 변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시작하게 되면 12세 이후부터는 습득이 어렵기 때문에 듣기의 경우, 유아기때부터 자연스럽게 많이 노출시켜주는 것이 좋습니다.


 언어교육을 ‘지식 습득을 위한 교육’으로 분리하는 것은 언어발달이 성숙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간과한 것입니다. 조기에 이루어지는 과도한 언어교육은 문제이지만, 발달 단계에 알맞게 다양한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언어교육은 언어발달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며, 오히려 적기에 핵심기능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다음 발달단계에서 결손이 우려됩니다. 영어를 정규 교과로 처음 배우는 시기가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것이 그 이전에 영어에 대한 어떤 노출도 없이 그 시기에 시작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 학습에 필요한 모국어와 개념 발달이 충분히 성숙하는 시기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며,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활동까지도 금지할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언어발달 없이는 사고력 발달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식교육’과 ‘놀이교육’을 구분 지어 생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놀이 및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고력을 확장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모델과 교수법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 참고문헌 > 

함께하는 교육학 5. 교수-학습. 전태련 편저. 2007. 도서출판 마이쌤 p.42 

Patsy M. Lightbown, Nina Spada. 2006. How Languages are Learned?. Oxford University Press. p.74 

H. Douglas Brown. 2000.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Longman. p.53~p.69 

Robert S. Siegler. 1995. 아동 사고의 발달(Children’s Thinking). 미리내.  

이숙재, 이봉선 지음. 영유아 언어교육 2009. 창지사 p.46~50 

김혜리. 2015. 아동 문학과 영어교육. 한국문화사.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학부모 반발하는 두 가지 이유, 2018/01/10, 한겨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9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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