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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17. 2023

나의 인생 첫 강연기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글자가 빼곡한 종이뭉치를 발견했다. 7년 전, 나이 60까지는 회사를 다닐 거라고 믿던 때 쓰던 일기였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 일어난 일의 기록이었다. 그중 한 장에선 글쓰기 모임 진행을 시작했던 때의 감정도 보였다. 평소 매던 백팩 대신 갈색 가죽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나이키 러닝화가 아닌 가죽 구두를 신고서 안국역에 내렸다. 길을 걷는데 가을바람에 통의동과 익선동이 더 멋스럽게 보였다. 아직은 골목이 잘 보존된 동네였다. 난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서 머리에 물을 묻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머리는 짧기 매한가지였지만 오직 나만 아는 멋을 위해 거울에 이리저리 날 비춰봤다. 오늘은 그간 멤버로만 참여하던 글쓰기 모임에 첫 진행자로 데뷔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 오늘을 위해 새로 산 흰색 라코스테 피케셔츠는 구김 하나 없이 깨끗했다. 큰 마음먹고 사놓고도 아까워서 잘 차지 않던 태그호이어 메탈 시계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긴장을 덜기 위해서 샷 추가한 커피도 한 손에 들고 희망찬 작가지망생처럼 모임 공간에 들어섰다.


 나는 그날 모임 공간에 들어선 이후의 내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하도 긴장을 해서인지 기억이 설렁탕 국물처럼 희멀겋게 흩뿌려졌다. 난 당시 나와 함께 모임을 해서 친해진 병수에게 연락했다.

 '병수야 7년 전 씀 에세이 모임 첫날 기억나? 거 왜 너랑 나랑 처음 만난 글쓰기 모임 있잖아. 내가 처음 진행했던 그 모임.'

 '아아. 당연히 알지. 첫날이라면 더더욱 선명하게 남아있지.'

 '넌 곰탕이구나. 맑은 걸 보니.'

 '무슨 곰탕? 웬 개소리야. 배고프냐.'

 '아니야 됐어. 됐고. 나 그때 어땠지? 기억나?'

 '난 무슨 에미넴의 환생인 줄 알았잖아. 웬 빡빡이가 눈도 안 마주치면서 허공 보고 무슨 말을 그렇게 빨리하던지.'

 '뭐? 내가 말이 빨랐다고?'

 난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만 서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내 얘기만 잔뜩 늘어놓는 최악의 강연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로보트였어, 자식아. 얼굴 찌르면 휘발유가 나올 것 같았다니까. 그러고 보니 너 영어 이름도 로버트 아니냐?'  

 '리처드야 이 자식아. 내가 그렇게 굳었다고?'

 '난 저런 메마른 인간이 진행하는 모임은 텄다고 생각하고 그냥 대충 하다 갈라고 했지.'

 '모임이 그렇게 별로였으면 뭔 이유로 당신은 글쓰기 모임을 일 년씩이나 하셨을까.'

 '모임이 별로였다는 말은 아니고, 네가 첫인상 물었잖아. 나중에는 너도 차차 긴장이 풀리면서 유머 버튼도 켜더라고. 그래서 그냥 있었어. 저 로버트인지 로보트인지 유머 기능도 있나 보네, 하면서.'

 '그래 고맙다.'

 '아 맞다. 나 그때 사진 있다.'

 친구는 그때 우연히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녀석은 손가락질 몇 번으로 금세 시간을 7년 전으로 되돌렸다. 사진이 휘리릭 올라가는데 마치 그간 있었던 일이 주마등, 아니 쇼츠 디졸브 효과처럼 아련하게 흘러 지나갔다.

 '난 그때 되게 예뻤던 빨간 스웨터 입은 분 찍으려고 했는데, 어째 네 뒤통수만 보이냐.'

 '예나 지금이나 내 오른쪽 귀는 참 잘생겼군. 근데 그런 사람이 있었어? 빨간 스웨터?'

 '거 있잖아. 모임 끝나고 술 먹으러 가자고 요란 떨던. 그날 취해서 진상 부리고 단톡방 나가버린 그 양반 기억 안 나?'

 '아 맞다. 기억난다 난다.'


 한 순간에 다시는 내 뉴런의 시냅스를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았던 인물 하나가 나타났다. 지금은 뭐 하고 사실런지. 난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사진을 더 유심히 살펴봤다. 내가 멤버들을 향해 뭔가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굴이 보이진 않았다. 승모근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유달리 목이 짧아 보였다. 누가 보면 머리를 빡빡 깎은 용역깡패가 한 손을 높이 쳐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다. 상을 중심에 맞추지 못해 사진은 거의 하연 벽이 다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잘못 찍어서 더 인상적인 사진이었다.

 '병수야 나 이 사진 너무 좋다. 걸작이야. 얻어걸렸네 걸렸어.'


