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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n 24. 2019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선배가 결혼한다. 선배는 훤칠하고 말솜씨가 좋아 인기가 많았다. 그는 취업 후에도 여전히 기회만 되면 밤거리를 쏘다녔다. 자유로운 연애관을 설파하며 애당초 결혼 생각이 없다고 속단했다. 어떤 문제든 늘 확고한 어조로 단정하는 그의 말은 듣는 맛이 있었다. 늘 불확실한 바에 매달려 빌빌대는 나완 달리 계산이 딱 떨어졌다. 미심쩍은 마음 한구석도 그의 화술에 언제 그랬나는 듯 자세를 고쳐 잡고 맞장구를 친다. 맥주를 하염없이 마시며 나와는 다른 그를 구경했다. 아 저렇게 사는 인생도 재밌겠구나. 일종의 경외였을까. 형과 나 사이에 놓인 맥줏집 테이블만큼 거리를 두고 그를 바라봤다.

 청첩장엔 서울 외곽 결혼식장 약도와 촌스러운 신랑 신부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한복을 입은 두 사람은 어쩐지 못나 보인다. 참 전형적으로 가는구나. 순간 어안이 벙벙했으나 어색하지 않게 축하해줬다. 속으로는 영문 모를 분기를 품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어떤 감정인지 모르므로 묵인했다. 언제 봐도 정이 안 가는 강남대로를 걸으며 생각해보니 내가 선배에게 일방적인 유대를 품었음을 깨달았다. 단독자의 삶 같은 거창한 말 따위를 늘어놓으며 구속받지 않겠다는 그의 호기를 따랐다. 나는 할 수 없기에 내심 응원했던가. 어떤 여자이기에 형을 변하게 한 걸까. 그의 단호한 일갈에 흥겨워하며 좋아했던 시간이 사그라듦에 처연했다. 그래 다 가버려라. 내 그 구태의연한 예식에 오만 원짜리 봉투를 내밀고 누구보다 태연하게 축하해주리라.


 한때 철학에 빠져 몇몇 책을 홀짝일 때가 있었다. 이름 있는 책을 몇 권 사서 깊게는 엄두도 못 내고 멋있는 말이 나오면 밑줄을 치는 형편없는 독서였다. 그중에서도 쇼펜하우어는 왠지 괴팍해 보이는 말투로 날 사로잡았다. 그는 지독한 허무주의자였다. 부단한 욕망에 쫓기는 인간을 굽어보며 단호하게 응징했다. 언제나 이루지 못할 욕망에 갇힌 인간을 바퀴벌레 보듯 했다. 그런 쇼펜하우어도 사랑에 관해선 관대했다. “사랑은 성직자의 서류 가방에도 애정의 쪽지나 반지를 은근슬쩍 밀어 넣는 방법을 안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이러면 안 된다고 타일러도 소용없다. 연애는 늘 지근거리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는 짓을 반복한다. 벗어나려 할수록 비루해진다. 또한 사랑을 삶을 향한 의지(Wille zum Leben, Will-to-Life)라 정의한 이 역시 쇼펜하우어다. 사랑은 벽을 향해 돌아누운 그에게도 번식의 욕구를 선물하니까. 사랑은 불가항력적이며 무능한 이에게도 주먹을 꼭 쥔 기분을 상기한다. 쇼펜하우어라면 결혼반지를 끼고 나타난 형에게 이런 말을 해주리라. 고통이 눈에 보여도 우리의 눈엔 콩깍지가 있기에, 평생 친구라고 생각한 여자와도 사랑에 빠져 식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비이성적 생식조차 꿈을 꾸듯 해치운다. 평소 경멸하는 말투로 입에 올리던 허례허식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일삼는다. 형처럼 전형적인 나쁜 남자에게 빠진 그녀 역시 사랑이라는 허울에 끌려 미처 돌아볼 새 없이 상처를 맛볼 테지. 유효기간이 가까워 옴에 내가 미쳤지를 반복하겠지. 난 조롱이 섞인 낄낄거림을 머금고 학동역 지하철에 올랐다.

 결혼에 대한 무수한 글을 읽었다. 보편적 연인을 그린 소설부터, 인간을 고릴라 보듯 하는 사회과학자의 글까지 고루 찾았다. 쿤데라로 가벼움을 포크너로 불가해함을 맛봤다. 집 앞 공원에 가면 무수한 신혼부부가 서로를 바라본다. 내가 글에서 읽은 바와 다르게 권태와 허무는 멀어 보인다. 음 저 부부는 결혼 이 년쯤 됐으려나.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도 개의치 않고 신혼을 즐기는구나. 저분은 쫄쫄이를 입은 게 요가강사는 아닐까. 남자는 덩치가 좋은 게 물류회사에 다니진 않으려나. 그들은 날이 좀 더워져서인지 쭈쭈바를 먹으며 그네를 탄다. 서로를 바라보며 아파트 공원이 가진 아늑함을 즐긴다. 그 옆엔 자전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타는 또 다른 부부도 보인다. 페달을 밟는 속도가 느슨하다. 날 좋은 밤 행복을 찾는 그들이 꽤 달갑다.

 뜨거운 섹스와 달콤한 눈빛을 나누는 이들에겐 현실의 고민이 없을까. 아이를 가지는 생각에 이견은 없을까. 한 침대 위, 두 개의 마음에 신음하진 않으려나. 흔하디 흔한 생활고가 그들을 옥죄진 않을까. 출산과 양육이라는 일생의 과업이 자신에게 닥쳐올 때,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할까. 아직은 사랑의 콩깍지가 온몸을 달구고, 일상에서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정말 그게 달까. 오늘 밤은 사랑이라는 대명제로 눙쳐도, 훗날 차갑게 식어버릴 걸 알기에 위태롭진 않을까. 매사 녹록지 않음을 모른척하고 정말 떳떳한 표정일 수 있을까. 난 행복한 부부를 흉내 내는 이들의 판에 박힌 양태에 고춧가루를 뿌리며 자리를 뜬다.


 내 저주와 같은 상상을 변주하는 건 문학이다. 비열한 추측이 난무하고 시끄러운 굉음이 가득한 내 침대에서 다시 책을 꺼내 든다. 훼손된 사랑의 두려움에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두 사람을 그린 소설이다. 냉소에 스민 마음을 떨치고 연인을 그려본다. 여자는 불안한 마음에 퇴근하는 그를 마중하려 버스정류장에 나선다. 버스에서 내린 그의 까슬까슬한 손에 안도가 비어진다. 그는 아슬아슬함에 시달리던 그녀를 다독인다. 상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한 그의 숨통을 틘다. 밤새 뒤척이던 그는 제 옆에서 곤히 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맘을 쓸어내린다. 가까스로 밤은 문학이다.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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