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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11. 2023

글쓰기 모임의 기쁨과 슬픔

 내가 프리랜서로 살면서 기대한 건 단순했다. 큰돈은 만지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 이왕이면 글 근처에서 살고 싶다. 어디서 말하기 좋은 아름다운 포부였다. 심히 불안했지만 이런 포부 덕에 어디 가서도 눈에 힘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실전에 들어서니 많은 게 달라졌다. 죽을 만큼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으니, 덜 하기 싫은 일 정도는 감내해야 했다. 


 난 글쓰기 클래스를 여는데 실패했다. 글쓰기에 관련된 일이라서 해보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영감과 의욕을 심어줄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다. 

'여러분, 첫 문단은 날리세요. 바로 본진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형용사와 부사가 깔려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우선 매일 쓰세요. 매일 쓰면 모든 게 나아집니다.' 

 나도 이론적으로는 글쓰기 비법을 잘 알았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무용했다. 정작 나조차 비법대로 쓰지 못했다. 난 문장마다 사족을 붙여서 편집자를 화를 돋우는 작가였다. 난 지옥행 열차임을 알면서도 문장에 형용사와 부사에 올라타서 독자와 함께 요단강을 건넜다. '매일 써야 작가라고?' 난 마감일까지 놀다가 하루만 늦춰달라는 호소 메일을 기가 막히게 쓰곤 했다. '제가 지금 기침이 너무 심해요. 아마도 코로나가 재발한 것 같아요. 하루만 미뤄주시며 안될까요.' 누가 누구한테 글 잘 쓰는 비법을 알려준단 말인가. 어떤 저명한 작가는 냉수 한 잔 마시면 창작의 신이 말을 건다고 하던데. 난 여태 글을 쓰면서 단 한 번도 그분을 뵙지 못했다. 책 한 자 읽지 않던 할아버지에게 제사 때 영감을 내려달라고 빌었지만 천국에도 작가 친구는 없으신 모양이었다. 


 글쓰기 강좌를 열겠다는 계획은 구체성이 없는 헛소동이 되었다. 그건 마치 카페를 개업하면서 커피머신도 없는 텅 빈 점포에 무슨 음악을 틀까 따지는 꼴이었다. 화장실 청소와 건물 임대료는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간판을 달 순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 글쓰기 모임이었다. 클래스는 부담스러우니 함께 글을 쓰며 으쌰으쌰 하는 직장인 커뮤니티를 연 것이다. 내 글쓰기 모임 '씀 에세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1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고, 2주에 한 번 만나서 서로의 글에 관해 대화하는 모임이었다. 클래스라는 말을 빼니 모든 게 나아졌다. 강사라는 감투가 없으니 이런저런 말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저도 글은 잘 못 쓰고요. 대신 기가 막히게 글이 잘 써지는 기계식 키보드는 추천해 드릴 수 있어요.' 클래스만큼 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편해지니 돈을 벌 목적 따위는 금세 사라졌다.  


 내가 모임을 열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재미'였다. 글 잘 쓰는 비법 따위는 없고, 우선 쓰다 보면 재밌어질 거라고 얘기했다. 블로그나 브런치 계정을 만들어서 인정투쟁의 장에 나서라고 권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를 택하라고 했다. 책을 내고 싶다면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로 글을 써보려고 추천했다. 브런치 작가를 준비하는 분에게는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3회 수상자로서 그 어렵다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 단 번에 붙는 비법도 전수했다. '딱 책이 출간할 각이 나와야 해요. 문장이 기가 막혀도 책으로 못 만들면 말짱 꽝이에요.' 이미 원고량이 충분히 쌓인 분에게는 책으로 낼만한 기획을 제안했다. 이건 다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는 내 나름의 노하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재밌게 쓰기 위해서는 있었던 일에 살도 붙여보라고 했다. 없는 얘기도 꾸며내고, 상황을 더 극적으로 연출하라고 했다.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도 있었다. 난 권위 없이 내 생각을 전달했다. '에세이에 거짓말을 넣어요?' '에세이도 엄연한 창작이에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연출하잖아요. 시나리오 각색하는 것처럼 삶을 영화화시키세요. 필력으로 삶을 더 재밌게 쓰세요.' 나는 글 잘 쓰는 방법보다는 글쓰기에 쓸모 있는 조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글을 취미로 여기는 분들이 늘어났다. 무척 뿌듯한 일이었지만, 대신 이야기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번번이 막히던 원고에도 활로가 뚫렸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다정한 말을 보탤 때마다 난 잘 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진짜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었다. 마감일과 퇴고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이런저런 사유를 쏟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누군가가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을 때, 글쓰기 모임을 하라고 권한다. '제가 연 모임 좋아요. 놀러 오세요. 글 열심히 쓰시는 분들과 으쌰으쌰 하면 꾸준히 쓸 수 있어요. 대신 어떻게 해야 잘 쓰는지만 묻지 마세요.'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면서 한 신혼부부와 친해졌다. 준석네 부부는 내 모임을 꾸준히 참석했다. 두 사람은 꾸준히 글을 써 온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준석 씨는 지역 신문 기자라서 글과 익숙했고, 미선 씨는 문창과를 졸업해서 등단을 꿈꾸다가 취업한 케이스였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던 그들은 다시 글을 써보겠다며 씀 에세이를 찾아왔다. 