 난 오늘 행사 주최 측이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거기엔 내 강연 사진이 담겨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청년축제 건 정산했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조건으로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진 속의 나는 다행히도 정면을 바라보면서 뭔가를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좋은 사진기로 찍어서인지 구도도 완벽했다. 내 첫 강연 무대 데뷔였다. 순간적으로 날 바라보는 서슬 퍼렇던 눈들이 떠올랐다.  


 며칠 전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이 원고 저 원고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낯선 번호였지만 난 주저 없이 전화를 받았다. 숨고, 링커리어, 지역 청년센터 등 온갖 곳에 프리랜서 작가 등록을 해놓은 터라 원고 청탁이기를 기대했다. 일이 없는 프리랜서는 전화를 거부할 수 없다. 직장을 다닐 적에는 퇴근 시간만 지나면 전화를 꺼두곤 했는데, 오히려 프리하다는 프리랜서가 되니 자유기고와 자유계약이라는 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전화에 매였다.

 '네, 여보세요. 박민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청년축제 담당자인데요. 이번에 2030 청년들을 위한 청년힐링멘토 강연자를 구하고 있는데요. '

 '아, 청년힐링멘토요? 청년들을 대상으로 치유를 해주는 어르신 역할인가요?'

 '네, 최근 새로 낸 책을 바탕으로, 글쓰기와 운동을 하는 삶이 우리 2030 청년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담긴 강연이 가능할까요?'


 처음에는 무척 설레었다. 백수인 내게 출간에 따른 2차 수익은 늘 기대하는 바였다. '요즘 어째 책이 잘 팔린다 했더니!' 나는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북토크에 러닝크루 리더까지 닥치는 대로 다 해봤지만 강연은 처음이었다. 지난 북토크에서 진땀 뺀 경험이 있어서인지 강연이라는 말만 들어도 위축됐다. 그것도 스테이지 위까지 올라가서 강연을 하라니. 난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무엇보다 난 누군가를 치유할 능력도, 그렇다고 멘토로서 본받을 만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니었다. '멘토'라는 단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Odyssey'에 나오는 멘토르에서 유래했다. 멘토르는 고비 때마다 오디세우스를 위기에서 구출한다. 난 고생하고 있을 청년들을 전쟁터 같은 취업시장에서 구해줄 힘도, 고단한 여정에서 닥쳐올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줄 통찰력도 없었다. 김난도 교수님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외칠 깡다구도 없었다. 말 그대로 누가 누굴 힐링시키고 누가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 나는 바로 거절하려고 마음을 먹고 청년축제 담당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 목구멍에서 '제가 요즘 제가 새 책 쓰느라 시간이 없네요. 그리고 그 동네는 너무 멀어서요'라는 흔해빠진 거절 의사가 쏟아질 즈음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작가님, 이번 주말에 딱 30분만 강연해 주시면 되고요. 금액은 50만 원입니다.'

 50만 원. 그 순간 나는 내가 다른 강연자의 대타로 캐스팅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행사 담당자는 지금 한시가 급해 보였다. 축제가 코앞인데 강연자가 펑크를 낸 것이리라. 절대로 50만 원이라는 금액 때문은 아니었다. 난 그를 돕기로 했다. 생각에도 없던 말이 술술 나왔다.

 '네, 제가 딱 하고 싶었던 청년 강의네요. 멘토 역할에 충실히 강연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내 입에서 청년멘토의 적임자라는 말이 술술 나왔다. 누구 대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50만 원 제가 감사히 생활비로 쓰겠습니다.


 처음 직장을 나올 때는 오직 책과 글만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각종 관공서 서포터스 활동으로 번졌다. 영화잡지와 매거진에 서평을 쓰던 일에서 이제는 지역사회 홍보지를 쓰는 활동으로 번졌다. 이제 돈 때문에 책으로 강연까지 하게 되었으니 처음 회사를 나올 때의 결심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세 단어 '청년' '힐링' '멘토'가 한꺼번에 다 들어간 역할을 그렇게 쉽게 수락하다니. 내가 이 세 단어를 싫어하는 건 사람들이 이 단어를 너무 자주 입에 올리다 보니, 처음과 달리 낡고 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 초심도 이 단어들처럼 낡도 해진 건 아닌지 마음이 심란해졌다. 난 여자친구 보림이에게 하소연하듯 얘기했다.

 '지금 내가 오히려 멘토가 더 필요한 상황인데. 50만 원은 거절이 안되네. 마음 같아서는 30만 원만 받고 십 분만 줄여달라고 하고 싶어.'

 '30분에 50만 원이면 그게 어디야. 그 돈으로 더 좋은 책 쓰자. 지금 1분에 만원 넘는 거 알지?'

 '그래, 뭐라도 되겠지. 어떻게든 해보자.'

 '아무도 네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줄 명강의를 해주길 바라지 않아. 그냥 생활인으로서, 어렵게 밥 벌어먹고 사는 그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줘.'

 '힐링멘토가 그렇게 살면 애들이 힐링이 되냐?'