 결혼 생활 내내 사이가 별로였다던 부부는 모임에만 나오면 다퉜다. 서로 질세라 결혼 전에 당했던 사기행각을 글로 고발하기 바빴다. 마치 글로 쓰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투였다. 준석 씨는 결혼 전에 제2금융권까지 동원해서 산 아파트가 다 자기 집이라고 속였단다. 비트코인으로 목돈을 잃은 탓이었다. 미선 씨도 만만치 않았다. 5년 넘게 동거했던 남자를 밝히지 않았다가 살림을 합칠 때 박스에서 남자 속옷이 튀어나와서 곤욕을 치렀다. 게다가 학력도 여대에서 '여'자를 빼서는 가뜩이나 가방끈에 민감한 준석 씨를 분노케 했다. 


'야 너 그냥 대학교랑 여대가 같냐? 말 좀 해봐, 어? 그 정도면 결혼 사기 아니냐?'

'야 너는! 내가 지금 네 빚더미까지 다 감당하고 있는데. 어쩐지 허세 가득한 게 아파트 하나 믿고 깝죽거린다 했다. 아파트는 무슨, 다 은행 거였잖아! 그거야말로 사기 친 거지!'


 상대의 위선을 까발리는 열기가 국회 인사청문회 못지않았다. 둘은 나를 상석에 앉혀 두고 커피를 소주처럼 마시며 과거를 들먹였다. 연애할 때는 서로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속아주었다면, 이제는 이혼 전문변호사처럼 서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매일 살을 부대껴야 하는 부부가 백해무익한 싸움을 벌이는 걸 보면서 난 정파 논리에 휩싸여 사리 분간을 못하는 여당 초선의원이 떠올랐다. 난 국회의장처럼 중간 자리에 앉아서 양쪽을 번갈아 가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사라진 낭만, 사라진 사랑, 사라진 배려, 사라진 위엄. 유일하게 남은 원망과 회한.'


 난 두 사람이 벌이는 싸움을 지켜보다가 부부의 사연을 글로 써보기를 권했다. 

 '두 사람 대화가 참 좋아요. 어휘가 다 끈적끈적해서 결혼에 관한 솔직한 사연을 풀면 좋겠어요.'

 그들 대화는 신구 선생님이 4주 후에 보자고 약속하는 <사랑과 전쟁>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글을 써 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에 힘이 있었다. 특히 상황마다 붙는 리얼한 대사가 일품이었다.  


 '제 말 믿고 한 번 써보세요. 지금 싸우는 걸 책으로 읽고 나면 두 분 관계에도 좋지 않을까요?'

 준석 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이 말했다. 

 '남사스럽게 그걸 뭣하러 남한테 일러바쳐요. 우리 맨날 싸운다고 광고해서 뭐 좋을 일이 있다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걸 굳이 글로 써서야 되겠어요.' 

 미선 씨는 콧방귀를 뀌더니 준석 씨와 달리 관심을 보였다. 준석이가 하는 말에 반대만 하면 된다는 투였다.  

 '왜 난 좋을 것 같은데. 네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는지 만천하에 알릴 필요가 있어.' 

 '부부 사이에 일을 남한테 알려서 뭐 하게. 부부 예능도 욕하면서 기어코 다 보더니, 잘하는 짓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원고 기획안을 제시했다. 막장 부부생활을 다룬 생활밀착형 에세이. 

'어느 눈 밝은 출판사가 기획 의도를 보고 출간을 제안할지도 몰라요. 브런치는 요즘 특별상도 뽑는 모양인데. 브런치에서 요즘 가장 인기 많은 원고가 결혼과 이혼이거든요. 소설 제목은 <속이고 속이는 결혼 이야기> 어때요. 표지는 같은 지하철에 타서 반대편을 보고 선 두 남녀. 상상만 해도 너무 좋지 않아요? 부제는 <대판 싸우다가도 같은 침대에서 살을 비비고 사는 부부의 세계>. 어때요. 기가 막히죠?'


 신나서 떠드는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준석 씨는 콜라를 마저 비우고 자리를 떴다.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라서 먼저 갈게요.' 미선 씨도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이혼 빼고는 모든 걸 각오한 듯한 기세로 다투다가도, 자정쯤이면 4호선을 타고 같은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난 괜한 소리를 해서 단골 고객을 놓쳤나 싶었다. '괜히 이혼 얘기를 꺼내가지고.' 하지만 얼마 후에 준석 씨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씀 에세이를 다시 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내가 기획한 책을 쓰기 시작했단다. 준석 씨는 처음에는 내 제안이 얼토당토않게 여겨졌지만, 계속 듣다 보니까 출간하면 확실히 자기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나. 준석 씨는 아마 광화문 교보문고에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이 깔리는 걸 기대하는 눈치였다. 미선 씨는 신춘문예에 번번이 낙방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다시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격려했다. 

 '부부가 잘 사는 이야기보다 부부가 막 싸우는 얘기가 훨씬 더 인기 많은 거 아시죠?' 

 준석 씨는 용기를 얻은 눈치였다. 

 '작가님처럼 브런치에 올려서 연재하면 출판사가 공짜로 책도 내주겠죠? 상금도 있고? 작가님 책도 쉽게 쓴 것 같은데 상 받으셨잖아요.'

 난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다시 책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난 뭐라도 홀린 것처럼 그들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갔더니 미선이가 식탁에서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안 되는 임신일랑 집어치우고 글을 수태한다나. 브런치 작가 신청에 떨어지면 블로그에 가명으로라도 만들어서 계속 써 볼 생각이래요.'


 준석 씨는 내심 불안한 눈치였다. 자기 이야기가 미선 씨에게 뒤처질까 봐 불안한 눈치였다.

'제가 말발로는 미선이를 당해낼 수가 없거든요. 팩트로만 따지면 제가 이기죠. 고작 앙케트 조사나 하면서 사실검증과 탐사보도에서 다져진 제 문장을 이길 순 없죠. 근데 불안한 게 미선이가 워낙 감성팔이를 잘해서 글만 쓰면 저를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만들더라고요. 걔가 소설 하나만큼은 잘 쓰거든요. 아니 제 실명을 거론하면서 그렇게 막 이야기를 지어내도 되는 건가요?'

'그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시죠?'

난 웃기려고 얘기했지만 준석 씨는 정말 심각한 눈치였다. 

'작가님, 진짜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죠?'

'글은 글로 반격해야죠. 제가 말씀드린 대로 더 극적으로 써보세요. 글로 치열하게 다투다 보면 좋은 시절을 얘기할 날도 올 거예요.'

'맞아요. 저를 그렇게 모함하니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네요.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저 선생 아니에요. 저 그냥 글쓰기 모임장이에요.'

'근데 그렇게 이겨서 뭐해요? 이겨봤자 한 이불 덮는 아내인데.'

'그러게 말이에요. 전 미선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 작은 머릿속에서 뭘 꾸며내는지 가끔 걔가 쓴 글을 읽다 보면 소름까지 끼친다니까요. 가끔 제 얘긴데도 이 자식은 진짜 나쁜 새끼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이런데 남이 읽으면 어떻겠어요.'


 준석 씨는 요즘 밤마다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는 아내의 키보드 소리에 잠을 설친단다. 타타타타타타타타. 거짓말과 거짓말을 향한 비난이 맞부딪히는 소리였다. 제 억울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손아귀는 단단할 수밖에 없다. 빅뱅의 거짓말과 지오디의 거짓말처럼 누구 거짓말이 더 큰지는 쉽게 판가름 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준석 씨는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미선 씨가 되살아나는 게 느껴진다나. 처음 데이트할 때 소설을 쓰고 싶다고 얘기하던 그 눈빛이 보인다나. 어쩌면 내가 애초에 기대한 대로 두 사람의 결혼이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짓으로 점철된 이야기가 문학으로 탈바꿈되면 어떤 작품으로 재탄생할지 모르니까. 


 언젠가 두 사람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작가 후기에 날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제가 아는 무명작가가 우리 부부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해서 집필을 시작했어요. 지 글이나 잘 쓸 것이지 오지랖도 넓어요. 그래도 추천해 준 키보드 하나는 좋더군요. 이 책도 그 시끄러운 기계식 키보드로 썼어요. 키보드가 타격감이 좋아요.' 아마 부부는 같은 색 니트를 맞춰 입고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뽀송뽀송한 톤으로 사진을 찍어 작가 소개란에 띄워놓겠지. 부디 그러기를. 글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삶도 구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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