 막상 무대 위에 오르니 안정이 되었다. 마인드 컨트롤이 큰 힘이 됐다. '그래 괜찮아. 아무나 이마를 보면서 딴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1번 인형은 머리숱이 좀 없으시네, 2번 이마는 탈색하셨네. 돈 좀 쓰셨구나. 3번 이마는 안 보이네, 앞머리가 상추 같네.' 일할 때도 내게 무대공포증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정작 내가 힘들어하는 건 말의 내용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누군가를 가르치는 식의 말이다. 난 조언과 충고를 모두 싫어했다. 세네카가 한 말을 철칙으로 알고 살았다. "알고 있는 자에게 하는 충고는 낭비요, 알지 못하는 자에게 하는 충고는 부적절하다." 자고로 '나나 잘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내가 누굴 깨우쳐 준단 말인가. 난 그럴만한 힘이 없다. 요즘 하도 꼰대 욕이 들려서 그런지 청년들에게 내가 고리타분하게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나도 같은 37세, 법적으로 엄연한 청년인데 말이다.


 난 결국 내 책을 요약하는 강의를 준비했다. 운동에세이 원고를 요약하면 그만이었다. 키워드로 된 큐시트도 준비했다. 학교에서 배운 플로우 차트로 레퍼토리도 만들었다. 보림이는 앞 좌석에서 시계를 들고 있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내 입에서는 다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난 따분한 얼굴을 한 청년들에게 저처럼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다. 난 어느새 글쓰기가 내 삶을 바꾼 이유를 나열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컸지만 속에서 삐걱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 말속에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다고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5년을 직장에서 일해놓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떠미는 꼴이라니. 그래도 말끝을 흐리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5분이 넘어가면서 좀 더 수월해졌다.


 글은 쓰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읽어주면 얘기가 달라지죠. 일종의 로르샤흐 테스트가 된다고 할까요. 그 좌우 대칭의 불규칙한 잉크 얼룩 있잖아요. 누군가는 나비라고 하고, 누군가는 박쥐라고 하는 그 그림. 로르샤흐 테스트는 그 그림이 뭐로 보이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과 정신상태를 모두 진단할 수 있어요. 제 글도 누군가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글이 가진 미스터리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뭔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그건 우연이지만 그을려서 거의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기억이 되살아나고, 잊혔던 순간의 생생함을 보여주는 보잘것없는 흔적이 되기도 해요. 제 글을 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악하지만 그런 조악한 비예술적인 예술에도 우리는 영감을 가지게 되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글을 쓰라고 권하고 싶어요. 길지 않아도 좋아요. 그냥 나를 드러내는 거죠.


 난 글쓰기가 재밌어지는 노하우를 공개했다. 정말 편한 의자가 있는 카페를 찾을 것. 아니면 집에 '허먼 멜빌'인지 '허먼밀러'같은 비싼 의자를 살 것. 양손 손톱을 짧게 깎을 것. 책상 주위는 무조건 깨끗이 정리할 것. 흰 메모지를 옆에 두고 연필은 날카롭게 다듬을 것. 커피나 차를 내려둘 것. 모비 딕처럼 훌륭한 책을 옆에 둘 것. 그리고 다음을 기억하라고 했다.

 '하루에 30분 연습하면 1년 10950분, 즉 182시간이 되고, 5년이면 910시간, 10년이면 1820시간이 됩니다. 시간을 투자하면 예술을 즐길 수 있어요. 글을 잘 못써도 글쓰기는 꾸준하면 재밌어지고, 잘 쓰게 되면 더 재밌어져요. 다 아시죠?'


'저는 글쓰기모임을 추천드려요. 그렇다고 제가 하는 모임에 오라는 말씀은 아니고요. 하하. 저는 기억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곳이 글쓰기 모임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사소하다 해도 이 장소와 물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망대해에서 끄집어낼 수 있어요. 난 한껏 과장하면서 얘기했다. '흰 백지 위에서 당신은 진시황제예요. 정주영이고 이병철이에요. 왜냐하면 글 속에서는 누구나 다 나르시시스트거든요. 쓰고 싶은 건 무엇이라도 쓸 수 있지요. 여기서 노력을 하고 운도 따라 준다면 구독자가 한껏 늘 수도 있고 근사한 책이 완성될지도 몰라요.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은 나를 괴롭히던 고충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을 정지시켜서라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카메라의 셔터가 찰칵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에 뭔가 흥미로운 것이 기록되기를, 뭔가 보석 같은 것이 우연히 담기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런 추억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내 낡은 맥북으로 기억에 이름표를 붙여놓곤 한다. 기억할 능력이 없는 수많은 장소와 물건들에게도, 알려지지도 전해지지도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사람들에게도 저 나름의 이름표와 의미를 되새긴다. 그게 내가 바로 글을 쓰는 방식이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돈이 벌리지 않아도 그만이다. 우유나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글을 오래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내 진심이 강연 속에 담겼기를, 내 모임에서 함께 글을 써 준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마음만큼은 전해졌기를. 강연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깨닫지 못했을 것들이다. 강연을 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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